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UN


정치의 이해


목차

제1장 국제정치경제의 접근방법
제2장 지구적 자본 시장과 세계 경제의 위기
제3장 세계화와 국민국가
제4장 발전과 빈곤
제5장 초국적기업과 세계경제
제6장 위기의 경계에 놓은 세계식량
제7장 국제 환경 협력과 에너지 안보
제8장 세계화와 인간노동
제9장 지구화와 인권 및 시민권
제10장 성과 정치, 경제
제11장 평화와 전쟁
제12장 세계화와 살림의 경제
제13장 문화제국주의를 넘어 삶의 양식이 되는 문화
제14장 글로벌 거버넌스와 민주주의
제15장 세계시민의 연대와 공동행동


제1장 국제정치경제의 접근방법


국제정치의 3대 패러다임-현실주의
현실주의자들은 국제정치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에 의해 움직인다고 본다. 그들이 상정하는 힘의 주체는 국가이다.
국제정치의 주 행위자는 국가이며, 국가들 간의 힘겨루기가 국제정치의 요체라는 것이다. 여러 국가로 이루어진 국제체제는 무정부 상태이기에 국제협력이란 기껏해야 예외적이거나 한시적일 뿐이라고 본다.
협력과 평화보다는 갈등과 전쟁이 정상상태이다. 체제수준에서 국제협력의 성취가 가능할 때는 양극체제 하에서 적대진영 간에 힘의 균형이 이루어져 있거나 세계정부의 역할을 수행하는 강력한 국가가 존재할 때 뿐이다.

국제정치의 3대 패러다임-자유주의
자유주의는 국가가 국제정치의 주 행위자임을 부정한다. 국제정치를 구성하는 각국의 정책은 개인들의 집합체인 이익집단, 관료, 정당, 정부 등 다양한 국내정치 주체들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고 본다.
또한 다국적기업, 비정부기구(NGO), 국제기구 등도 중요한 국제정치 행위자로 파악한다. 자유주의자들에게 국제협력은 몇 가지 조건만 맞으면 언제나 가능하다. 세계화의 진행과 더불어 경제적 상호의존이 심화될수록 각국 국제주의자들의 영향력이 증대되어 국제협력의 범위와 정도는 갈수록 깊고 넓어질 것이라 본다.
더구나 세계는 현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무정부 상태에 있는 것도 아니다. 구내정치에서와 마찬가지로 국제정치에도 도덕과 규범, 법과 제도, 그리고 사회여론 등의 규율기제가 존재한다.
또한 국제정치 행위자들 간의 분쟁을 조정하고 국제협력을 촉진할 수 있는 국제기구도 다양한 차원과 영역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다.

국제정치의 3대 패러다임-구조주의
구조주의 역시 자유주의와 같이 다양한 행위자가 존재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행위자들의 선호와 행동을 결정하는 요인은 거의 모든 경우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나뉘어져 있는 세계자본주의체제의 계급구조로 파악한다.
구조주의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경제적 불평등이며 제3세계의 빈곤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를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본질적인 모순구조에서 찾는다. 그 해법도 자본주의를 대치할 새로운 대안 체제의 건설에 있다고 본다.

국제정치경제의 정치적 접근방법-체제수준에서의 정치적 접근방법
먼저 중상주의는 국부의 축적을 국력 싲낭을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고 본다. 따라서 국부 증대를 위한 국가의 시장 간섭과 통제는 필수적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협력을 통한 공동이익 혹은 절대적 이득의 증대보다는 중상주의적 정책 집행을 통한 자국이익의 극대화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국제협력의 성취는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패권안정이론은 국제경제적 안정과 평화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다른 어떤 국가와도 비교될 수 없을 정도의 막강한 정치, 경제, 군사력을 확보한 패권국은 기존 체제의 안정과 유지로 가장 큰 이익을 보며, 불안정과 동요에 의해서는 가장 큰 손해를 입게 된다.
따라서 패권국가는 체제의 질서유지와 안정적 발전을 위한 강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패권국가의 존재는 안정적인 국제질서의 유지를 위한 완벽한 조건이 된다.
한편 신자유주의적 제도주의는 패권국으로서의 미국의 지위가 1970년대 초 이래 약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분야에서의 국제협력은 활발히 이루어져 왔음을 강조하며 국제기구와 제도의 역할을 중시한다.
국가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하지만, 보다 광범위하고 장기적이고 유연한 시각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도 한다. 이렇게 정의되는 합리적 국가들에게 원칙, 규범, 규칙, 법, 제도 등을 포함하는 각종 국제레짐과 국제기구들은 더욱 큰 국제협조에의 유인을 제공한다.

