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UN


의식


현대과학의 최전선에서 탐구한 의식의 기원과 본질


저자 : 크리스토프 코흐
이정진 옮김


목차

1장 의식을 향한 출발
2장 개인적인 이야기
3장 의식 문제의 정의
4장 실험실에서의 의식
5장 임상에서의 의식
6장 무의식
7장 자유의지와 뇌
8장 정보 통합과 뇌
9장 새로운 지평을 향해
10장 마지막 문제


1장 의식을 향한 출발

의식은 무의식을 상정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피에르 자네
통합정보이론


2장 개인적인 이야기

뇌와 마음을 연구하는 물리학자에게 놀라운 점은 뇌에는 어떠한 보존법칙도 없다는 사실이다. 시냅스, 활동전위, 뉴런, 주의 집중, 기억, 의식은 어떤 의미에서든 보존되지 않는다.
환원주의


3장 의식 문제의 정의

의식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다. 당신의 몸과 산, 사람, 나무와 개, 별과 음악의 세상을 경험하는 유일한 방법은 주관적인 경험, 생각, 기억을 통하는 것이다. 많은 문화 전통에서 인간이 마음 (혹은 정신), 신체, 초월적 영혼을 가진 것으로 본다. 또 다른 전통에서는 몸-마음의 이원론을 선호하는 3등분을 거부한다. 고대 이집트인과 히브리인은 마음을 심장에 두었지만, 마야인은 간에서 찾았다.
17세기 프랑스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이며 철학자였던 르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궁극적인 확실성을 추구했다. 그는 외부 세계가 존재하는 지 여부, 또는 자신이 신체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도 포함해서 모든 것은 의심할 만하다고 추론했다. 경험하고 있는 것의 정확한 특성이 착각이라고 하더라도, 무언가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데카르트는 그가 의식적이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결론지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프랑스어 “Je pense, donc je suis”는 나중에 라틴어 “Cogito, ergo sum” 또는 영어 “I think, therefore I am”으로 번역되었다. 이 주장은 의식의 근본적인 중요성을 일깨운다. 매우 깊은 잠에 빠졌거나 혼수상태가 아니라면, 항상 무엇인가를 의식한다. 의식은 인생의 중심이다.
감각질(qualia는 quale의 복수형)은 특정한 경험을 할 때 느끼는 것이 그 경험의 특질, ‘quale’이다. 감각질은 가공되지 않은 느낌, 의식적 경험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다. 경험한다는 것은 감각질을 갖는다는 의미이며, 경험의 감각질은 그 경험을 특징짓고 다른 경험과 구별되게 한다. 어떻게 감각질이 발생하는가 하는 물음을 이해하는 것은 몸-마음 문제에서 비롯된 ‘문제’를 없애는 첫걸음일 뿐이다. 그 다음 일은 특정한 감각질이 느끼는 특별한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다.

의식의 기능, 감각질의 기능은 무엇인가? 좀비 작동체’ (zombie agent)
의식의 정의
- 상식적 정의 : 내면적, 정신적 삶과 의식을 동일시한다.
- 형태론적 정의 : 하나 혹은 그 이상을 할 수 있으면 의식적인 유기체로 증명되는 동작 혹은 행동의 목록이다
- 신경 단위적 정의 : 어떤 의식적 감각에 필요한 최소한의 생리학적 메커니즘을 특정한다.
- 철학적 정의 : 의식은 무엇인가를 느끼고 싶어하는 무엇


4장 실험실에서의 의식

뇌 속에 의식 찾기 – 의식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뇌 속의 의식의 발자국을 찾는 여정에서 의식은 정말 존재하는가?
의식은 물리법칙으로부터 독립적인가?
어떻게 정신적 상태의 주관성이 발생하는가?
철학자들이 무책임하게 지어낸 수많은 ‘ㅇㅇ주의’ 중에 무엇이 마음과 몸의 관계를 가장 잘 표현하는가?
의식에 필수적인 뇌 영역이 어디인가 하는 질문은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중요하긴 하지만 뇌의 구체적인 영역을 확인하는 일은 막 시작되었다. 이는 살인 용의자가 동북쪽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소문과 마찬가지다.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의식은 어느 한 영역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한 영역 내에서 혹은 둘 이상의 영역 사이에 조직화된 뉴런에서 생성된다.
선택적 주의와 의식 간의 관계는 무엇인가?


