JANGUN


꿈꾸는 기계의 진화
뇌과학으로 보는 철학 명제

저자 : Rodolfo Llinas (2002)
김미선 옮김(2007)


목차

제1장 마음의 기원
제2장 예측하는 뇌
제3장 움직임과 생각의 출현
제4장 신경세포의 진화
제5장 눈의 진화
제6장 나, 소용돌이 (vortex)
제7장 고정행위패턴(FAP), 뇌의 자동 모듈
제8장 감정, 행위의 전주곡
제9장 학습과 기억
제10장 감각질, 감각의 결합이 만든 보고
제11장 추상적 사고와 언어
제12장 집단 마음

들어가는 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음(mind) 혹은 마음상태(mindness state)라고 부르는 것은 활발하게 움직이는 생물들이 원시적인 것에서 고도로 진화된 것으로 발달하는 과정을 통해 뇌 안에 생겨난 진화의 산물이다.

제1장 마음의 기원

마음 혹은 마음상태란 자기 자각을 포함해서 감각운동 이미지가 발생하는 전역적인 뇌기능 상태이다. 감각 운동 이미지란 행동을 일으키는 하나의 구별되는 기능 상태를 만들어내는 데 관련되는 모든 감각 입력의 결합을 가리킨다. 예) 가볍다. 긁어라! 생물학적 진화의 태동기부터 예측의 욕구, 즉 의도(intention)가 우리를 통치하고 유도하고 끌어당긴 결과 우리에게 감각운동 이미지(사실상, 마음 그 자체)가 일어난 것이다. 마음상태는 목표 지향적인 장치로 진화했고, 살아있는 유기체와 그 환경이 예측적이고 의도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유기체가 당면한 환경으로부터 얻은 실시간의 감각 정보와, 내부에서 만들어진 감각운동 이미지를 기능적으로 비교하는 걸 지각(perception)이라고 한다. 지각이 하는 일의 바탕이 되는 것은 예측(prediction), 즉 쓸모에 염두에 두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기대하는 것이다. 예측이야말로 반사와 전혀 다르게 본질적으로 목표 지향적인 뇌 기능의 핵심이다.
“마음은 운동이 내면화된 것이다.”
운동 조직에 대한 두 가지 관점
1. 중추신경계라는 작동 조직을 기본적으로 반사론적인 것으로 보았다. (윌리엄 제임스) 본질적으로 뇌는 환경이 요구하면 순간적으로 가동되는 복잡한 입출력 체계이다. 운동의 원동력은 감각이고, 운동의 발생은 감각적 단서에 대한 반응이다.
2. 척수를 조직하는 중추신경 회로들이 자기 참조를 기반으로 조직된 운동을 위해 필요한 전기적 패턴을 발생시킨다고 보았다. (그레이엄 브라운) 조직된 운동을 포함한 모든 운동은 본질적으로 감각 입력 없이 발생한다. 보행은 상호적인 신경 활동에 의해 척수에서 발생한다. 척수의 한쪽 편에 있는 자율 신경망이 같은 쪽 팔다리의 근육들을 활성화하는 동안 반대쪽 팔다리의 활동을 억제한다.
작업가설 (working hypothesis): 신경계 기능은 본질적으로 알아서 작동하고 감각 입력은 이 본질적 체계에 정보를 주는 게 아니라 그것을 조정한다는 것이다. 감각 입력이 단절되면 뇌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뇌가 외부 세계에서 오는 끊임없는 입력에 의존해서 지각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맥락에 따라 그것을 조정할 뿐이다. 즉, 뇌는 자기 참조적인 닫힌 계(closed system)로 작용한다. 감각기관은 내부 상태를 구체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했고, 내부 상태는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신경회로를 반영한다. 그러한 회로는 유전적으로 미리 결정된다. 조상이 물려준 기능적 구조물로 이루어진 이 회로는 우리가 태어난 이후에 경험하는 것에 의해 더욱 풍부해지면서 특별한 기억과 함께 진정한 자아를 구성한다.
중추 뉴런은 어떻게 신체의 운동을 조직해서 추진하고, 감각운동 이미지를 창조해서 사고를 만들어내는 걸까?
신경계에 속한 많은 유형의 뉴런은 본질적으로 특정한 유형의 전기적 활동을 하게 되어 있다. 이는 세포막에 걸린 미소한 전압 변동으로 나타난다. 이 전압은 고요한 물에 이는 잔물결로 보는 사인파의 움직임과 유사한 방식으로 진동하지만, 약간 무질서하다. 이 전압의 물결을 타고, 그 물결의 정점에서는 활동전위라는 훨씬 더 큰 전기적 사건이 일어난다. 이는 강하고 먼 곳까지 뻗치는 전기 신호를 형성해서 뉴런 대 뉴런 의사소통의 기초를 이룬다. 활동전위는 뉴런의 축색돌기를 따라 이동하는 메시지이다. 목표 세포에 도달하면 이 전기 신호는 작은 시냅스 전위를 일으킨다. 본질적인 진동 성질과 조정하는 시냅스 전위는 하나의 뉴런이 자신만의 활동전위 메시지를 만들어서 다른 뉴런이나 근육섬유로 계속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주조물이다. 사람의 몸에서 가능한 모든 행동은 운동뉴런의 활성화에 의해 일어난다.
리듬 있는 진동을 보이는 뉴런들은 활동전위를 통해 서로의 주기에 동조한다. 그 결과 뉴런은 멀리까지 같은 위상으로, 즉 결이 맞게 진동하는 집단이 되어 활동의 동시성을 갖는다. 흩어진 성분들이 같은 위상으로 진동하고, 증폭되어 하나처럼 작동하는 이 효과를 공명(resonance)이라 한다. 세포들이 직접 전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으로써 뒷받침되는 전기적 공명이라는 성질은, 아마도 뉴런들 간의 가장 오래된 의사소통 방식일 것이다.
모든 뉴런이 줄곧 공명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뉴런 무리들이 서로 다른 시간에 일시적으로 공명이 일어나도록 전기적 활동의 진동 방식을 바꿔놓는 능력은 뉴런의 아주 중요한 성질이다. 진동 방식을 빠르게 바꾸지 못하면 항상 변화하는 주위의 실재를 표상할 수 없을 것이다. 진동을 나타낼 능력이 있는 서로 다른 뉴런 무리가 똑같이 들어오는 신호의 서로 다른 측면을 ‘지각’하거나 부호화할 때, 무리는 서로 같은 위상으로 공명하여 자신들의 힘을 모은다. 이것을 뉴런 진동 결맞음이라 한다. 우연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진동하는 전기적 활동에 의해 존재하게 된 뉴런 활동의 동시성, 공명, 결맞음들은 인지의 근본이 된다. 그러한 뉴런의 본질적 활동이야말로 ‘자아’라는 개념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다.
신경계는 활발한 운동을 조화롭게 편성해서 표현할 수 있는 생물학적 성질인 ‘운동성’을 가진 다세포 생물을 위해서만 필요하다. 예) 우렁쉥이(멍게)의 유생 형태는 잠깐 동안 자유유영을 하며, 뇌와 유사한 신경절을 갖는다. 그러다 적당한 물질을 찾으면 유생은 선택한 자리에 머리를 파묻고 다시 한 번 고착한다. 일단 정지된 물체에 고착하면 유생은 척색을 포함해서 자신의 뇌 대부분을 흡수(소화)한다. 자신의 꼬리와 꼬리 근육 조직까지 소화한 후에는 원시적인 성충 단계로 후퇴한다.
뇌는 감각이 이끄는 유도 운동이 일어나기 위한 진화적 선행조건이다. 왜냐하면 동물이 감각의 조정을 받는 내부 계획 없이 활동하고 움직이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신경계는 계획하기 위해 진화했다. 그 계획을 구성하는 건 목표 지향적이고 대개는 수명이 짧은 예측들로 매 순간 감각 입력의 검증을 받는다. 덕분에 생물은 외부 환경에 따른 내부의 계산, 즉 일시적인 감각 운동 이미지에 따라 목표한 방향으로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다.