국제정치경제의 정치적 접근방법-국내수준에서의 정치적 접근방법
국내수준에서의 정치적 접근방법은 대외경제정책을 직접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정치가, 관료, 이익집단, 일반시민 등 국내정치변수임을 강조한다.
그런데 대외경제정책의 결정과정이라는 역학은 대부분의 경우 조직화된 경제적 이입집단들 간의 정책경쟁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익집단들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정책결정자들에게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며, 이익이 합치하는 집단들끼리는 상호 연합하고 배치되는 집단들과는 상호 대립하게 된다.
이러한 이익집단들 간의 갈등은 노동자, 농민, 자본가 등의 계층이나 생산요소 간에 일어나기도 하고 산업별 갈등 혹은 개별기업 간의 갈등이 되기도 한다.
이익집단론자들에 의하면, 정권에 대한 지지 정도에 민감한 정부로서는 보다 강력한 정치력을 지닌 연합세력이 선호하는 정책을 채택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국가의 정책은 정책 경쟁에 참여하는 이익집단들의 선호도와 그 구조적 특성에 의해 결정된다.
한편 제도론자들은 정치제도가 언제나 정치행위와 그 결과인 정책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한다. 동등한 정도의 정책선호도와 결집력, 그리고 규모를 가진 노동조합일지라도 그것이 속한 국가의 정치체계, 정당제도, 선거제도 등에 의해 정치력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국제정치경제의 정치적 접근방법-통합적 접근방법
통합적 접근방법은 국내수준과 체제수준의 정치변수들이 상호 영향을 주고 받으며 변화하기 때문에 두 수준의 정치변수를 동시에 고려해야만 국제경제의 변화를 충분히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이론으로는 ‘제2이미지 역전 어프로치’와 ‘자유주의적 정부간주의’가 있다.
먼저 ‘제2이미지 역전 어프로치’는 국제체제가 그저 국내정치의 “제2이미지”로서 종속적 의미만이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고 비판한다. 체제수준과 국내수준의 정치를 엄격히 구별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게 이 입장의 견해다.
대외경제정책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체제변수와 국내정치변수, 그리고 후자에서는 제도변수와 이익집단 변수를 아우르는 통합적 접근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퍼트남은 국제협상과 국내정치는 사실상 하나로 연결된 일체의 게임으로 파악하고, 양자간의 구체적 연결고리로 국내비준을 들었다.

국제정치경제의 정치적 접근방법-자유주의적 정부간주의
모라프칙에 의하면 지역경제통합의 제도화는 다음과 같은 세 단계를 거쳐 완성된다.
제1단계는 지역경제통합과 관련된 각 국가의 선호도 혹은 대외경제정책의 형성과정이다. 이 과정에서는 국내의 정치경제 행위자들과 그들 간의 정책경쟁 행위를 규율하는 정치제도 변수에 의해 개별 국가의 선호가 결정된다.
제2단계는 각국 정부가 체제수준에서 모여 벌이는 국제협상의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개별국가 체제 내에서의 상대적 힘이나 국제기구의 역할과 같은 국제정치변수들의 영향력이 작동된다. 그러나 이 단계가 국내정치변수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 제3단계는 국제적 합의가 끝나고 국내적 비준을 거쳐 국제협상의 결과를 국제제도를 통해 체제 안에 “잠가 놓는” 과정이다.

세계화 시대의 통합적 국제정치경제 분석
세계화의 압력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대외경제정책 결과로 이어지는 지는 네가지 경로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체제변수로서의 세계화 압력이 국내정치구조를 변화시키는 경로다.
두 번째는 세계화의 압력이 국내정치구조를 통과하여 대외경제정책 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이다.
세 번째는 국내정치구조가 세계화시대의 개혁대상이 되는 경우이다. 이는 대외경제정책 결과물에 만족하지 못 한 국내의 정치행위자들이 만족스런 결과를 확보하기 위해 국내정치구조를 바꾸고자 할 때 나타난다.
마지막 네 번째 경로는 세계화의 간접적 영향으로 생성된 대외경제정책이 다시 거꾸로 세계화라는 체제변수를 변화시키는 경우이다.

* 토머스 홉스(1588~1679)=영국의 정치철학자. 자연 상태에서 모든 사람은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발생하여 서로에게 이리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기 때문에, 인간은 각자의 이익을 위해 계약에 의한 국가를 만들며 자연권을 국가에 양도한다고 보았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리바이어던'이 있다.

* 중상주의 = 대표적인 학자로는 토마스 먼, 캉티용, 콜베르 등이 있다. 유럽의 중세 말기에 태동하여 절대왕정의 이념으로 자리잡았다.
화폐로 통용되는 금과 은의 증가만이 국가를 부강하게 한다고 보았고, 국부 증대를 위해 중앙집권적 국가권력의 강력한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 나라의 이익은 다른 나라의 손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었다. 중상주의 시기는 산업혁명의 준비단계로 자본의 축적단계에 해당된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1789~1846) = 독일의 경제학자. 독학으로 관리가 된 뒤 튀빙겐 대학교의 행정학 교수가 되었으나 자유주의적 사상으로 인해 교수직에서 쫓겨났다. 그 뒤 미국으로 망명해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보호무역주의를 받아들였다.
신흥국가가 강대국에 맞서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국가에 의한 강력한 보호조치가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유치산업 보호론으로 불리기도 한다.