5장 임상에서의 의식

많은 학자들이 의식은 전체론적이며 뇌의 ‘형태학적gestalt’ 산물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너무나도 초자연적인 것이어서 신경계의 특정한 특징에 의해 발현될 수 없다고 추론한다. 대신, 총괄해서 말하자면 의식은 뇌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현상적 의식은 인과적으로 소통하는 부분들로 구성된 통합 시스템의 산물이다. 그러나 의식은 놀라우리만큼 국지적인 측면 또한 지니고 있다.
색맹, 안면실인증(prosopagnosia), 운동맹증(Akinetopsia)
개념 뉴런
통합된 경험 – 두 가지 의식의 흐름을 경험할 수 없고, 두 개의 반구 중 어느 하나의 의식만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
뇌량은 양쪽 대뇌반구의 활동을 면밀하게 조정하고, 별다른 어려움 없이 두 반구가 잘 작동되게 하며, 세상이 하나의 창을 통해 보이도록 한다.
심각한 손상이 뇌에 발생하면 의식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6장 무의식

행동의 대부분이 의식적 접근이 불가능한 무의식적 과정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밝혀졌다.
뇌 속의 좀비 ~~ ‘반사 작용’, 좀비 작동체는 의식의 레이더망 아래에서 틀에 박힌 임무를 수행한다. 무의식적 작동체들은 연습을 통해 형성된다. 수백 시간 동안 집중된 훈련을 거친 후에야 이러한 움직임들은 자동적으로 실행되고 일상적으로 ‘근육 기억’이라 불리는 것으로 치환된다. 계속적인 반복은 좀비 작동체를 모으고, 해당 기술을 어려움 없이 빠르고 무의미한 노력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


7장 자유의지와 뇌

당신은 진정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가?
자유의지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동일한 상황에서 당신이 행한 것과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다면, 당신은 자유롭다. 동일한 상황이라는 것은 외부적 요인만이 아니라 뇌의 상태 또한 동일한 것을 의미한다.
자유의지의 강한 개념에 반대되는 좀 더 실용적인 개념으로 ‘양립가능론’이 있다. 추구하는 바와 선호하는 것을 따라 선택할 수 있다면 자유롭다는 것이 이 개념이 정의하는 자유의지의 의미다. 결정론과 자유의지는 공존할 수 있고, 서로 양립할 수 있다. 이 개념은 사람이 내면적 강요에 의해 조종되지 않고, 타인 혹은 다른 힘에 의해 과도하게 영향 받지 않으며,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고 말한다.
고전물리학과 결정론 – 아이작 뉴턴 '프린키피아, 1687', 피에르 시몽 드 라플라스
결정론적 혼돈 – 에드워드 로렌즈 ‘나비효과’, 나비효과는 인과관계라는 자연법칙을 거스르지는 않는다.
우주를 바라보는 운명론자들의 시각은 1920년 양자역학의 등장으로 결정적 변화를 맞이했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제안한 양자역학적 ‘불확정성 원리’ (1927)는 모든 현상을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하던 고전물리학에 근본적인 전환점이 된다. 이는 모호성을 내포한 독단적 확실성을 대체한다.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것은 파동함수라고 불리는 수학적 개념으로, 슈뢰딩거의 법칙에서 유래하여 결정론적인 방식으로 발전되었다. 이 법칙으로 물리학자들은 주어진 사건에 대한 확률을 유추해냈고, 수소 이온의 특정한 원자 궤도에 한 전자가 위치할 확률을 계산했다. 확률 자체는 매우 정확하게 계산될 수 있지만, 어느 특정한 순간에 전자가 어느 위치에 있을 지 아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주는 환원 불가능한 무작위적 성질을 지닌다. 우주는 미리 정해진 길을 따라가지 않는다. 물리적 결정론은 확률적 결정론으로 대체되었다. 무엇도 정해진 운명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양자역학의 법칙은 여러 가지 다른 미래의 확률을 결정하는 것이지, 그 중 하나가 일어난다고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신경계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양자역학을 따른다. 그러나 모든 분자의 활발한 움직임이 일으키는 집단적 효과는 불확정성을 상쇄하며, 이것을 결어긋남 현상이라고 부른다. 결어긋남 현상이 함축하는 의미는 분자의 생태가 완전히 고전적인 방법으로 다루어질 수 있고, 양자역학적 법칙보다는 결정론적 법칙에 잘 맞는다는 것이다.
비결정론은 중대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인간의 행동이 미리 설명될 수 없음을 암시한다. 우주와 그 안의 모든 것이 자연법칙을 따르더라도 미래 세상의 상태는 항상 모호하고, 더 먼 미래에 대해 알려 할수록 불확정성은 더 커진다.
최근의 논쟁은 ‘얽힘 entanglement’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는 조심스레 준비된 어떤 양자계들이 그들 간의 거리에 상관없이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이 확실히 입증된 관찰이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회전하는 두 개의 전자 혹은 서로 다른 양극으로 분극된 광자와 같이 얽혀 있는 양자계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든 상관없이 항상 연관되어 있다. 두 전자의 거리가 1광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한 전자의 회전이 측정되는 그 순간, 다른 전자의 회전 또한 즉시 결정된다.
철학자 칼 포퍼와 신경생리학자 존 에클스(1963 노벨상)는 정신에 대한 현대의 수호자들이다. 그들에 따르면, 의식적 마음은 움직임을 관장하는 피질의 영역에 위치한 뉴런이 서로 대화하는 방식을 조정함으로써 자신의 의지를 뇌에 투영한다. 특정 부분에 위치한 뉴런들의 시냅스 전파를 활성화하고 다른 영역의 뉴런들은 비활성화함으로써, 마음은 자신의 의지를 물질세계에 주입한다. 포퍼와 에클스의 이론은 종교적 관점과 과학적 입장을 잘 아우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강한 의미에서의 의지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지녔다. 그러나 물리적 배경을 고려했을 때 이것이 근거 있는 제안인가?
뇌는 마음보다 먼저 결정을 내린다. 의지의 의식적 경험은 단순한 활동으로, 주간 혹은 소유의 감각이며, 실제 사건의 발생을 이끈 원인의 부산물이다. 주간감은 현상적인 내용, 즉 감각질을 가지고 있으며, 피질-시상 회로에 의해 촉발되어 의식적인 경험과 같이 감각적인 형태를 지닌다.