제2장 예측하는 뇌

생물은 들어오는 감각 자극을 기반으로 주어진 운동의 결과를 예측해야만 한다. 확실하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환경의 변화에 알맞게 반응해서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앞으로 일어날 사건의 결과를 예측하는 능력은 광범위한 뇌 기능들 중에서도 가장 궁극적이고 공통적인 것이다.
예측이란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미리 내다보는 것이다. 테니스 공을 치러 달려 나갈 때는 시간과 공간의 어느 지점에서 공과 라켓 면이 성공적으로 만날 수 있을 지를 예측해야 한다. 냉장고 안의 우유팩을 꺼낼 때에도 우유팩의 무게, 미끄러운 정도, 채워진 정도를 예측해야 하고, 마지막으로 보상적 균형을 적용해야 한다. 일단 운동이 시작되면 들어오고 있는 감각 정보에 직접 반응하면서 운동과 보상적 균형을 조정한다. 그러나 손을 뻗기도 전에 이에 대한 계산, 즉 전운동 예측은 끝난다.
뇌의 예측 능력은 우리가 그냥 예측 능력의 효과를 깨달아서 생겨난 게 아니다. 예측은 그보다 훨씬 오래된 진화적 기능이다. 날벌레가 눈에 앉기 직전에 자신이 눈을 깜빡인다. 최소한 의식 수준에서는 그 벌레를 보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 사건을 예상하고 벌레가 눈에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적절하고 눈을 깜빡인다. 의식 수준과 반사 수준에서 끊임없이 작동하는 예측은 전부는 아닐지라도 대부분의 뇌 기능 수준에서 고루 미친다.
예측은 뇌 안에 국한되어 있지만, 뇌 안의 단 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 예측 기능들은 단일한 이해나 구조로 통합되어야 한다. 예측 기능들을 끌어 모으는 건 무엇일까? 예측 기능을 담는 용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자아라고 부르는 것 안에 있다. 자아는 예측의 중심이다. 자아는 의식의 영역에서 태어나는 게 아니라, 단지 자아가 있음을 아는 것(자기 자각)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자아는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지 않고도 존재할 수 있다. 자기를 자각하는 개체인 우리 안에서조차 자기 자각은 연속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자아라는 가정된 ‘실체 entity’를 기반으로 예측을 수행하는 뇌에 대해 이해한다면, 뇌에서 마음상태가 발생하는 방식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예측 능력이 왜 일어나는 가는 분명하다. 생존에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측을 하기 위해 신경계는 외부 세계의 감각 관련 성질과 내부 감각운동 표상을 빠르게 비교해야 한다. 신경계가 이 비교로 얻은 전운동을 운동으로 변환해서 정확한 시간에 실행할 때, 예측은 비로소 쓸모가 있게 된다. 신경 활동의 패턴이 내부적 중요성을 획득하면 (감각 내용이 내부 맥락을 얻으면), 그 다음에 뇌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하는 전략, 즉 또 하나의 신경활동 패턴을 만들어낸다. 전략은 무엇이 올 것인지를 예측하는 내부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신경 활동의 전운동 패턴인 전략은, 다른 신경 활동으로 변환되어 적절한 신체 운동을 시작하도록 한다. 이 변환이 외부 세계의 맥락에서 구현되기 위해 예측이라는 내부 표상이 필요한 것이다.
예측은 시간과 노력을 절약한다. 예측은 목표 지향적이며 활발한 운동을 성공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기 위한 기능면에서도 뇌에 중요하다. 외부 세계로부터 감각이 접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취한 다음, 연속적으로 재빨리 옳은 결정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하다. 뉴런은 빠르지만, 그렇게까지 빠르지는 않다. 뇌는 순간적인 의사결정 능력에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고 정보라는 연료를 공급하기 위해서 입력되고 있는 정보를 단편으로 나눈 다음, 필요한 정보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것처럼 보인다.
예측하는 능력은 점점 더 복잡해지는 운동 전략과 나란히 진화했다. 때문에 예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측이 운동을 어떻게 조절하는 지를 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최적의 조절 장치란 가능한 가장 원활한 운동을 생산하는 조절 장치라고 가정한다. 이는, 운동에 덜컹거림을 일으키는 가속 과도현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선택된 일련의 활성화에 미치는 전방향먹임 feedforward과 되먹임 feedback의 영향을 연속적으로 감시해야 함을 의미한다. 우유팩을 잡으려 할 때 사용하는 손, 팔, 어깨에 50개 정도의 주요한 근육이 있다고 하면, 1015이 넘는 근육 수축의 조합이 가능하다. 이 뻗고 쥐는 순서를 이어가면서 각 밀리초마다 1015개의 조합을 평가한 후 최고의 것 하나만 선택한다면, 매초마다 1018번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즉, 1엑사헤르츠의 처리 장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각 운동 근육마다 최소 100개의 운동 단위들이 있고 각 근육 당김은 여러 묶음의 운동 뉴런과 관련된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운동 조절 문제의 자원은 자릿수가 더 커진다.
운동의 연속적 조절을 위한 대안은 전 시간에 걸쳐서 신체 안에 있는 각 근육이 어떤 식으로든 독립적으로 조절되는 도식이다. 이러한 장치 안에서는 단일한 근육의 조절을 위한 기능적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따라서 한두 개의 근육밖에 관련되지 않은 운동을 어떻게 조절하는 가의 문제는 수월해진다. 그러나 이 각본은 복잡한 협동 근육의 조절에는 적용하기 어렵다. 협동 근육이란 주어진 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잇달아 작용하는 한 묶음의 근육이다. 하나의 연쇄 운동에 관련된 근육의 수가 증가할수록, 근육 활성화가 확실하게 단결되어 때맞추어 일어나려면 극도로 정확하고 오류 없는 동기화 요소에 더 크게 의존하게 될 것이다. 전 시간에 걸쳐 연속적으로 운동을 조절하면 뇌는 지나친 계산적 부담을 지게 된다.
뇌를 위해 운동 조절의 차원을 줄이기 위한 비교적 간단한 방법은 조절계의 시간 해상도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즉, 연속적으로 온라인 상태로 처리하는 부담을 제거하면 된다. 이는 운동 과제의 시간적 연속선을 작은 단위로 분해하는 방법이다. 이후 조절 장치는 분해된 작은 단위를 조종하면 된다. 여기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은 심장이 박동하듯 이렇게 불연속으로 작동하는 박동성 체계가 운동을 조절하면, 그 운동은 연속적 실행의 결과로 매끄럽게 나타나는 대신 일련의 근육 경련이 된다는 점이다.
조절계는 독립적인 한 운동 뉴런 집단에 박동성 입력을 보내 명령계가 내리는 지시를 실행하기 위한 준비를 시킨다. 그러면 운동 뉴런들은 선형적인 반응성의 영역 안으로 균일하게 편향된다. 박동성 조절 입력은 명령 신호에 대해 균일한 집단 반응을 보이기 위해서 비선형이고 독립적인 뉴런 성분의 집단을 ‘선형화’하는 것이다. 주어진 운동을 위해 소집돼야 하는 운동뉴런은 주로 척수 수준에 분리되어 있다. 박동성 메커니즘은 운동뉴런 활동을 동기화하는 신호로 기능한다.
박동성 조절계는 짧은 운동 가속기간들이 관성 파괴 메커니즘을 제공하므로 신호가 근육의 마찰력과 점성을 극복하고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운에 갇힌 차를 앞뒤로 흔들어 끄집어낼 때도 이러한 유형의 운동이 도움을 준다. 마지막으로 주기적 조절계는 입력과 출력이 시간적으로 묶이도록 해준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유형의 조절계는 전체로 기능하고 있는 운동 기관에서 감각 입력과 내려오는 운동 명령이 통합되는 능력을 키워줄 것이다.
운동 조절에서 뇌가 해야 하는 일을 줄이는 방법으로 뇌는 집결해 있는 운동 병력들을 박동성의 불연속 신호 조절 휘하에 배속시킨다. 조절의 신호는 생리학적 떨림으로 근골격계에 반영된다. 떨림은 근육 조직의 타고난 성질이면서 근육 조직에만 한정된 성질이다. 이 떨림은 운동성의 근원적 모멘트라고 한다. 처음부터 말해왔듯이 진화적으로 사고는 내면화된 운동이다.
인간의 몸이 근육 집단들의 ‘과잉완성 over complete’ 체계라고 한다면, 조절계가 내릴 수 있는 선택에 어느 정도의 다양성과 융통성이 보장될 것이다.
신경회로가 어떻게 예측을 하는가? 뇌는 각각의 신경세포들 간에 존재하는 전기적 행동의 차이를 이용해서 예측을 한다는 것이다. 어떤 뉴런은 주어진 신호가 수습되기도 전에 반응함으로써 신호를 예견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이 뉴런은 자극이 얼마나 센 지를 측정하는 대신 자극이 얼마나 빨리 변화하는 가에 반응한다. 이 뉴런은 자극의 변화 속도에 반응함으로써 외부세계에서 변화하고 있는 게 무엇이든 그것보다 더 빨리 반응한다.
여러 대의 컴퓨터가 각각 외부 세계에서 일어나는 한 사건의 서로 다른 측정치를 동시에 취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일부는 빠르게, 일부는 중간 속도로 외삽(extrapolating), 즉 알고 있는 자료를 근거로 추정을 하고, 마지막으로 일부는 그 사건을 실시간으로 측정한다면, 그 사건이 실제로 완료되기 전에 컴퓨터는 가상의 결과를 재건할 수 있다. 이것이 미리보기 기능이다. 바로 신경회로가 하는 일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특정한 방식으로 계속된다면 곧 어떤 사건이 일어나리라고 추정함으로써 미래를 계획한다.
신경회로가 이렇게 미리보기 과정을 수행한다는 게 놀랍지만, 이러한 기능은 뇌가 어떤 일을 더 잘하거나 더 빨리 해보려고 만들어낸 발명품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예측적 방식으로 작용해서 전운동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도록 뇌를 진화시킨 자연선택의 유전에서 나온다. 이 미리보기야말로 뇌가 자신이 할 일, 즉 우리가 변화하는 매 순간마다 외부 세계와 협상을 벌일 수 있도록, 가능한 빠르고 효과적으로 실재를 묘사하고 곧 흩어지는 일을 뒤처지지 않고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소뇌는 대뇌의 뒤쪽에 위치하며 운동 협응을 조절한다. 운동 기관이 흥분하려면 틀림없이 리듬을 통한 상호 동기화가 필수적이므로 진동수란 운동 기관 전체나 운동 기관의 주요 요소들이 흥분할 때 나타나는 표식이 아닐까? (베른슈타인)
뇌가 조직된 운동을 조절하는 것으로부터 마음과 그 본성이 발생했다.