* 로버트 퍼트남(1941~ ) = 미국의 정치학자. 하버드 대학 교수이다. 국제 협약의 국내적 차원에 대한 연구 뿐만 아니라 사회적 자본에 대한 연구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 '나 홀로 볼링' 등이 있다.


제2장 지구적 자본 시장과 세계 경제의 위기


지구적 금융위기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동요
지난 2008년 하반기에 본격화된 지구적 금융위기로 인해 현재의 세계경제는 큰 불확실성에 처해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근본적 이유는 현존하는 지구적 자본주의 질서의 구조 자체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0년 동안 세계경제를 풍미하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경제체제로서의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를 분류하는 데에는 경제적 자원의 동원과 배치와 조직과 분배를 결정하는 메카니즘이 무엇인가라는 관점이 유효하다.
흔히 신자유주의 질서의 특징으로 거론되는 ‘자본의 후퇴와 시장의 공세’라는 문구는 정부의 각종 경제적 활동이 자원의 동원, 배치, 조직, 분배에 있어서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하던 질서가 무너지고 정부가 맡던 의사결정이 대폭 시장의 가격기구로 넘어가는 경향을 지칭한다.
그런데 여기서 ‘시장’은 추상적 의미로서의 시장이 아니라 구체적인 금융시장으로 보는 것이 옳다. 무엇보다도 탈규제화를 통해 국경을 넘어 거대한 단일체로 조직되어 가는 ‘지구적 자본 시장’을 중심으로 여타 금융 기관과 금융시장이 재조직되는 형태를 말한다.

자본 시장의 개념
‘자본 시장’과 일반적인 ‘재화 시장’은 서로 다르다. ‘재화 시장’에서 거래되는 재화 및 서비스는 구체적인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무형의 수단이지만 자본 시장에서 거래되는 대상인 유가 증권은 미래에 발생할 수익의 흐름에 대한 청구권이다.
따라서 전자를 구매하는 이들의 목표가 직접적인 필요와 욕구의 충족인 반면 후자를 구매하는 이들의 목표는 더 많은 화폐적 이익이다.
자본 시장에서의 투자자들은 사회 전체의 미래를 염두에 두고서 그것과 연관된 개별 유가증권의 미래 수익성에 대해 평가를 내리며, 이렇게 하여 개별 유가증권의 가격이 결정되면 이에 따라 사회 전체의 인적 물적자원의 동원, 배치, 조직, 배분이 결정된다. 이를 위해 무수한 사회적 과정들이 가급적 모두 하나의 유가증권으로 대표되어 자본 시장으로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현실의 인적 물적 시장은 금융 시장에서의 가격 변동에 민감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수정 자본주의’ 하에서의 다양한 규제를 과감하게 철폐해야 한다.

지구적 자본 시장의 형성과 지구화
지구적 자본 시장의 형성에 기여한 금융의 탈규제화에는, 자원의 동원과 조직을 둘러싼 사회적 조정에 있어 시장을 통해 산출된 가격에서 나온 합리적 계산에 근거하지 않은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기구의 개입을 배제하고, 금융 시장에 최대한의 자유를 부여하고 이를 지구적으로 통일시키면 모든 방면에서 합리적 가격이 산출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1990년대 말이 되면 주요 산업국가들은 모두 이 ‘지구적 자본시장’의 독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지경에 처하게 된다. 기업 경영은 주식 시장에서의 가치 극대화를 금과옥조로 삼는 ‘주주가치 자본주의’로 전환하였고 이는 다시 노사 관계 및 노동 시장, 전체 경제의 산업구조 등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국가 재정은 물론 공공 부문의 구성과 운영 또한 지구적 자본 시장의 동태를 하나의 표준으로 삼아 결정된다. 의료, 교육, 저소득층 주택 문제 등 온갖 굵직한 사회문제 해결의 준거점이 지구적 자본시장이 된 것이다.