8장 정보통합과 뇌

어떻게, 왜 물리적인 세상이 현상적 경험을 생성하기에 충분한가?
의식은 한 뭉치의 뉴런이 서로 연결되어 있을 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의식은 세포들로 구성된 거대한 네트워크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결합이 커질수록, 네트워크상에 이용할 수 있는 의식적인 상태의 목록이 더욱 커진다.
저자는 지금껏 의식이 복잡한 신경계에서 발생했다는 생각을 지지해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주관성은 물리적 기반에서 일어난 발현 현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의식이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생명체의 속성이라고 믿는다. 의식은 조직화된 물질 덩어리에서 기인한다. 이것을 시스템을 구성하는 조직체에 내재되어 있다. 이것은 복잡한 구성 요소들의 속성이며, 더 기초적인 속성의 활동으로 나뉘지 않는다. 우리는 환원주의의 가장 밑바닥에 도달했다.
몸-마음 문제에 관한 과학적 발견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주 방대하고 논리적으로 일관적인 틀을 지닌 의식에 대한 이론이 필요하다. 이러한 체계는 시냅스와 뉴런에 관련된 의식과 연계되어야 하며, 이는 의식 과학에서 성배와 같은 것이다. 더 이상 ‘기술적인’ 수준에 머물지 않고(다시 말해, 의식은 뇌를 구성하는 요소와 이들간의 연결과 관련되어 있다는 정도의 설명에 그치지 않고), ‘규범적인’ 면을 보여줘야 한다. (즉, 의식이 일어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이론은 반드시 첫째 원칙, 즉 우주의 물리적 측면에서의 현상적 경험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이론은 반드시 정확하고 철저해야 하며, 단순히 형이상학적 주장을 모아놓은 것이어서는 안 된다.
모든 과학적 이론의 기본적인 필요조건은 측정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측정 가능한 것을 측정하고, 측정하지 못하는 것을 측정 가능하게 하라’라고 표현했다. 의식의 이론은 반드시 계량화할 수 있어야 하고, 신경해부학적이고 물리학적인 특정 측면을 감각질과 연계할 수 있어야 하며, 왜 의식이 마취 혹은 수면 중에 감소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어떤 생명체가 의식을 사용하는지 반드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설명은 몇 개의 공리에서 시작하여 현상적이고 의식적인 경험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리는 일정한 결과를 수반해야 하며, 일반적이고 실증적인 방법으로 검증될 수 있어야 한다.
데카르트의 사고방식처럼 마법과 같이 생명체에 주관성을 부여하는 듯한 특별한 물질이 없다면, 의식은 반드시 고밀도로 연결된 뇌 세포들의 인과적 상호관계에서 떠올라야만 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문맥에서는, ‘인과적’이라는 말은 뉴런A가 활동하면 직간접적으로, 또한 즉각적으로, 혹은 조금 후에 뉴런B의 활동 가능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정보이론은 모든 시스템 구송 요소들 간의 인과적 상호관계를 계량하는 수학적 형식주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별, 개미, 뉴런, 트랜지스터 한 부분의 상태가 다른 부분에 얼마나 영향을 주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영향이 어떻게 진화하는지 형식화한다. 정보이론은 하나의 조합물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의 전체적인 상호관계를 철저하게 목록으로 만들고 특징짓는다.
각각의 의식적인 경험은 매우 특별한 정보성을 지니며, 동시에 매우 ‘분화된 특성’을 갖는다. 의식적 상태는 둘째 속성을 공유하는데, 이들이 ‘고도로 통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의식적 상태는 무엇으로도 나눌 수 없는 궁극적 실체인 모나드다. 이는 하나의 단위로서, 독립된 경험을 지닌 조각으로 나뉠 수 없다.
의식적 정보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전체적이고 완전하게 내 마음에 존재한다. 이러한 의식의 통합은 내 뇌에서 관련 있는 부분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인과적 상호작용이다. 뇌 영역이 조각나거나 단선되거나 분열되면 마취 상태처럼 의식은 희미해진다. 반대로, 많은 영역이 동시에 활성화되면 결합이 발생하고 EEG 신호가 감소하는 것이 관찰된다. 이것은 깊은 잠에 빠진 상태와 마찬가지로, 통합은 높게 일어나지만 수반되는 특정한 정보는 거의 없다.