제3장 움직임과 생각의 출현

뇌는 실제로 아무 것도 계산하지 않는다. 다가올 사건의 예측 이미지를 만들어서 생물이 그에 따라 반응하거나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한 이미지는 행동이나 목적 있는 행위를 위한 계획 기반으로 작용하는 전운동 주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모든 살아 있는 형태에서 의식이 생겨나는 기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뇌가 어떻게 예측적인 감각운동 표상을 이용하고, 이어서 보편성의 집합을 추출하고 유입해서 외부 세계를 표상하게 되었는가 하는 깊은 질문들을 향해 들어가기 전에, 뇌는 감각에 의해 조정되는 닫힌 계(closed loop)라는 논점을 제기해야 한다. (열린 계란 환경으로부터 받은 복잡한 입력을 반사적으로 처리한 다음 다시 외부 세계로 돌려보내는 계이다.) 인자란 단지 하나의 기능 상태인 것이 아니라, 뇌의 본질적 성질이며 신경학적 선험 명제이기도 하다고 간주할 수 있다. 인지하는 능력은 학습될 필요가 없다. 단지 특별한 인지의 내용은 우리 주변의 특별한 것에 특정하게 연관되어 있는 상태로 학습되어야만 한다.
심장의 진화는 단세포 운동성을 조직화하는 진화 과정을 통해 거시적인 운동성이 나온 것이다. 기계론적으로 말해서, 단세포들의 생체 전기적 성징을 조정하자 단세포들이 모여 하나의 체계(system)가 발생했다는 뜻이다. 실험실에서도 낱개의 심장 세포들을 접시 위에서 키워 저절로 뛰도록 만들 수 있다. 단세포의 운동성과 본질적인 진동 성질은 특이한 위상학적 재조직을 통해 연결망으로 진동성질들을 결함시켜 하나의 거시적인 사건을 만들어냈다. 이는 모든 운동 유형의 기초이며, 뇌의 조직과 기능은 진화를 통한 운동성의 유입에 기초한다.
몸이 긴 동물은 저항이 최소인 경로를 따라, 즉 장축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이로부터 차례로 가장 흔한 운동방향, 말하자면 전진 방향이 등장한다. 전진 방향이 정해진 동물은 주위 환경에서 새로운 것과 마주칠 때 다른 쪽 끝보다 앞쪽 끝을 통해서 더 자주 마주치게 된다. 앞쪽 끝이 후각이나 시각과 같은 원거리 수용 감각계를 배치할 가장 적절한 위치가 되는 것이다. 입도 이 지휘 선단에 있고, 여기서 뇌와 더불어 머리가 발달한다. 외골격, 즉 두개골은 뇌를 보호하는 범퍼의 역할을 하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소화의 산물은 뒤쪽으로 배출된다.
그러므로 운동성의 성질이 내면화되고 있음을 본다. 외면적인 운동성이 안으로 도입되었음을 설명하는 유일한 길이다. 이 방법에 따르면 중추신경계의 위쪽에서 운동을 끌어당긴다. 바깥쪽으로부터 성질을 취하여 즉시 안쪽으로 끌어들이는 체계이다. 이 성질은 본질적 진동 성질과 전기적 결합을 통해 신경축을 타고 끌려 올라가 대뇌화 중인 뇌 안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생각하는 능력, 그것이 운동의 내면화로부터 일어나게 된 것이다. 생각이란 가능한 성공적 운동 전략의 수가 늘어나면서 태어난 중추적 사건이다. 남아 있는 문제는 생각이 운동을, 단순히 신체 부위의 운동이나 외부 세계에 있는 사물의 운동뿐만 아니라 지각이나 복잡한 개념의 운동도 표상하는 가이다.
결정적인 진화적 요점은 다음과 같다. 운동을 발생시키는 자산을 운동 패턴 발생장치와 구분하는 것이다. 전문화된 패턴 발생장치는 스스로의 조합적 성질에 의해서 훨씬 더 복잡한 유형의 운동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걷기를 근육 자체의 본질적 성질에만 맡겨둔다면, 우리는 그렇게 멀리 가지 못할 것이다. 걷기 위해서는 걸음걸이와 관련하여 적절하게 엇갈리는 협동근육에 조화롭고 리듬 있는 원동력을 주기 위해 척수 신경회로의 본질적 성질이 필요하다. 심장은 저절로 뛰지만 그 본질적 리듬의 주기를 조정하는 것은 뇌간인 것과 비슷하다.
한 유기체가 외부 세계와 성공적으로 타협하기 위해서는, 신경계가 감각 입력을 거쳐 도달하는 외부 세계의 보편성을 신속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처리된 정보는 이어서 잘 실행되는 운동 출력으로 전환되어 외부 세계로 다시 전달되어야 한다. 생리학적으로가 아니라, 개념적으로 무정형인 감각 입력과 운동 출력 간의 변환 영역이 바로 내부 기능 공간이다. 이 공간의 성질과 외부 세계의 성질이 같지 않다는 건 분명하지만, 그래도 운동 출력이 유용하게 표현되기 위해서는 연속성이 있어야만 한다. 뉴런으로 구성된 내부 기능 공간은 외부 세계의 성질을 표상해야 하므로 어떤 식이로든 그것과 준동형이어야 한다. 번역가가 자신이 번역하는 서로 다른 두 언어 간에 개념적인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작업해야 하는 것처럼 내부 기능 공간 역시 개념적 연속성을 지켜야 한다.


제4장 신경세포의 진화

마음은 뇌가 만들어내는 많은 전역적 기능 상태들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마음은 뉴런의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많은 상태들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
신경세포는 스스로 그물처럼 엮인 공동체를 조직해서 보편성을 표상하고 외부 세계와 실시간으로 의미 있는 상호작용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그물망이 외부 세계 이미지를 뇌로 내면화하고 그 이미지를 운동 행동으로 변환할 수 있는 것은 뉴런의 전기적 성질들에서의 차이와 연결성 덕분이다. 그러한 그물망은 빠르게 이동하는 전기 폭풍을 일으켜서 빠른 속도로 항상 변화하는 외부 실재를 내부적으로 표상하기도 한다. 이때 흩어지는 뇌의 전기적 사건들이 마음을 구성한다. 그 사건들은 워낙 풍부해서 우리가 관찰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충분히 표상할 수 있다. 그물망 안에서 일어나는 이 전기적 사건들이 ‘우리’를 구성하는 것이다.
원핵생물이 ‘공생sysbiosis’ 하면서 진핵세포가 나타났다. 우리는 지방 세포막인 ‘벽’ 안에 본래부터 작은 생명의 섬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단세포 진핵 유기체가 나타난 이후, 그것들이 결합하여 협동하는 세포 군집과 소위 최초의 다세포 생명 형태로 진화하기까지 추가로 20억 년이 걸렸다. 진화적으로 보기에는 최초의 단세포 생명을 만드는 일보다 단세포들에게 의사소통 능력을 불어넣어 생물학적으로 의미 있게 정보를 교환하도록 하는 작업이 훨씬 더 복잡했다.
단세포 생명으로부터 다세포 공동체로 전이가 일어나자, 생명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이 발달했고, 이후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해왔다. 이 접근법은 단세포에 대한 총체적 헌신과 반대로, 세포 공동체자아로서의 집단에 대한 총체적 헌신을 강조하는 것이다. 마침내 동물이 발생했을 때 예정된 대로 진정한 의미의 ‘공동 죽음corporate death’이 창조되었다. 다세포 공동체가 됨으로써 세포들은 한 묶음의 자유를 다른 한 묶음의 자유와 교환한다. 단독으로 협상하고 삶의 위기에 홀로 맞설 자유를, ‘연합’해서 집단으로 협상하고 그로 인해 한 집단으로 이기거나 질 자유로 교환하는 것이다.
동물 발생을 위한 두 번째 선행조건은 꼼짝 못하게 붙잡아서 채워 넣은 굶주린 세포들에게 고에너지의 연료를 배달하기 위한 체계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그 체계에서는 매우 밀집된 세포 집단에게 순환계를 통해서 질 좋은 영양분을 공급할 수 있는 산화적 물질대사와 소화계가 필수 단계로 포함되었다. 가장 중요한 이 액체 환경을 자기 안에 가두어 자기 소유의 바다혈액과 세포외액를 가지고 다님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진정한 세포 대 세포 의사소통이 존재하려면 실제로 무엇이 따라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먼저 유전 계통이 다른 세포들이 일종의 생분자적 언어를 개발함으로써 통치되는 일반 시민, 즉 모든 생명체를 감싸 안는 생물학적 국가를 일으켜야 한다. 집단에 속한 개별 세포들이 차별화되는 능력, 즉 자신의 자율성을 희생하면서 특정 과제를 위해 전문화되는 능력이다.
세포 대 세포 의사소통에서의 위대한 발전은, 세포가 칼슘이온 농도를 조절하기 위해 발달시킨 능력에서 나왔다. 칼슘은 주기율표에서 가장 반응성이 큰 원소들 중 하나로 극히 다루기 어려운 원소이다. 또한 인은 진핵 생명체에서 매우 중요하다. 근육 수축이나 신경세포 활동과 같이 에너지 소모가 많은 업무를 지원해야 하는 진핵 유기체에게는 연료 분자로부터 가장 질 좋은 가용 에너지를 얻을 수단이 필요하다. 산화적 인산화 과정을 거치는 이 작업에는 산소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진핵 생명체가 산화적 인산화를 위해 인을 계속 싣고 다니려면 반응성이 높은 칼슘을 막아내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칼슘은 세포에서 인을 훔쳐내서 결정화할 것이고 생명까지 훔쳐갈 것이다. 진핵 생물은 칼슘을 인식해서 결합하는 분자를 개발함으로써 위협을 처리했다. 칼슘이 세포 안에서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걸 막아서 인과 밀통할 잠재적인 위험에 대비한 것이다.
우렁쉥이는 번식할 때가 되면 싹을 내어 유생을 내보낸다. 유생은 짧은 시간 동안 자유유영을 하는 피낭 동물이다. 이 유생은 원시적인 ‘뇌’ 하나이상의 신경절, 기초적인 ‘눈’, 균형을 위한 기관을 탑재하여 유영의 요구에 타협하는 장비를 잘 갖추고 있다. 한때 고착성 성체로부터 자유롭게 헤엄쳐 나왔던 유생은 외진 틈바구니를 찾아서 정수리를 박고 자신의 뇌 대부분을 소화시키고서 그 종의 더 원시적인 고착성 성체 형태로 퇴행한다. 여기서 얻을 교훈은, 뇌는 활발하게 움직이는 생물을 위해서만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추신경계의 진화가 진행되면서, 감각뉴런과 운동뉴런 사이에 또 하나의 뉴런이 등장해서 나란히 놓이는 걸 볼 수 있다. 이 세포를 ‘중간 뉴런interneuron’이라고 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중간 뉴런은 신경계 바깥의 세계와 직접 의사 소통하지 않는 모든 신경세포이다. 중간 뉴런은 전적으로 다른 뉴런과의 쌍방향 시냅스 접촉을 수단으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감각 입력을 운동 계(운동뉴런과 그것이 자극하는 근육세포)의 여러 성분으로 경로를 변경하고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중간 뉴런이 적소에서 받은 감각 정보를 운동뉴런이나 중추신경계 안의 다른 뉴런에게 나누어 주고 있다. 우리 뇌를 구성하는 압도적인 다수의 뉴런이 중간뉴런이다. 생각할 때 뇌의 대부분은 거의 모든 시간 동안 닫힌 계로 기능한다. 외부 세계로부터 이 계로 정보가 들어오면 계는 생존을 위해 필요한 활동적이고 목적 있는 운동을 외부 세계로 돌려보낸다. 이 뉴런이야말로 운동 전략이 생겨나고 이행되는 기능 공간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장소인 것이다.
뉴런 혹은 신경세포는 진핵세포의 놀라운 전문화를 성립시키는 요소이다. 전문화는 세포의 집합체가 하는 자연적인 ‘계산’을 진화시켰다. 정보를 전달하는 장치이자 내부 세계를 건축하고 후원하고 기억하는 장치가 되었다. 외부 실재를 모방하는 뉴런들로 구성된 내부 세계는 외부 실재로부터 그것의 작동 원리를 훔쳐 인지의 결과를 다시 외부 세계로 주입한다. 뉴런은 항상 커져만 가는 감각 운동 변화의 복잡성을 수용하고 조정하기 위해서 존재하게 되었다.
뉴런은 본질적으로 전압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이 전압을 ‘막전위membrane potential’라고 한다. 그 전압차가 유지되는 것은 뉴런의 바깥쪽에 있는 이온 종과 안쪽에 있는 이온 종이 상대적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전하 분리가 일어나는 것은, 세포막을 통과할 수 없는 불투과성의 커다란 대전 분자들이 존재하고 뉴런 막 안에는 각각 특정한 이온만을 선택적으로 통과시키는 아주 작은 통로(박투과성)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투과성 막에 의해 유지되는 전하분리에 의해 양과 음의 이온(전기적)들과 이온 농도 차(확산-화학적)에 의한 전기화학적 기울기로 전압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뉴런에서 뉴런까지의 신호 전달은 처음 활동전위 형태일 때는 전기적이었다가, 시냅스 전달 형태일 때는 화학적이었다가, 다음 활동 전위에서는 다시 전기적이 된다. 이것이 바로 뉴런 의사소통을 ‘전기화학적 결합’ 혹은 ‘전기화학적 신호’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뉴런 간의 확산 공간인 시냅스 간극이 20나노미터 단위인 화학적 시냅스와 반대로 전기긴장적으로 연결되는 뉴런은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가서 서로를 이을 다리를 만든다. 전기 전동성인 이 다리를 간극 결합gap junction이라고 한다. 그러한 결합으로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뉴런 간에 간극 결합 통로가 생긴다. 이 간극 결합 통로는 세포 간의 직접적인 이온 전도(전류)를 허락하여 세포를 전기적으로 결합시킨다. 전기긴장적 흐름에는 신경전달물질이 없으므로 세포에서 세포로 전기가 흐르면서 생기는 전압 이동에서의 지연은 거의 없거나 매우 적다.
전기 긴장적 연결의 경우, 이온 흐름은 이미 열려 있는 통로를 통과하고 세포 내부가 상호 연결되어 있으므로 전류가 세포 사이로 직접 흐른다. 결과적으로 뉴런이 활동전위를 발화하면 그 뉴런에 전기적으로 결합된 모든 세포는 동시에 그 신호의 일부를 받지 않을 수 없다. 간극 결합이 이러한 전류의 흐름을 고르게 쌍방향으로 조절한다. 덕분에 그러한 세포들은 전기적으로 하나의 커다란 세포로 기능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간극 결합이 쌍방향으로 작동하는 건 아니다. 어떤 간극 결합은 이온을 통해 전류 흐름을 한 방향으로만 전달하므로 다음 뉴런에게는 동시에 신호를 보내지만 그 세포로부터 신호를 돌려받지는 못한다. 전기 긴장적 결합으로 세포들 간에 직접 전류가 흐른 결과 상호 연결된 세포들은 빠르고 동기적으로 발화한다. 이렇게 해서 ‘집합체’ 신호가 일어난다.
전기긴장적 결합은 발달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근원적으로 리듬 있게 떨리는 근육의 운동성에서 뇌가 진동하면서 공명하는 기능으로 내면화하는 데는 동시적 신호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뉴런의 기본적인 기능적 단일성은 전기적인 것이다. 뉴런의 전기긴장적 상호작용과 활동전위는 시간적 결합을 도우면서 뉴런이 통합될 수 있는 뼈대가 되어준다. 반면 화학적인 동시에 전기적인 시냅스 전달은 여러 세포 요소들을 단일한 다세포 기능 상태로 결합시키는 기본적 주조물이다.