금융체제 안정성 신화의 붕괴와 재정 위기
2008년에 불거진 서브프라임 위기는 그 동안 유지되어 왔던 ‘자본 시장 및 금융 체제에 규제를 철폐하면 금융 기관들에 최대한의 자율성을 부여할 때 가장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이루어질 뿐 아니라 금융체제의 안정성도 최대로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따라서 이전처럼 대규모 은행들과 투기적 헷지펀드, 사모펀드 그리고 파생상품시장에 무제한의 자유를 허락하는 것이 옳다는 신념은 근본적 위기에 처하였다. 지구적 금융 체제의 안정성을 위해 일정한 규제의 요소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여러 곳에서 제기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렇다할 지구적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지구적 규모에서 금융위기와 재정위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현재의 상황은 ‘탈규제화되고 지구적으로 통합된 자본/금융 시장의 명령에 따라 작동하는 경제체제’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체제적 공포
현재 나타나고 있는 ‘금융 탈규제화 신화의 붕괴’의 배후에는 좀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원리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이는 체제적 공포와 자본시장의 지시적 기능 상실이다. 만약 주식시장이 미래의 자원의 동원, 배치, 조직, 분배를 결정하는 선도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면 자본 시장에서의 투자자들의 예측에 근거한 가격형성 즉 주가의 변동은 실제의 기업 수익의 변동을 미리 예측해야 할 것이며 두 가지가 반드시 일치할 리도 없다.
그러나 2001년 이후에는 두 시계열이 대단히 긴밀하게 일치하고 시간적인 선후관계도 역전되어 있다. 여기에는 투자자들에게 만연한 ‘체제적 공포’가 작용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 경제와 사회 전체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새로운 경제적 조정 양식을 향하여
지난 30년간 자본 시장 금융 시장을 자유화하여 자기조정적 메카니즘을 부여하고 여기에 사회 전체의 경제적 조직을 내어맡기는 것이야말로 인간 사회의 최상의 경제 체제라는 생각은 하나의 신앙처럼 사람들 머릿속에 자리잡아왔다.
하지만 인간 사회의 경제를 단일의 원리로 획일적으로 조직하려 드는 것은 사실상 가능하지 않은 유토피아적 발상에 불과하다.
현존의 지구적 정치경제 질서가 근본적인 조직 원리에 있어서의 도전에 처한 오늘날, 자본 시장과 금융 시장의 명령이 아닌 인간과 사회가 존엄과 효율성을 모두 누릴 수 있는 대안적인 경제적 조정 양식을 만들어내기 위한 사유와 실천은 절박한 과제가 되었다.

* 신자유주의=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면 정부가 시장경제 운영에 개입을 삼가고 작은 정부와 큰 시장을 지향하며 민영화와 규제완화 등을 통해 민간 경제활동의 자유를 확대해야 한다는 경제사조이다.
1970년대의 경제위기를 통해 대두하였으며 2008년에 시작된 금융위기 이후 많은 비판에 직면해있다.
* 서브프라임 모기지=우수등급(prime) 아래(sub)의 모기지란 뜻으로 미국에서 신용도가 낮은 소비자들이 이용하는 비우량 부동산 담보 대출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소비자들이 대출 원리금을 연체하고 상환하지 못 하면서 모기지 채권이 부실해졌다.
결국 모기지 채권에 무분별하게 투자한 대형 투자은행들이 무너지면서 세계 금융위기가 촉발되었다.
* 유가증권=수표, 어음, 주식, 채권 등 재산 가치를 가지고 값을 매겨 매매할 수 있는 증서를 일컫는다.
* 자본시장=기업들이 사업에 필요한 자본을 장기간에 걸쳐 조달하기 위해 주식, 채권 등 증권을 발행하고 매매하는 시장을 말한다.
* 정크본드=발행사의 신용도가 낮아 원리금을 날릴 위험성이 높은 대신 금리를 높게 매겨 투자자에게 고수익을 안겨주는 채권이다.
* 헤지펀드=소수 거액 투자가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모아 증권이나 외환, 파생상품 등 위험자산에 투자하되 투자에 따르는 법률 규제가 적어서 유난히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특성이 있는 펀드다.