줄리오 토노니의 통합정보이론은 이러한 두 가지 자명한 명제로부터, 모든 의식적인 시스템은 반드시 고도로 분화된 상태의 거대한 저장소를 포함한 단일하고 통합된 독립체여야 한다고 추론한다. 결합과 분화는 의식 이론에 관해 그가 내린 처방이다. 이것이 그의 모나드를 이룬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줄리오는 특정한 상태에 있는 모든 물리적인 시스템에서 생성된 ‘의식적 경험의 양’이 부분에 의해 정보가 생성되기 이전과 이후에 시스템에 의해 생성되는 통합정보의 양과 동일하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시스템은 반드시 방대한 규모의 상태와 차별화되어야 하며, 반드시 인과적으로 독립적인 부분들의 집합으로 분해되지 못하는 통합된 전체의 일부로 존재해야 한다.
뇌의 좌우반구를 연결하는 뇌량이 완전하게 절단되면, 대뇌는 통합을 멈춘다. 정보학적으로 말하면, 전체 뇌이 엔트로피는 좌우반구의 독립된 엔트로피의 합과 동일하고, 통합정보는 0이 된다. 전체로서 뇌는 더 이상 의식적 경험을 누리지 못한다. 대신, 각각의 반구는 자체적으로 정보를 통합한다.
통합정보이론은 ‘파이’라고 불리는, 의식의 정도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단위를 소개한다. 비트로 표현되는 파이는 시스템에서 일어나는 불확실성의 감소를 계량한다. 시스템이 특정한 상태로 진입할 때, 진입 이전과 이후에 전체를 구성하는 각 부분에서 독립적으로 생성되는 정보를 측정한다. 파이는 지금의 상태에서 네트워크가 부분의 합을 넘어서 얼마나 ‘상승’ 효과를 볼 수 있는지 측정한다. 따라서 파이는 네트워크의 전체론적 측정 도구로 볼 수 있다.
뉴런들 사이의 활동전위의 동시적 발화는 또 다른 의미에서 통합이라고 할 수 있다. 뇌의 모든 뉴런이 대발작 간질 상황에서처럼 동시다발적으로 발화한다면, 통합은 최대화되겠지만 차별화는 최소화된다는 점을 명심하라. 파이를 최대화하는 것은 두 가지 대립하는 성향의 최적점을 찾는 일이다.
인공지능이 도달하기 힘든 목표, 즉 인간의 지능을 모방하는 일이 세상에 대한 광대한 정보를 연결시키고 통합하는 기계에 의해 달성되리라. 이러한 기계는 높은 파이값을 갖게 될 것이다.
이미 웹은 지각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다. 도대체 어떻게 의식이 있는지 탐구할 수 있는가?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자율성에 의해 놀라운 방식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 것인가?
의식이 갑자기 생겨난 단순한 요소가 아니라 우주의 근본적인 특징임을 상정하면, 통합정보이론은 정교한 형태의 ‘범심론 panpsychism’이 될 것이다. 모든 만물이 어느 정도 지각을 지니고 있다는 가설은 그 우아함과 논리적 일관성 때문에 대단한 호소력을 지닌다. 의식이 실존하며 물리적 기질과는 존재론적으로 구분된다고 가정하면, 전 우주에 지각이 퍼져 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다. 우리는 의식에 둘러싸여 있고, 또한 그것에 빠져 있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중에 있고, 밟는 흙에 있고, 장에 가득한 박테리아에 있으며, 생각할 수 있는 뇌에 있다.
줄리오의 통합정보이론이 지닌 특징은 벌의 의식이 커다란 뇌를 가진 직립동물과 다르고, 이 이론이 예측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지각 있는 기계를 만들 수 있는지 청사진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범심론은 이 가운데 어느 것도 해낼 능력이 없다. 통합정보이론은 아직 유아기에 있다. 이 이론은 시스템의 입력과 출력에 대해서 아직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통합정보는 시스템 내부의 인과적 상호작용을 고려하며, 시스템과 이를 둘러싼 외부 환경 사이의 관계는 고려하지 않는다. (외부 세계가 진화를 통해 해다 시스템의 구성을 심오하게 형성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이 이론은 아직 기억이나 계획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이것이 의식의 최종적인 이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옳은 방향으로 향한 괜찮은 시작이다.
데카르트는 일반법칙을 찾기 위한 대단히 중요한 원칙들에 따라 움직이는 연역적 이론가의 전형이었다면, 베이컨은 능숙한 경험주의자로서 자연현상을 시험하고 귀납적 방법으로 데이터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사람이었다. 과학은 이러한 베이컨의 상향식 분석과 데카르트의 하향식 분석 간의 상호작용 사이에서 아주 잘해왔다. 회의론자들은 비관적으로 전망하지만, 과학은 궁극적으로 수학 이론과 의식적인 인공물에 대한 공학적 발전과 함께하는 실증적이고 임상적인 연구를 통해 의식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9장 새로운 지평을 향해