제5장 눈의 진화

생리학적 분업의 관점에서 인간의 생체 기관은 신체의 전문화된 구성 성분들로 종종 단독으로 고유한 기능적 역할을 맡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경우 유기체가 단기적으로 주어진 일생을 운영하기 위해, 그리고 장기적으로 종을 영속시키기 위해서도 신체 기관은 지극히 중요하다. 심장이니 눈이니 간이니 하는 것들은 모듈, 즉 개별적인 국소 장치들이다.
뇌는 그 본성과 작용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닫혀 있다. 어떤 감각으로도 뇌는 직접 관찰할 수 없다. 뇌는 보이지도 소리를 내지도 콩닥거리지도 않으며, 부풀었다 줄어들었다 하지도 않고, 맞아도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뇌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거나 경외심을 가지고 우주를 관찰할 때처럼 육체에 정박하지 않고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뇌라고 부르는 이 닫힌 유기체는 감각의 성질에 의해 제한되지 않는다는 이점이 있다. 깨어 있는 상태는 감각이 인도하고 형성하는 꿈과 같은 상태인 반면 일상적인 꿈은 감각과 전혀 관련이 없음을 생각해보라. 뇌는 세상의 풍부함을 받아들이기 위해 감각을 사용하지만 감각에 의해 제한되지는 않는다. 털끝만큼의 감각 입력 없이도 일을 할 수 있다. 뇌는 실재 묘사기이다. 그 계가 닫혀 있다. 뇌 활동은 다른 모든 것을 위한 은유metaphor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인간은 기본적으로 현실 세계의 가상 모형을 건설하는 꿈꾸는 기계이다. 더욱 수수께끼인 것은 이 고유하고 특이한 기능적 구조, 닫힌 세포계가 자신은 무엇이어야 하고 자신의 기능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선험적 명제를 모르고도 형성된다는 것이다.
마음의 조상인 신경계가 진화에서 나침반이나 지도 없이 출발했다면, 마음이 우리에게 온 과정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신경계를 발달시키기 위해서 자연은 바깥 우주의 성질로부터 배워 그것을 유익한 방식으로 도입해야 했다. 우리가 어떻게 외부 세계의 분열된 성질들을 받아들여 단일한 전체의 맥락 안에 집어 넣을 수 있을까? 진화는 외부 세계의 보편성과 뇌라는 닫힌 계 사이의 전문화된 중계 메커니즘인 감각 기관을 ‘발명’해야 했다.
눈은 빛을 뇌 안에서 유용한 설명서로 변환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로 발달했다. 근본적으로 뇌는 외부 세계로부터 감각 기관을 자극하는 특정한 성질만을 받아들이고, 그 결과 얻어진 입력은 뉴런의 전기 활동으로만 전달된다. ‘본다’는 건 무슨 뜻일까? 시각 기관은 왜 그렇게 생겼으며 그것이 뇌 즉 마음에 관해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활발하게 움직이는 생물의 경우 보기, 듣기, 냄새 맡기와 같은 ‘원거리 지각’은 외부 세계의 협상을 통해 예측 능력을 키워준다.
원래 빛을 흡수하는 기능만 했던 표면이 중간 단계를 거쳐 상을 만들어 내는 표면으로 진화할 수 있다. 피부 조각은 고도로 전문화된 기능 모듈이 되어 눈이라는 하나의 기관이 된 것이다. 세포의 타고난 복잡성으로부터 체계의 복잡성이 비롯된다. 세포는 자신이 무엇이 될 것인가 하는 선험 명제를 모른 채 그렇게 되었다. 이는 창발적 성질이다. 체계는 완성된 상태이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니라, 진화한다. 그 과정이 이렇게 복잡한 걸 보면, 직관적으로 어떤 끌개attractor나 공정process이 눈의 진화를 인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공정이란 그런 게 아니다. 거기에는 눈이 되려는 의도가 없다. 눈이 등장한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 거의 모든 해법을 찾을 수 있다. 그 체계는 평평한 망막이 될 지 갈릴레이 렌즈가 될지 몰랐다. 단지 구조적으로 그럴 듯한 모든 걸 시도했고 그 시도 중 하나가 당시에 기능적 이점이 있었을 뿐이다. 이러한 해법이 가진 공통점은 무엇일까? 직진, 반사, 굴절과 같은 빛의 성질을 이용해 상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유리 구슬을 만드는 방법은, 유리를 녹여서 아직 말랑말랑할 때 막대로 만든 다음, 무늬를 집어넣고, 짧을 원통으로 자른다. 그런 다음 연마제와 함께 통에 넣고 굴린다. 일정 기간 굴리고 나면 완벽하게 둥글어지거나 최소한 그에 가까워진다. 유리구슬을 만드는 방법은 진화를 거치는 동안 생물에게 일어나는 일과 같다. 무언가를 충분히 오래 구르도록 내버려두면 거의 완벽해져서 나온다. 그러한 것이 마구잡이 충돌과 인내의 힘이며 자연이 가진 지능의 총합인 것이다. 거친 모서리, 흠집, 불량품 등은 자연선택에 의해 체계적으로 떨어져 나간다. 남아서 다음 세대로 계속해서 전달되는 건 이로운 측면, 즉 효과가 있고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그리고 생존은 자연선택의 연료이다.
이와 반대되는 관점은, 생물 발달의 완성은 결코 많이 굴린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진화에 대한 보편 법칙은 편리함과 유용성을 바탕으로 한다. 저항이 최소인 경로를 택하는 것이다. 빛이 공짜이고 붙잡기 쉽다는 사실을 이용하려는 진화적 동기를 진전시킨 결과, 스스로의 먹이를 만드는 식물이 생기고 눈은 외부 세계의 상을 만들 수 있는 피부 조각을 만든다. 이 모든 것은 쉬운 길을 택한 결과이다. 쓸 만한 건 취하고 그렇지 않은 건 버린다. 무엇보다도 위험은 피한다.
외부 세계의 상이란 무엇인가? 상은 실재의 단순화이다. 뇌는 실재를 단순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외부 세계를 단순화하는 것이지만 아주 유용하다. 모든 감각 변환은 외부 세계로부터 일어나는 보편성의 단순화된 표상이다. 뇌는 내적 의미를 가진 기하학을 만들어서 외부 세계의 분열된 측면들을 표상하고 있는 것이다. 눈은 튀는 빛의 기하학을 유입하는 뉴런들이고 뇌는 외부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기하학을 측정하고 인식하는 한 벌의 좌표계이다.
감광성 피부 조각이 눈이 된 것처럼 언어도 같은 길을 걸었다. 둘 다 외부의 분열된 성질들을 기하학적으로 내면화하는 전문화된 장치이다.