신자유주의의 이해
한국 하이에크 협회의 전 회장이자 국내의 대표적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민경국(1999, 2009)에 의하면 고전적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세가지 기본적 요소를 공유한다.
(1) 개인주의=개인은 그들의 모든 삶의 문제를 푸는 중심이다. 따라서 국가의 개인에 대한 간섭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2) 개인적 자유=자의적이고 교조적인 정부의 억압은 개인적 자유와 자율성을 증진하기 위해 철폐되어야 한다.
(3) 자생적 질서=시민들은 정부의 간섭 없이도 자생적 질서를 만들 수 있다. 특정 목적을 위한 인위적인 질서는 시민의 행동을 제약할 뿐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
이처럼 신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무엇이 다를까?
신자유주의자들은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이 ‘질서 정책’ 없이도 사적 소유권과 계약의 자유가 한 번 확립되면 ‘자생적 질서’가 지속될 수 있다고 보았다고 비판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이 강조하는 ‘질서 정책’은 ‘법 질서’를 통해 ‘개인적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가 본연적으로 개인적 자유를 침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질서 정책’이 특히 중요하다고 본다.
질서 정책은 규칙 지향적인 정책이지 결과 지향적인 정책이 아니다. 다시 말해 정부의 역할은 질서를 규제하는 데에만 국한되어야 한다.
정보가 너무나 광범하게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정부는 집합적 계획을 위해 필요한 모든 정보를 모을 수 없다. 때문에 오직 시장에서만 정보 기능이 원활히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투자은행의 몰락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주역’이었던 메릴린치와 리먼 브러더스는 미국 3, 4위의 투자은행들이었다.
1990년대 이후 금융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이들 투자은행도 전성기를 맞이했었다. 2005년만 해도 이들 투자은행들이 '제 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었다.
신한은행, 산업은행 등 우리나라 금융기업들도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 시행을 맞이해 투자은행 사업에 적극 뛰어들 태세였다.
투자은행들은 타인의 자본을 바탕으로 자기자본이익률을 높이는 '레버리지 효과'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였다.
예를 들면, 자기 돈 1억 원으로 1천만 원의 순익을 올렸을 때 자기자본이익률은 10%가 되지만 자기 돈 5천만 원에 빌린 돈 5천만 원을 가지고 1천만 원의 순익을 올렸다면 자기자본이익률은 20%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빌린 돈의 금리 비용보다 더 높은 수익률만 보장된다면 타인의 자본을 도입하는 게 이득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화려한 수익은 엄청난 부실을 토대로 하고 있었다. 결국 파산을 면치 못 한 리먼 브러더스(Lehman Brothers)의 경우, 채무액이 6,130억 달러로 천문학적인 규모였으며, 무담보채권도 1,150억 달러에 달하였다.


제3장 세계화와 국민국가


국민국가란 무엇인가
국민국가란 명확한 영토의 경계를 가지고 구성원의 강한 일체감에 기반하면서 배타적인 주권을 행사하는 국가유형을 지칭한다.
국민국가는 유럽사회의 변혁의 와중에 등장하였다. 그 시발점인 베스트팔렌 조약은 30년 종교전쟁(1618~1648)의 평화조약이었다.
이후 신중심의 세계관이 약화된 반면 세속적인 정치권력이 강화되었다. 정치권력의 주체인 제후들에게 영토적 주권과 통치권이 인정되었고 정치는 종교의 영향에서 벗어났다.
이후 국제사회에서 주권, 외교권 등의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국민국가 이전의 국가들은 영토의 경계가 불명확하였고 폭력의 정당한 독점적 사용권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 하였다.
그러나 국민국가는 명확한 국경을 가지며 강압력의 축적과 집중의 정도 역시 높다. 국민국가는 행정이 전문화되고 관료체제가 발달하며 배타적인 주권을 행사한다.
또한 내부 동질성이 증대하여 내셔널리즘이 확산된다.

세계화란 무엇인가
세계화는 물리적 측면의 세계화와 비물리적 측면의 세계화로 구분될 수 있다. 물리적 측면의 세계화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수반하는 시공간의 압축현상으로 세계 전체가 하나의 인간활동권으로 형성되는 현상이다. 이는 거역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런데 물리적 측면의 세계화는 필연적으로 비물리적 측면의 세계화를 동반하게 된다. 시공간의 압축이 국민국가 단위에서 일어나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현상들을 세계 수준의 상호작용의 관계로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생산, 무역, 금융의 분야에서 변화가 두드러진다. 이러한 경제적 세계화를 토대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세계화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세계화의 비물리적 측면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세계적 수준에서 구미국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있으며 한국 내에서는 자본가와 상류층이 신봉하는 노선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구호는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무역의 발전이 필연적인 세계화 과정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지나온 세계화의 역사는 금융산업의 발전과 자유무역체제의 확립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한편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비판자들은 신자유주의가 심각한 계층화와 불평등을 가져왔다고 비판한다. 부자 국가들과 가난한 나라의 격차는 더욱 더 확대되고 있어 세계의 양극화가 진행 중이다.
더욱이 부유한 나라에서도 부자와 빈자 사이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세계화와 국민국가
세계화와 국민국가의 운명에 관환 의견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국민국가가 필연적으로 약화된다는 입장이다. 정보화와 디지털화 그리고 경제적 세계화로 정치와 국가의 역할은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금융거래는 국가기관이 개입하기 힘들게 되었고 제동할 수 없는 시장의 힘은 필연적으로 국가의 위축을 가져온다고 본다. 이러한 금융의 지구화로 화폐와 자본이 국경을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케인스주의적 수요관리는 혼란에 빠지게 되었고 국가의 관리능력도 약화되었다.
둘째는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국민국가의 역할이 건재하며 오히려 앞으로 강화될 것이라 보는 입장이다. 이들은 ‘국가 간 경제’와 ‘세계경제’를 구분하여 여전히 ‘국가 간 경제모델’이 국제정치경제의 현실에 더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세계화 자체도 국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으며, 경제적 세계화는 정치의 개입없이 시장원칙과 자본논리에 따라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셋째는 국민국가 변형론자의 입장으로 이들은 국민국가 약화론자와 건재론자의 중간자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세계화의 파고가 거세지만 국민국가는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조응하며 변형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는 위기의 징후를 보이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재편하고 세계화에 대응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국민국가 사이에 복잡다단한 권력 교류의 네트워크가 조성되면서 새로운 다중심 거버넌스를 형성하고 있다.
이처럼 새롭게 형성된 정부간 네트워크는 다양한 기능을 행사하면서 ‘다정부간 조정 협력의 새 시대’를 열고 있다. 더욱이 다양한 정부 간 기구와 국제비정부기구의 등장으로 오늘날 글로벌 거버넌스는 다층, 다차원, 다행위자 시스템의 특징을 띠게 되었다.