의식은 우리 삶에서 근본적이고, 더 이상 작게 나눌 수 없는 그 무엇인가? 아니면 대부분의 과학자와 철학자들이 믿고 있듯이, 의식이라는 것은 신체에서 발생한 것일 뿐인가?


10장 마지막 문제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 폴 고갱 타히티에서 그린 명작
서양철학의 아버지인 플라톤은 개인을 물질적이고 영원하지 않은 신체에 갇힌, 비물질적이고 영생하는 영혼으로 생각했다. 이 개념은 말 그대로 이원론의 전형으로, 실세계가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는 믿음이며, 영혼 혹은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으로 세상을 나누어 보는 관점이다. 이러한 플라톤적 관점은 결과적으로 '신양성서'에 녹아들었다. 이 관점은 종말의 때에 부활하여 신과 함께 영원한 영성체에 머물게 된다는, 영혼에 대한 기독교 교리의 기초를 형성한다.
계몽주의 철학자인 데카르트는 태양 아래 모든 것이 하나 혹은 두 가지 실체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상정했다. 만질 수 있는 것과 공간적으로 확장된 것은 ‘물질적 실체 res extensa’를 의미하는데, 동물과 사람의 신체와 뇌를 포함한다. 길이와 폭이 없고, 사람의 뇌가 그려내는 당신이 볼 수 없는 그 무엇들은 ‘생각하는 실체 res cogitans’, 즉 영혼이다. 3세기 전에 스물 다섯 살의 보헤미아 공주 엘리자베스가 데카르트에게 ‘도대체 무슨 근거로 비물질적인 영혼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물질적인 뇌에 지시를 내릴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질문했다. 영혼이 설명될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그것이 시냅스와 같은 물질로서 실존하는 것을 조작할 수 있단 말인가? 뇌에서 마음으로 향하는 인과관계의 흐름은 이해하기 쉽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이해하기 어렵다. 마음-뇌 사이의 대화는 자연법칙을 따라야 하고, 특히 에너지보존법칙에 부합해야 한다. 시냅스들이 서로 얽히는 것 같은 동작을 뇌가 하게끔 하려면, 마음 또한 이에 관련된 동작을 행해야만 한다.
이들의 상호작용에 대한 본질이 질문의 전부는 아니다. 어떻게 영혼이 무엇인가를 기억할 수 있는가? 영혼은 자체적으로 기억 공간을 두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어떠한 논리로 움직이는가?
의식적 자각은 통합정보에서 기인한다. 인과성은 뇌의 역학을 기반으로 흐르지만,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의식은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큰 형태의 시스템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에서 ‘사물이 어떻게 현실에 존재하는가가 아니라,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이 수수께끼다’

나는 내 신념의 주인이다.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다’: '인빅터스 Invictus' - 영국 시인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시
인생의 여정은 마지막 종착역에 잘 보존된 신체로 안전하게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샛길로 미끄러지고 완전히 닳아 해져서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와우, 아주 멋진 일생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