제6장 나, 소용돌이 (vortex)

주관성의 문제는 철학과 인지과학 분야에서 뜨겁게 논란이 되는 주제이다. 주관성은 정말 필요한 것일 것? 로봇처럼 보고 반응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무언가를 그냥 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실제로 경험함으로써 유기체가 얻는 이점은 무엇일까? 만일 주관성의 기반이 되는 의식consciousness이 있다면, 그 의식은 신경계 기능이나 생물에 속하지 않는 신경계 기능의 등가물 영역 안에 존재할 거라고 생각한다. 단세포 ‘동물’에게 자극반응성irritability이 있어서 외부 자극에 대해 조직적이고 목표지향적인 행동으로 반응한다는 걸 안다. 그러한 세포 성질이 아마도 감각세포와 근육세포가 표현하는 반응성과 운동성의 기원일 것이다. 그래서 반응성과 주관성이 원래 단세포에 속하는 성질이라는 느낌을 떨치기 힘들다. 만일 그렇다면 세포들이 조직되어서 신경세포 회로인 집합체가 되는 것처럼 원시 주관성도 신경계가 표현하는 의식과 주관성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특정한 건축구조만이 그러한 원시적 ‘느낌’을 뒷받침하고 키울 수 있음에 주의하라. 이 장의 목표는 인지의 문제는 경험적인 문제이지 철학적 문제가 아니라는 걸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이다.
범주적 표상을 완성하는 게 어떤 한 세포의 전기 활동이 아니라 여러 세포의 집단 활동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순간적이며 실질적인 목적을 위한 내적 표상이나 감각운동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전혀 다른 감각 출처에서 처리한 정보를 하나로 결합시키는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마치 눈으로 책을 읽다가 소리를 내어 읽어서 운동성분을 추가하듯이 이 메커니즘은 내부 구조의 생각이나 기억을 연관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도 책을 잡는 일과 보는 일, 소리 내어 읽는 일, 그리고 맨발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 단일한 사건으로 시간적으로 이음매 없이 결합되어 있다. 여기서는 각각의 뉴런이 이 사건에서 미리 정해진 특정한 한 측면만을 표상한다고 가정할 때와는 다르게 또 다른 표상을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경험을 만들어낼 때 내 소유인 것(손과 맨발의 표상)과 낯선 요소(읽고 있는 책의 내용)를 연결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여기서의 논점은 뇌가 타고나지 않은 사물과 사건, 즉 외부 세계에 있는 것의 표상과 신체의 표상을 같은 방식으로 다루는가 하는 것이다.
뉴런이 서로 다른 특정 기능을 수행하도록 진화되어 각 조각이 해당된 것만을 표상한다면 뇌는 어떻게 하나의 유용한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특정한 감각 사건들이 단일한 지각 대상으로 통합된다는 사실과 뉴런 메커니즘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알게 된다. 뇌가 이 통합을 맥락에 따라 다르게 실행한다는 점은 1장에서 다루었다. 특정한 감각 사건의 통합, 즉 지각 대상의 내용은 뇌의 내부 맥락인 주의attention, 순간적인 기능 배치에 의해 일어난다. 이것은 깨어 있음과 잠들어 있음의 기능 상태를 비교하면 가장 잘 알 수 있다. 잠 잘 때는 왜 듣지 못할까? 신호가 일정한 처리 단계까지만 도달하고 그 이후로는 뇌가 무시하기 때문이다. 수면상태에서는 내부 맥락이 우세해서 뇌가 감각입력을 내부 맥락 안으로 통합시키지 않는다. 잠자는 동안 뇌의 내부 맥락은 아주 큰 소리를 제외한 어떤 청각 정보에도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뇌의 1차 감각 영역에서 관찰되는 개별적인 감각 성질의 분열된 표상들이 어떻게 연결되거나 모여서 완전한 하나의 패턴(단일한 지각대상)으로 만들어지는가? 내적 중요성이 어떻게 우세한 맥락에서 재구성된 패턴에 주어지는가? 오랫동안 신경학 연구계에서는 인간의 뇌 회로가 성장하는 동안 근본적으로 변화되지 않고 미세 조정될 뿐이라고 여겨왔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신경 회로는 날 때부터 있으므로 학습할 필요가 없다. 반대로 어느 정도 미적 가치가 있는 바이올린 연주를 하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3장에서 말한 시냅스 연결망의 경험적 미세조정이다. 다른 예로 언어 능력은 유전적으로 결정된다. 따라서 이 능력의 원인이 되는 뉴런 회로는 날 때부터 있다. 이 방정식에서 어떤 언어가 모국어가 될지는 양육의 측면에 달려 있다. 구조적 선험 명제를 이해하는 것은 피질 언어 영역의 발견과 함께 시작되어 라모 이 카할의 해부학 연구와 함께 이루어졌다.
‘공간적 사상’이라 불리는 점 대 점 뉴런 연결성의 구조적 선험 명제는 관련된 뉴런 간의 연결에 의해서 생긴다. 뉴런 대 뉴런 의사소통으로 생겨난 위계 조직이 모든 사정을 아는 세포를 만들어서 감각이 준 실재의 파편들을 합쳐 단일한 내부 지각대상으로 바꾸는 일이 가능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메커니즘이 작용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이것은 시간 결맞음(temporal conherence)이다. 뇌 발달에서 ‘함께 발화하는 뉴런은 함께 배선된다’고 말했다. 이 말을 변형하는 ‘함께 발화하는 뉴런은 공모한다’ 혹은 ‘시간의 일치가 의식이다’가 된다. 공간적 연결성의 제한된 가능성 위에 시간 영역의 연결성을 포개어 대응시키면 거의 무한한 조합이 가능하고 생겨날 수 있는 표상의 집합도 엄청나게 커진다. 이것이 공간적 결합과 시간적 결합에 기초한 지각 단일성의 개념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두피에서 검출될 정도로 충분히 큰 40Hz의 결맞음 뉴런 활동은 인지적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에 일어난다. 나아가 일부는 40Hz 활동이 시상피질계의 공명 성질을 반영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그 동안 40Hz의 결맞음 활동은 지각되는 세계의 내부사항을 표상하는 많은 감각과 운동 벡터 성분들에서 단일한 지각적 존재를 만들어내는 주체로 지목되어 왔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외부 세계를 말해주는 체계인 뇌라는 기계는 감각 정보가 들어와서 깨워주길 기다리며 졸고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윙윙거리며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40Hz의 결맞음 파동이 의식과 관계가 있다면, 시상 피질계 안에서 일어나는 활동의 동시성에 의해 결정되는 불연속 사건이 의식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40Hz 진동이 높은 공간 조직도를 가진 것은 커다란 뉴런 연합체에 걸쳐 리듬 있는 활동을 시간적으로 연결하는 메커니즘일 가능성이 높다는 증거이다. 또한 광범위한 시간 사상이 인지를 일으킨다는 뜻이다.
시상피질계는 외부 세계의 감각 관련 성질들을 내부에서 발생하는 동기나 기억과 동시에 연관시키는 등시적 영역에 대해 닫힌계이다. 시간 영역에서 외부 실재와 내부 실재의 분열된 성분들을 단일한 구조로 결합하는, 시간적으로 결이 맞는 이 사건이 바로 ‘자아self’의 실체이다. 뇌의 입장에서는 편리하고 지극히 유용한 발명품이다. “결합한다, 고로 존재한다!” 자아는 시간 결맞음에 의해서 단일하게 지각되는 복합 구조로 형성된다. 시간 결맞음이 하나의 자리를 만들어냄으로써 뇌의 예측 기능이 조화로운 방식으로 작동하게 한다. 따라서 주관성 혹은 자아는 시상과 피질 간의 대화에 의해 생겨난다. 다시 말해서 결합 사건이 자아의 토대인 것이다.
모든 뇌 기능 중에서 예측은 가장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기능이다. 우리는 이 예측의 중심을 이른바 ‘자아’라는 추상 개념으로 알고 있다. ‘나’는 언제나 굉장한 수수께끼였다. 물리적인 ‘나’의 존재란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것은 그저 특별한 정신 상태일 뿐이다. 자아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주 중요하고 유용한 구조이고 복잡한 고유 벡터이다. 오직 계산된 실체로만 존재한다. 유럽과 남미에서 축구 경기 도중에 일어나는 폭동을 생각해보라. 광적인 스포츠 팬에게는 자신이 지지하는 팀이 자기 자신의 연장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자신의 이념을 위해서 하듯이 그들은 ‘팀’을 지키기 위해서 다칠 위험을 무릅쓰고 기꺼이 싸운다.
색깔, 냄새, 맛, 소리와 같은 감각의 2차적 특질들은 본질적인 중추 신경계 의미론semantic의 발명품 혹은 구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 의미론은 감각 입력을 내부 맥락 안으로 들여보내서 뇌가 외부 세계와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하게 한다. 위에 말했듯이, ‘자아’라 불리는 발생된 추상 개념은 근본적으로 감각의 2차적 특질과 다를 게 없다. 자아는 본질적인 중추신경계 의미론에서 나온 발명품이다. 그것은 중추신경계라는 닫힌계 안의 끌개attractor, 즉 실재 존재하지 않으면서 관련 없는 부분들을 연관시키는 추진력인 하나의 소용돌이vortex로 존재한다. 자아는 외부적으로도 유도되고 내부적으로도 유도되는 지각대상percept들을 조직적으로 결합한다. 즉, 유기체와 내부 표상의 관계를 엮는 베틀인 것이다.
자기뇌파검사에서 깨어있을 때나 렘수면 상태일 때는 40Hz의 결맞는 자기 활동이 존재하지만, 델타수면을 하는 동안에는 크게 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렘수면을 하는 동안 외부 세계를 지각하지 못하는 이유는, 신경계의 본질적인 활동이 뇌가 일으키고 있는 기능 상태의 맥락 안으로 감각 입력을 들여놓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렘수면 동안 일어나는 감각 입력은 진행 중인 시상피질 활동과 시간적으로 서로 관련되지 않으므로 기능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깨어 있음과 렘수면 모두 인지적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면 상태의 특징적인 이미지 만들기에서 외부 환경은 대부분 제외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꿈꾸는 뇌는 그것의 본질적 상태에 점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는 게 특징이므로 외부 자극은 대개 이 활동에 끼어들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제7장 고정행위패턴(FAP), 뇌의 자동 모듈