초국민국가의 등장-유럽연합의 문제
2009년 유럽연합의 리스본조약이 발효되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은 대통령을 선출하고 외무장관도 둘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유럽연합을 국가로 볼 수 있느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서로 상충하는 견해들이 존재한다.
유럽연합이 아직 연방국가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는 견해도 있지만 완전히 연방국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유럽연합은 최종적으로 유럽연방국가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유럽연합은 입법, 행정, 사법의 삼주체로서 유럽의회, 각료이사회, 그리고 유럽사법재판소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아직 유럽연합의 초국민국가성 여부에 대해 합일된 의견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편 유럽 통합이 왜 그리고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한 연구로는 초국가주의적 시각과 국가중심적 시각이 있다. 초국가주의적인 시각은 유럽의 초국가적인 기구와 제도, 이익집단들이 유럽통합을 추진하고 있다는 주장이고 국가중심적 시각은 여전히 견고한 유럽 국민국가들의 정책이 통합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한다.

초국민국가의 등장-미국의 문제
미국은 국민국가이지만 그 패권이 세계 수준에서 지배적이기 때문에 초국민국가인지 여부에 대한 논쟁이 존재한다. 하트와 네그리는 미국의 지배력이 전세계에 미쳐 있어 350년간 지속된 베스트팔렌 체제는 종식되고 미국의 주권이 국민국가 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형태의 전지구적 주권’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세계는 국민국가 주권이 서로 경쟁하는 체제가 아니라 ‘제국’이라는 거대 주권 안에 전 세계가 놓여 있다. 그 세계는 피라미드의 위계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를 비판하는 입장에서는 세계화의 조류 속에서 시장이 힘만이 강조되고 국가를 통해 사회현상을 분석하고 읽어내는 국가 패러다임이 실종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여전히 국제질서를 형성시키는 권력의 원천을 국민국가의 주권과 국민국가의 영토성에서 찾는다. 권력이란 주권과 영토를 떠나서 생겨날 수 없는데 현재 주권과 영토란 국민국가 단위로 존재하기 때문에 오직 국민국가만이 권력의 소재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국제기구의 권력의 원천도 결국에는 국민국가 회원국에 있는 것이다.

* WTO=세계무역기구. 1995년 1월 ‘자유롭고 공정한 세계 무역질서 확립’을 목표로 출범하였다. 국제통화기금이나 세계은행이 세계 금융시장을 다룬다면 WTO는 실물시장을 대상으로 한다.
이전의 GATT와는 달리 구속력을 가진 기구이며, 서비스나 지적재산권 분야를 포함해 광범한 영역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이 이루어지는지를 감시한다.