우리는 사고, 지각, 꿈의 광범위한 진동 패턴을 만들어내는 게 가능한 놀라운 생물학적 ‘기계’를 가지게 되었다. 자아와 자기 자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자아, 즉 예측의 중심은 항상 변하는 세계 안에서 몸이 완수해야 하는 모든 묘기를 매 순간 조화롭게 편성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잘 정의된 운동 패턴의 집합인 고정행위패턴fixed action pattern, FAP, 즉 미리 만들어진 ‘운동 테이프’를 활용해야 한다. 스위치를 켜면 걷기, 삼키기, 새의 지저귐과 같은 잘 정의되고 조화된 운동이 나온다. 이 운동 패턴을 ‘고정’되었다고 말하는 이유는, 한 개체에서뿐 만 아니라 한 종에 속한 모든 개체 안에서 정형화되어 있으며 비교적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고정성은 간단한 운동 패턴부터 복잡한 운동 패턴에까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간단하고 기본적인 운동 반사 일부를 작동하는 데에는 상위의 중추신경계가 필요 없다는 증거이다.
고정행위패턴FAP은 보다 정교한 반사이다. FAP는 하위 반사들을 묶어서 협동운동으로 만드는 것 같다. 자극에 대해 정형적이고 리듬 있는 신체의 운동을 구체화하는 뉴런 그물망을 중앙패턴 생성기central pattern generator, CPG라고 한다. 그물망은 걷기에서처럼 고정행위패턴을 가동시키는 뉴런의 활동패턴을 만들어낸다. FAP는 운동 활동의 모듈로 볼 수도 있다. 모듈은 불필요하게 소모되는 시간과 진행 중인 운동의 모든 측면, 혹은 운동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부담에서 자아를 해방시켜 필요한 곳과 시간과 주의를 쓰도록 해준다.
FAP는 기저핵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것 같다. 기저핵은 뇌의 운동계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피질하핵의 거대한 집합체이다. 오랫동안 신경과학계에서는 기저핵이 본질적인 회로를 가지고 있는 운동 프로그램의 저장고라고 생각했다.
목표를 실행하는 방법의 수가 엄청나게 많다면, 한 동물은 특정한 욕구나 목표를 어떻게 실행할 수 있을까? 어떻게 옳은 선택을 내릴까? 옳은 운동을 선택한다는 건 분명 생존과 직결된 것이므로 최소한 자연 선택이 과정을 줄이는 메커니즘을 잘 다듬어서 신경계 안에 새겨 넣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운동계가 과잉 완성되어 있다고 할 때, 효율적인 운동을 적절히 이행하기 위해서는 총체적 전략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시간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생리학적인 관점에서 FAP의 과정은 체계의 엄청난 자유도를 줄여준다. 이 FAP를 위해서도 여러 가지의 특정한 협동 근육이 동기적으로 조화롭게 활성화되어야 한다. 이 운동 사건을 추진하는 특정한 운동뉴런은 동기적이고 조화롭게 발화함으로써 기능적으로 특정한 발화 패턴, 진동수, 기간을 가지게 된다. 그 체계는 진화하면서 경험한 시행착오에 의해 특정한 운동 기능 모듈인 FAP 안에 새겨졌다. 그 결과 거의 무수한 수의 운동뉴런 활성화 패턴 중에서 무관한 것을 모두 솎아내는 기적을 이룬 것이다.
운동계의 제약에는 FAP와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전략적 성분이고, 다른 하나는 전략을 맥락에 따라 실행하는 전술이다. 긴밀하게 서로 얽힌 이 두 성분은 실제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진행된다. FAP가 먼저 하나의 연쇄행위로 활성화된 후에는 상황의 맥락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잠시 다른 많은 것을 희생하고,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주변 시야에서 무언가가 시선을 끌면 우리는 눈을 움직여서 대상을 시야의 가운데쯤으로 가져간다. 이것은 시각계가 채택하는 총체적 전략이다. 분명히 FAP이다. 반사이면서 잘 제안된 것이다. 전술은 ‘어떤 부분을 볼 것인가’를 선택하는 자발적이며 의식적인 활동이므로 FAP가 아니다. 전술은 갇혀 있다가 자유롭게 탈출하는 FAP를 억제한다. 그림 한 구석이 시각적으로 특히 마음을 끈다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른 사건은 그냥 버려둘 것이다. 근접 영역에 반사적으로 주의를 돌린다는 전략을 자발적으로 억제하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양의 체계의 자유와 선택의 여지는 FAP 덕분에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동시에 FAP라는 제한 작용을 멈추거나 수정을 하기 위한 선택 능력은 전략 안에서의 자발적 전술로 온전히 남아 있다. 일단 FAP가 활성화되었더라도 전술에 의해 정형화된 운동 실행을 조정할 수 있다. 제한된 운동 사건의 탈출인 FAP의 실행은 시상피질계, 즉 자아에 의해 이루어진다. 의식은 어떤 상황에서 일어나는 맥락의 결과를 예측해서 의도록으로 선택한다. 운동이 반응에 의해서만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의식이 출현한 것이다.
언어는 그 자체가 FAP이다. 그것도 전운동 FAP로 기저핵의 활동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FAP는 조정이 가능하다. 따라서 학습될 수도, 기억될 수도, 완성될 수도 있다. 뇌는 어떻게 학습되고 기억할까?


제8장 감정, 행위의 전주곡

우리는 감정적 자아의 성질과 변천을 ‘인간성’이라고 부른다. 나는 감정이 고정행위패턴에 대한 전운동의 관계처럼 행위에 대한 ‘전운동’이라고 간주한다. 운동을 실행하기 전에 근육이 긴장하는 것처럼 사람은 어떤 행위를 하기 전에 감정이 생긴다. 다만 감정을 조절하는 변수는 근육 활성화 수준인 근육 긴장과는 달리 매우 다양해서 악명이 높다. 재미로 기독교의 감정상태는 7대 죄악 – 오만, 분노, 탐욕, 정욕, 시기, 나태, 폭식이고 진정한 감정 상태로 보기 어려운 7대 덕목 – 정의, 신중, 절제, 용기, 신앙, 자비, 희망이 있다. 이 7대 덕목은 이상적인 덕목으로 스스로 복을 받는다고 ‘계몽된 자기 이익’의 개념인 것이다.
감정을 규정하는 건 후뇌이다. 후뇌의 활동은 감정적 느낌뿐만 아니라 수많은 운동적, 자율적, 내분비적 상태를 뒷받침하고 만들어낸다. 그 상태들은 사회적으로 지향성을 신호하고 행위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표시하기 위해서 진화되었을 것이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행동을 유발하고 행동은 위한 내부 맥락을 만들어내는 것이 감정상태이다. 이러한 감정상태란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감정 상태를 비운동 FAP와 그 너머의 것에 연관시키고 싶다. 일단 감정상태는 운동 행동에 맥락을 제공한다. 그런 의미에서 통증과 그 다음 단계인 공포는 둘 다 감정상태이다. 통증의 불쾌함은 뇌에 의해 생겨나는 감정 상태이지 특별한 신체 부위에 존재하는 게 아니다.
감각이란 뇌의 본질적인 활동이 지어내는 구조물로 깨어 있는 동안 시상피질계가 제공하는 일시적인 내부 맥락 안에서만 작용한다. 이런 관점에서 감정은 FAP 자체로 혹은 FAP의 전역적 감각 측면으로 볼 수 있다.
감정이 일어나는 곳은 시상하부, 편도체와 후뇌이다. 오늘날 자율신경 사건이나 감정 사건과 관련된 FAP가 시상하부 활성화에 의해 유발된다는 건 정설이다. 시상하부는 감정의 발생과 신체의 자율신경, 그리고 내분비 활동에 주요한 구조이다.
사람의 후각계는 시각이나 청각과 비교할 때 외부 세계에 관해 제공하는 정보의 양이 다소 제한되어 있다. 우리는 아주 많은 향기를 인식할 수 있지만 떠오르는 범주는 매우 포괄적이고 단순하다. 원시적인 동물의 의식이 바로 인간의 후각처럼 포괄적이고 단순했을 것이다. 여기서 다시 선택의 축소라는 뇌의 거시적 전략을 볼 수 있다. 후각은 사물의 화학성분을 분석한다. 즉, 촉각이나 시각이 사물의 거시적 본성에 관한 정보를 주는 것과 달리 후각이 탐색한 분자적 정보는 커다란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후각을 통한 감각 입력은 의식의 수준에 도달하지 않고도 교묘히 사람의 행동을 조정할 수 있다. 이것을 보습코계라고 한다. 현재 사람의 보습코계는 퇴화한 2차 후각계로 중추와는 연결되어 있지 않다. 중추와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보습코계는 사람들의 기호를 결정하는 기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의식에 도달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극하는 게 분명하다. 말하자면 페로몬에 반응하는 코 앞부분의 말초 수용기관에서 기호의 결정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비이성적인 좋고 싫음을 설명하는 더 그럴듯한 각본은, 그것이 의식에 닿지 않는 다른 ‘역하subliminal’ 입력에 있다는 것이다. 좋고 싫음의 태도나 감정 상태는 인간이 의식을 탐구하기 훨씬 전부터 나타난다. 많은 변수와 표현에서 행동은 의식을 거치지 않은 생리학적 사건에 의해 교묘히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어떤 태도나 의도는 잠재의식으로 받아들인 자극과 관계가 있다는 가설이 있다. 어떤 행동은 잠재의식에 의해 활성화되지만 표현은 느리다. 이 체계가 불러 일으키는 감정상태는 식사 후 경험하는 포만감과 유사하다. 이로서 의식은 과잉완성 체계를 위한 해결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FAP와 아주 흡사하다. FAP가 운동 영역 안에서 필요할 때 사용되고 금세 사라지는 순간적이지만 잘 정의된 기능 모듈을 대변한다면, 의식은 그 순간의 맥락 안에서 초점이 되어 이용되고 버려지는, 역시 순간적인 기능 모듈을 대변한다. 초점을 맞추는 것은 선택의 폭을 축소시킨다. 예측하고 결정(선택)하는 성질인 의식은 불연속이다. 초점이라는 총체적 전략이 의식의 낭비를 막기 위해 그렇게 명령을 내린다. 시상피질계는 인지와 의식을 활성화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지와 의식은 어쩌면 FAP를 유발하는 감정상태에서 진화했을 지 모른다. 의식에는 집중을 통해 선택을 줄이는 능력이 있다.
FAP는 학습될 수 있음에 틀림없다. 더 좋은 점은 사람의 FAP는 경험에 의해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9장 학습과 기억