* 케인스주의=케인스의 유효수요 이론에 의하면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 상품의 총생산은 상품에 대한 총수요에 의해 결정된다. 총수요는 가계의 소비수요와 기업의 투자수요의 합이다.
케인스주의에 의하면, 수요부족은 불완전고용을 초래하고 초과수요는 인플레이션을 불러온다. 따라서 정부는 재정수입과 재정지출의 수준을 조절하여 총수요수준을 관리해야 한다. 1970년대 실업과 인플레이션이 함께 증가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계기로 퇴조하였으나,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계기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WTO와 FTA의 차이점
WTO와 FTA(Free Trade Agreement, 자유무역협정)는 모두 신자유주의적 대외경제정책을 대표하는 용어들이다. 그렇다면 둘 사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첫째, FTA는 자발적이다. WTO 협상은 모든 회원국들이 반드시 참여해야만 하는 강제성이 있는 반면, FTA는 당사국이 자발적으로 협상을 추진하고 체결한다.
둘째, FTA는 선택적이다. 개별국이 마음에 통하는 상대를 선별하여 협상을 진행하기 때문에, '선택의 자유'가 WTO보다 훨씬 크다.
셋째, FTA는 포괄적이다. FTA는 관세의 완전 철폐를 목표로 하며, 다루고 있는 대상도 투자-경쟁정책-정부조달-환경-노동 등 매우 광범하다.
수많은 나라들이 참여한 WTO 하에서는 아무래도 원만한 합의를 도출해내기가 어렵다. 시간도 많이 걸릴 뿐 더러, 실제 협상이 통과된다고 해도 각종 비관세장벽-관세가 아닌, 환경 및 위생 기준 강화 등을 통한 무역장벽-까지 없앨수는 없다.
반면 FTA는 몇몇 나라들끼리의 협상이기 때문에 합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훨씬 수월하다. 그래서 최근 WTO를 통한 협상은 지지부진한 반면, 대신 FTA가 주목받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아일랜드
혜성처럼 등장했던 유럽의 신흥 부국 아일랜드는 작년 심각한 침체를 경험했다. 아일랜드의 2009년 경제성장률은 -9.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는 유럽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이미 2007년 초부터 2009년 초까지 아일랜드 증시는 70%나 폭락했다. 실업률은 12.2%에 이르렀는데, 불과 1년 새 두 배나 상승한 것이다.
만년 유럽의 변방에서 1인당 GDP가 6만 달러에 이르는 떠오르는 별로 엄청난 도약을 이루어 주변의 찬사를 받던 아일랜드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것일까? 크게 두가지 원인이 지적된다.
하나는 경제성장의 동력을 거의 전적으로 외국자본에 의지했기 때문이다. 외국기업은 2006년 현재 아일랜드 총고용의 약 47.8%, 총부가가치의 86.6%, 수출의 91.7%를 담당하고 있었다.
자원도 빈약하고 이렇다 할 산업도 없었던 아일랜드는 FDI(외국인 직접투자, Foreign Direct Investment)로 성장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정작 자체 기술개발(R&D)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경쟁력 있는 국내기업의 육성은 지체되었다.
결국 중유럽, 동유럽 국가들의 EU 가입으로 외국자본이 유출되기 시작했고 이번 금융위기로 결정타를 맞고만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금융과 주택시장에서 엄청난 거품(bubble)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1996~2006년간 아일랜드의 실질 주택가격 상승률은 188%에 이르렀다. 금융부문에서의 대출도 주택 및 부동산 관련부문에 집중되었다.
2006년 현재 아일랜드의 모기지(mortgage) 부채비중은 GDP 대비 70%로 미국(76%)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건설경기가 아일랜드 경제를 이끌기 시작했다. 건설부문의 비중은 2007년 10%를 차지할 정도로 높아졌다. 건설경기의 고양에 힘입어 외국자본의 유출에도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5%대를 상회하였다. 심지어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초과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거품은 10년을 넘기지 못 했다. 현재 아일랜드 은행의 부실채권 규모는 약 8~900억 달러로 추산된다. 아일랜드 GDP의 절반이 넘는 돈이 숫자만 남은 셈이다.


제4장 발전과 빈곤


현대화 이론과 종속이론
2차 세계대전 이후 수많은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발전을 설명하는 연구가 활발해졌다. 이 가운데 ‘현대화 이론’과 ‘종속 이론’이 대표적이다.
현대화 이론은 발전도상국이 선진국과 같은 경로를 따라 발전한다고 보았고, 반대로 종속이론은 발전도상국이 선진국에 종속되어 만성적으로 저발전 상태에 머물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두 이론의 설명과 사뭇 달랐다. 종속 이론의 주장과는 다르게 해외차관을 이용한 수출주도 산업화를 채택한 발전도상국들은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현대화 이론의 설명과는 다르게 시장경제를 채택한 발전도상국의 발전 정도는 저마다 천차만별이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급속한 발전을 이룩한 반면 대다수 아프리카 국가들은 절대빈곤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의 경제발전과 발전국가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들었는가? 자유시장의 역할을 강조하는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시장경제를 채택하였기 때문에 발전에 성공했다고 주장하였다.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은 민간부문이 주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동아시아 국가의 산업화 과정에서 국가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간과하였다.
예를 들어, 박정희 정부의 핵심 경제부처는 경제기획원이었다. 경제기획원의 관료들은 외국자본과 국내자본을 통제하면서 기업을 지원하는 산업정책을 주도했다.
정부는 대부분의 은행을 사실상 국영은행처럼 통제했으며 수출산업에 성과를 이룬 기업들에 특혜를 주었다. 전기, 전화, 우편, 도로 분야 이외에도 철도, 공항, 항만, 조선, 담배와 인삼도 국영기업을 통해 통제했다.
한국 경제에서 공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던 인도보다 컸다. 양주, 양담배는 사치품으로 수입이 제한되었으며 국내 산업의 육성을 위해 자동차 등 상당수 해외제품들의 수입이 규제되었다.
이처럼 동아시아 정부들은 생산과 투자의 결과를 향상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자원을 배분하면서 시장을 통제하고 지도했다. 이러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격을 설명하는 용어로 ‘발전국가’가 제시되었다.
발전국가는 일종의 계획 또는 전략적 목표에 따른 경제와 사회 제도를 만들어 경제발전을 추진하는 국가이다.