고정행위패턴FAP이 신경계가 진화시킨 유용한 도구의 집합임에도 불구하고 자체의 본성에 의해서 상당히 제한되기도 한다는 걸 알았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든 유기체가 사는 세계는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주어진 FAP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FAP는 자체 영역, 즉 자체 회로 안에서 조정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FAP가 그것의 기능이 확실하게 배선되어 있다면 사람에게 의사소통과 사고의 복잡성에 필요한 언어의 적응성도 결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진정한 FAP로서의 자동운동 패턴은 생존을 위해 기억하고 변화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개체발생적으로는 어린이가 성장하는 동안 신체 부위의 변화를 유입함으로써 그렇게 한다. 신경계가 변화에 맞게 조정되는 것이다. 이 같은 유연성은 신경계가 몸에 맞게 적응하고 그 결과를 내면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종족발생적으로도 볼 수 있다.
신경계를 통해 학습하고 기억하는 것은 진화적으로 그 기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습과 기억의 방법을 학습하고 기억해야 했다는 걸 의미한다. 인간이 학습한다는 사실은 계획된 것이라기 보다는 자연선택의 산물이다. 그러나 특정한 사람이나 동물이 학습하는 내용은 발달 도중에 경험한 수많은 필요와 사건, 즉 개체의 삶이라 불리는 풍요로운 꿈의 산물이다. 개체의 삶은 즉각적이며 생물학적 유산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우리의 기억은 우리와 함께 죽는다.
이 시대의 신경과학에서 학습과 기억은 중심적인 논제이다. 학습 능력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 안에서 자신을 더 향상시키는 데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 학습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이 있다.
1. 인간의 뇌는 태어날 때 완전히 배선되어 있긴 하지만 학습의 잠재력과 함께 성숙하므로 아직 어떤 것도 학습하지 않은 상태라고 가정한다. (빈 서판 TABULA RASA 관점) 사실상 모든 것을 학습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것이 희미한 유아기 동안에 일어난 신기한 일이다. 이러한 태도의 좋은 예는 언어가 근본적으로 강화와 보상에 의해 발달된다는 관점이다. 따라서 뇌는 학습하는 기계로 비춰진다. 빈 서판에서 출발하여 단순히 경험을 받아들이고 조금씩 늘리면서 기억 파일 위에 기억을 쌓는 기계 말이다
2. 인간은 잘 배선된 뇌와 그 유전적 배선에서 유도되는 놀랄만한 양의 지식을 지니고 태어난다. 신경계의 능력이 경험을 기초로 스스로를 조정한다는 관점이다. 또한 우리가 기본적으로 어느 수준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걸 학습한다고 생각한다. 즉, 어마어마하게 많은 지식을 습득한 사람도 완전히 무식한 사람과 신경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르지는 않다는 뜻이다.
진화의 과제는 적절한 형식을 학습하고 서서히 미세 조정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어떤 종에게 부여된 구조적 형태는 그 종의 생존에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진화는 뇌와 함께 외부 신체의 세계를 조립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의식을 가질 능력은 기능적으로 선험된 명제라는 의미이다.
참조 기억은 신체 구조와 기본적인 뇌 기능의 배선을 기초로 하고 뇌 연결망의 구조적이고 역동적인 성질을 미묘하게 조정함으로써 기능한다. 기억은 외부 세계와 그것의 성질을 유입한다. 이는 뇌의 기능적 능력으로 인간이 나면서부터 미리 배선된 ‘가능한 모든 세계’와 대치되는 개념으로서 각자 살고 있는 특별한 세계를 기억하게 해준다. 앞에 언급한 학습과 기억은 자연 선택된 유기체의 특성으로 여러 일생에 걸쳐서 깎여나간 기억이라면, 참조 기억은 발달 도중과 단일한 일생을 통해 누적된 기억이다. 그것은 본질적인 능력으로 뇌의 예측 성질을 보조하고 유기체의 생존에 근본적으로 기여한다.
장기 변종에 속하는 참조 기억은 암묵implicit 기억과 외현explicit 기억으로 세분할 수 있다. 서술적declarative 기억이나 의식적conscious 기억이라고도 하는 외현 기억은 일반적으로 얼굴, 대상의 이름, 과거 경험과 같은 의식적 회상의 바탕이 되는 기억을 말한다. 이것은 자발적이고 의도적인 기억의 인출과 그것을 기억했다가 주관적이고 의식적인 자각으로 나뉜다. 비서술적 기억 혹은 비의식적 기억인 암묵 기억은 학습된 활동이나 기술을 수행하기 위한 무의식적이고 비의도적인 기억의 인출이다. 그러한 작업은 무엇이 학습되었다가 기억에서 인출되는지 모르는 상태로 실행된다. 전에 숙달하고 암기한 곡은 학습된 운동 기술을 대표하며 대개 암묵 기억이다. 다음에 무슨 음을 연주해야 하는 지에 관해 생각할 시간 따위는 없다. 그러나 새로운 곡을 숙달하는 과정은 그것이 운동 기술 학습을 대표할지라도 외현 기억과 암묵 기억의 상호 작용을 요구한다. 우리를 인도하는 외현 기억이 없으면 거의 모든 학습은 전적으로 ‘반응적’이고 원시적으로 될 것이다. 의식적 회상으로 기억을 인출하고 있다는 주관적 자각으로 정의되는 외현 기억은 결정적인 맥락과 자의적인 학습을 위한 감독이며 나아가 우리가 ‘창조하는’ 외부의 모든 것을 제공한다. 별개인 두 기억 과정의 상호의존성은 대부분 함께 진화되었음이 틀림없고 시간적인 발달 정도도 거의 같았을 것임을 암시한다.
유전적 기억은 감각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도 일어나는 기억으로 태생적으로 존재한다. 그러한 기억은 오랜 세월에 걸쳐 게놈 안에 일어나는 수많은 작은 돌연변이에 의해 유전자 부호 안에 직접 새겨져 자연선택에 의해 세상에 나온다. 이로운 적응이 게놈에 기록되는 건 연습 때문이 아니다. 미리 정해진 패턴에 우리가 일생 동안 첨가하는 건 학습과 기억에 바탕이 되는 조정, 즉 새로운 연결망인 특정한 시냅스 효율에 영향을 미치는 단백질 수준에서의 변화이다. 개체발생적으로 학습과 기억은 태어날 때 이미 존재하는 기능적 구조이다. 동물은 이 구조에서 요소와 모듈에 아주 약간의 조정만을 할 수 있다. 학습하는 선천적 능력이나 오류를 수정하는 능력에는 범위가 정해져 있다.
학습의 성질에 관한 또 하나의 멋진 예는 ‘각인imprinting’이다. 지각 학습으로 불리기도 하며, 특히 새에게서 자세히 연구되었다.


제10장 감각질, 감각의 결합이 만든 보고

감각질qualia이란 실체의 속성을 가리킨다. 이 책에서는 감각질이라는 용어로 어떤 유형이든 신경계에 의해 생겨나는 주관적 경험을 나타낸다. 오늘날 감각질의 본성에 관해서는 두 가지의 비슷한 믿음이 있다. 첫째는, 감각질은 부수현상을 대표하며 의식을 획득하기 위한 필요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믿음은, 감각질이 의식을 위한 기초이지만 가장 고등한 생명 형태에서만 등장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감각질은 더 진보된 뇌에만 존재하는, 최근에 진화된 중추적 기능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관점은 개미처럼 하등한 동물은 어떤 종류의 주관적 경험도 없다고 여긴다. 이 동물들은 자동적이고 반사적으로 구성된 회로의 집합들로 배선되어 있어서 외부 세계와는 순전히 반응적으로만 상호작용을 하는 것으로 생존한다는 뜻이다. 개미나 바퀴벌레와 같은 원시적 동물은 그 야생 상태 자체로 성공적이기는 하지만, 실재로는 생물학적 자동인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감각질이 진정으로 뇌의 진화적 기능 구조에 얼마나 깊은 관계가 있는가? 중추신경계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예측 기능을 통해 활발한 운동을 유도하는 감각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각 자체가 진화 과정을 통해 지금 우리가 보는 정교한 과정이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아무리 양보해도 감각 경험, 즉 감각질은 신경계 기능의 총체적인 구성에서 근본이어야 한다.
자신이 움직이고 있는 세계를 감각적으로 감시할 필요가 있고 동물은 앞을 향해 운동하기 때문에 앞쪽 끝으로 감각기관이 모이게 된다. 앞에 모인 개별적인 감각기관과 더불어 그것을 지원하는 신경 중추도 자연히 빠르고 예측적인 의사결정을 수행하도록 전문화되어 생존에 중요한 전체적 행동을 기초적으로 유지하게 된다. 그 경험은 맥락을 구성하고 감각 활성화를 통일시켜서 하나의 전역적 기능 상태로 몰아가는 역할을 한다. 그 상태가 ‘나는 느낀다’와 흡사한 상태로 의사결정을 중재하는 작용을 한다.
감각질이 신경세포에서 일어나는 전기적 사건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이론적으로도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 느낌이 유발되기 위해서는 광범위하든 국지적이든 함께 활성화되어야만 하는 특별한 유형의 전기적 패턴이 있는 것이다.
감각 FAP는 주관적 경험을 동반한다. 일정한 뇌 영역을 전기로 자극하면 감각을 일으키고 그 안이나 그 영역으로 통하는 곳에서 전기 자극이 사라지면 감각도 사라진다는 걸 증명할 수 있다. 따라서 감각질은 분명히 전기적 자극 및 위치와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감각질이 존재하는 진화적 이유는 간단하다. 감각질은 궁극적인 핵심을 나타낸다. 감각 자체가 전기적으로 유발된 기하학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뉴런에서 일어나는 패턴화된 전기적 활동과 그것의 분자 대응물이 바로 감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관찰할 수 있는 수준에서의 감각질이란 특정한 뉴런 회로의 집합에 의해 지원되고, 그러한 그물망 안에 속한 일부 뉴런의 활동 및 다른 뉴런의 침묵과 관련되는 기능적인 전기생물학적 사건이다. 감각질이나 느낌의 문제는 의식적 경험의 문제이다. 과학이 느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단세포가 자극 반응성, 즉 자극에 대해 사물이나 다른 세포로부터 멀리 움직이거나 그것에 접근하는 등의 행동으로 반응할 능력이 있음을 알고 있다. 먹이 사냥이나 위협적인 조건에서 달아나는 상황일 것이다. 이러한 단세포 안에 원시적인 방식의 지향성, 즉 원시 감각 기능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과 관련된 어떤 능력이 있음을 일깨워준다. 감각질이 그러한 원시 감각 기관이 전문화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거기에서 출발하여 더 고등한 유기체가 보여주는 다세포의 ‘공동 느낌’ 현상까지 이동하는 데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즉, 감각질은 근본적으로 단세포의 성질에서 일어나는 게 틀림없다는 걸 이해하게 될 것이다.


제11장 추상적 사고와 언어

추상abstraction 또는 추상적 사고abstract thinking는 일반적으로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무언가를 가리킨다. 추상 혹은 추상을 일으키는 신경 과정들의 집합은 신경계 기능의 근본 원리이다. 신경계가 진화에서 분절 방식의 조직을 선택한 것은 몸의 부피에 대한 표면적을 최적화하므로 외부 세계에서 들어온 신경 신호가 이동하는 거리를 최소화하려는 신경생물학적 실용성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중추신경계는 동물이 일련의 단위 분절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추상화한다. 중추신경계가 척수 앞에서 무성하게 뻗어 나와 꼭대기에 있는 대뇌에서 끝난다는 사실은 이것이 진화의 방향이라는 것을 뒷받침한다. 동물은 자신의 내부 표상을 부분들의 집합으로만이 아니라 하나의 전체적 존재로 가질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은 동물의 신경학적 발생에서 비롯된다는 근거로 매우 중요하다. 추상이 시작되고 자아가 등장하는 곳이 바로 여기, 이 원시적 초월사건으로부터이다.
감정이나 감정 상태는 외부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사건이다. 그것은 순전히 내부사건이고 운동성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계속 우리에게 완전히 가려져 있을 것이다. 정확히 어떤 감정이 일어나고 있는가는 주어진 감정에 의해 풀려난 FAP의 표현을 통해서만 추리할 수 있다. 그 자체로 순전히 내부사건인 감정은 중추신경계 쪽에서 보면 단순히 발명된 상태이고 그 자체로 추상이라는 게 여기까지의 요점이다. 감정이 중추신경계 기능의 본질적 산물이라면 추상도 마찬가지이다.
예측에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참조할 근거가 아무 것도 없다. 역시 하나의 추상인 지향성은 원하는 운동 결과의 전운동의 자세한 목록으로, 그것을 통해 특정한 감정 상태가 표현된다. 즉 실제로 하기 전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다. 지향성의 여러 측면을 발성하는 능력이 처음에 사물의 성질을 사물 자체로부터 분리하는 능력으로서 개발되었다고 제안한다. 이 추상의 과정은 오랜 세월에 걸쳐 알파벳과 같은 정신적 자산을 낳았다. 덕분에 우리는 언어를 도구로 사용해서 머릿속에서 재입력할 사건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언어 발생에 선결되는 기반으로 언어가 의사소통이 가능할 만큼 충분히 잘 구성되기 전에, 이미 신경계는 사물 자체에서 사물의 성질을 추상화하는 데 필요한 전운동 심상을 만들어낼 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보편성을 추상화하는 데에는 전운동 심상이 필요했다.
언어의 진화를 고려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하는 중요한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진화 과정에서 추상적 사고는 언어보다 앞서 생겨났다. 둘째, 모든 면에서 의도된 언어로 표현되는 전운동 사건은, 의도된 운동에 앞선 전운동 사건과 똑같다는 것이다. 즉, 언어는 단순히 훨씬 더 크고 일반적인 기능의 범주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언어language란 무엇일까? 한 동물이 다른 동물과 의사 소통하는 방법이 언어라고 정의하자. 어떻게 의사 소통에 의미가 생겨났을까? 여기서 뇌 활동의 전염성으로 불릴만한 무언가가 있다. 예를 들어 웃음이 발생하고 그것을 수용하면 우리는 머릿속에서 유사한 상태를 만들어 낸다. 마치 추상 자체가 전염성인 것처럼 보인다. 이 모방이 언어에 대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신경계가 우연히 감각 입력을 통해 다른 신경계가 보이는 FAP를 알아볼 능력을 얻게 된다면, 이는 그 동물이 무리를 지어 살게 될 때 아주 유용한 성질이 될 것임을 상상할 수 있다. 이 성질은 그 무리를 같은 종류로 묶는다. 그래서 서로를 모방할 능력이 있는 동물은 그로 인해 싹튼 친밀감 때문에 즉시 일가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언어는 추상이나 추상적 사고에서 태어나는 게 틀림없다. 다시 말해서 신경계의 추상성을 일으키는 과정은 이른바 언어, 특히 운율적 언어보다 앞서 생겨났다. 우리는 운율prosody을 순간적인 내부 상태의 외부적 표현으로 정의했다. 내부 상태는 이 외부적 표현을 거쳐 다른 동물에게 의미를 전달한다. 감정이든 의도든 그러한 내부 상태는 외부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당연히 추상이다. 그러한 내부 상태가 같은 것을 의미하게 된 방식은 모방을 통해 진화되었다. 모방은 같은 행동의 공통성을 제공함으로써 다른 동물의 내부 상태와 지각되는 행동 간의 연상을 일으킨다. 모방은 두 가지 주요한 방식으로 일어났고, 유형은 다를지 몰라도 둘 다 내적 추상을 반영한다. 복제copying하는 방법으로서의 모방이 있고, 자신을 추상해서 다른 동물이 보는 시각적 패턴 안으로 집어 넣는 외삽extrapolation이 있다. 포괄적으로 말해서, 모방에 의해 공통성의 단계가 설정되면 그것을 기준으로 외삽의 미묘한 차이가 생기고, 그 차이를 구분하는 것으로 의미 있는 의사 소통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제12장 집단 마음

추상은 본질적 뇌 기능의 일반적인 범주에 들어가는 한 요소로, 생물학 역사에 걸쳐 자연선택 되어 온 신경계의 전체적인 조직에서 비롯되었다. 단편적인 기능을 다루지 않는 신경계도 많이 있다. 단편적인 기능을 하나의 복합체로 결합하는 게 추상이다. 그것은 운동 감각적으로 동물을 그 자신에게 하나의 전체로 비추어준다. 따라서 외부 세계의 맥락 안에 자신을 배치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나아가 대뇌화의 진화 경로에는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보강되는 시상피질계가 있다. 이 보강의 주된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FAP를 억누르기 위한 것이다. 이 능력이 ‘자아’를 추상하는 능력과 결합되면 많은 동물에서 복잡한 꿈틀거림 운동으로 이루어진 탈출 행동이 된다. 이 행동은 동물이 예기치 않은 문제나 어쩌다 꼼짝 못하게 붙들린 상태로부터 스스로 빠져나가도록 도와준다. 그러한 행동을 하려면 동물은 자신을 가둔 맥락 안에 들어 있는 자신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더불어 구속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걷기나 긁기, 씹기를 유발하는 일상적이고 부적당한 FAP를 억누르는 일련의 운동 해법도 적용해야 한다.
자기 이미지와 FAP의 억누름 모두는 신경계의 추상적 성질을 이용해야 한다. 이 추상은 외부 세계로 빠져 나온다. 그래야 모방을 통해 이해되고 학습될 것이기 때문이다.
진화적 현재 시제에서 볼 때 뇌가 지각적 결합과 그것의 부산물인 인지의 문제를 해결한 것은 활성화의 동시성을 보존하고 다듬고 도입한 자연선택의 가장 의미심장한 예이다. 활성화의 동시성 없이 하나 이상의 감각 양상을 조화시키려면 문제는 더 커진다. 듣는 것과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게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악기 연주는 절대로 불가능 할 것이다. 유창하게 말을 하거나 자전거를 탈 수도 없을 것이다. 조화된 활성화의 동시성 없이는 다양한 감각계의 활동을 단일한 지각으로 결합하는 게 불가능하므로 결국 자아는 분열된 채로 남을 것이다. 시간에서 벗어나면 마음에서도 벗어난다. Out of time, out of mind
뇌의 진화가 활성화의 동시성을 도입하고 사용해서 지각의 결합 문제를 해결했듯이, 본질적 뇌 활동의 산물인 추상은 정보에서 합의된 진실을 이끌어내어 인간 사회를 한데 결합하는 의사소통 구조를 단단히 조였다. 그림에 이어 글을 통한 의사소통으로 시작된 추상적 사고는 일련의 기술적 발전을 이끌었다.
웹은 의사소통의 허브로 등장하고 있다. 신경계를 닮은 구조인 웹의 기능이 의사소통적인 활성화의 동시성을 제공하여 개인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거의 동시에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해준다. 게다가 상호작용은 여전히 쌍방향을 유지한다. 웹을 통한 정보의 흐름은 뉴런들 간의 정보의 흐름과 비슷하고, 그것으로 가장 잘 비유된다. 뉴런이 마음을 낳는다면, 웹에서 각 접속점을 대변하는 사람들은 집단 마음collective mind을 만들어 내거나 그 자체가 될 수 있을까? 웹이 인간의 의식을 지원할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생물이 아닌 것도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웹은 의사소통은 하지만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생각과 유사한 형태의 총체적 의사결정 과정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세계 질서가 모든 면에서 뇌의 질서와 닮았다고 여기는 게 합리적일까? 그렇다. 여러 수준에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세포에서 동물까지 한 마리 동물에서 공동체까지 모든 수준에서 표현되는 질서의 유사성이다. 이것은 어쩌면 만물의 보편 법칙이 아닐까 한다.
공기보다 무거우면서 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 살아있는 동물이라는 사실 때문에 13세기나 14세기였다면 날기는 생물의 성질이라고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반대로 20세기 말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날 수 있는 능력이 전적으로 생물에게만 있는 게 아님을 알고 있다. 이처럼 마음이 전적으로 생물학적 성질일까 의심해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컴퓨터는 마음을 가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보이지만, 그것은 인공 마음 창조에 관한 이론적 제약이 아니라 설계 구조 선택상의 한계 때문일 수 있다. 재료의 문제가 아닌 설계의 문제일 수 있다.
‘마음’이 생물만의 성질일까, 아니면 사실은 이론상 어떤 비생물학적 구조에 의해 지원되는 물리적 성질일까? 다시 말해서 생물학이 물리학과 별개라고 믿을 엄밀한 이유가 있을까? 지난 1백여 년에 걸쳐서 수집된 과학 지식은, 놀랍도록 복잡한 생물학이 물리학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는 걸 암시한다. 따라서 의식은 물리적 유기체에 의해 주어질 수 있다. 우리는 어쩌다 그것을 생물학 체계라고 부르게 되었을 뿐이다. 본성상 생물이 아닌 어떤 장치가 신경계 기능의 성질로 간주되는 의식, 감각질, 기억, 자각을 지원할 수 있는가? 즉, 컴퓨터가 과연 정말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더 적절한 질문은, 뇌와 같이 할 수 있으려면 물리적 체계는 어떤 것이 되거나 혹은 어떻게 생겨야 할까? 이다.
인지를 만들어내기 위한 구조가 마침내 실현된다면 우리는 사고하거나 느끼는 기계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설계하고 조립하는 능력은 뇌 기능을 이해하는 데에는 궁극적으로 그렇게 유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행기에 대한 이해가 박쥐나 새를 날게 하는 생리학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