워싱턴 합의와 국가의 역할
한편,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 등 국제경제기구의 지배이데올로기가 된 경제적 자유주의는 민영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세계경제의 자유화를 주창하는 반면 국가의 개입에 일반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취해왔다.
이러한 입장의 정책은 ‘워싱턴 합의’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워싱턴 합의’를 그대로 추종한 남미와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제는 침체된 반면, 그렇지 않았던 중국, 인도, 베트남은 빠른 성장을 이룩하였다.
이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극단적인 자유시장이 발전도상국의 유일한 모델이 될 수는 없다.
1960년대 이후 급속하게 진행된 세계경제의 통합과 자유무역체제를 활용하여 경제성장을 이룩했던 국가들은 대부분 경제와 사회의 자원을 효과적으로 동원하고 활용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정부를 가지고 있었다.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정부의 능력은 단순하게 사회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역량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긴밀히 연결되어 협력을 이끌어내는 역량에 의해 결정된다.

빈곤과 기아의 원인
지난 반세기 동안의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0억 명에 달하는 빈곤/기아 인구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할 점이다. 오랫동안 기아에 대한 전통적 견해는 식량 생산에 비해 인구가 더 빨리 늘어나는 게 원인이라는 맬서스의 이론에 영향을 받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식량생산의 부족이 기아의 원인이라 할 수 없다. 식량의 생산능력은 충분하지만 분배 시스템의 실패로 기아가 발생하고 있다. 전쟁보다 기아가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급속한 경제성장을 달성한 동아시아 국가의 빈곤율은 빠르게 감소하였다. 인도를 비롯한 남아시아의 빈곤율도 약간 하락하였다.
반면 꾸준히 해외원조의 혜택을 받아온 남미와 아프리카의 빈곤율은 20년 동안 거의 변화가 없었다. 때문에 해외원조에 대한 회의가 생겨났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해외원조가 인도주의적 목적보다는 정치적, 군사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자국 기업 진출의 발판으로 원조를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2015년 유엔회의에 모인 156개 국의 정상들은 극빈층 인구를 절반으로 줄이자는 ‘밀레니엄 목표’를 발표했다. 그 동안 해외원조에 인색했던 우리나라 역시 국제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인간적 발전과 지속가능한 발전
그 동안 발전의 척도로는 주로 국민총생산(GNP)나 국내총생산(GDP)이 자주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사회의 발전을 판단할 때 경제성장 뿐 아니라 삶의 질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평균수명, 교육수준, 개인의 권리, 언론 자유 등을 포함한 ‘인간적 발전’이 중요한 발전의 척도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특히 인도 출신의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은 가난한 가정은 경제적 곤란 뿐 아니라 문화적, 사회적, 교육적 역량의 부재로 고통을 겪는다고 주장하며 개인의 ‘역량’(capability)을 강화시키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최근에는 인간 뿐 아니라 환경을 함께 고려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경제성장과 환경보존의 조화는 이제 시급한 과제가 되어가고 있다.

* 세계은행=본래 이름은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이었다. 국제통화기금과 함께 워싱턴에 위치하며, 발전도상국을 상대로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대출하고 기술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세계은행에 가입하려면 먼저 국제통화기금에 가입해야 한다.
* 경제협력개발기구=약칭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회원국 및 세계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발전도상국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1961년에 출범하였다. 산하 위원회로는 경제정책위원회, 개발원조위원회, 무역위원회 등이 있다. 우리나라는 1996년에 가입하였다.
* 해외직접투자=약칭 FDI(Foreign Direct Investment). 외국인이 돈을 벌 목적으로 다른 나라 기업에 출자해 경영권을 확보하고 사업을 직접 경영하거나 경영에 참가해 투자하는 외국인투자의 한 형태다. 해외직접투자의 주체는 초국적기업인 경우가 많다.
* 왈트 휘트먼 로스토(1916~2003)=미국 경제학자이며, 자본주의와 자유기업을 지키기 위해 공산주의에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한 정치사상가이기도 하다. 케네디 정부와 존슨 정부의 자문역을 맡기도 하였다. 공산주의의 확대를 막기 위해 미국 베트남전쟁의 참전을 주장하고, 발전도상국에서 자유기업의 확대를 주장하였다.
전통사회, 과도기, 도약, 성숙 단계, 고도의 대량소비사회로 진화하는 경제적 현대화의 5단계 모델을 주장하였다. 미국의 대외정책과 현대화 이론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 아마르티아 센(1933~ )=인도 출신의 경제학자. 1933년 인도 벵갈에서 출생하였으며 옥스퍼드, 하버드, 케임브리지 등에서 교수직을 역임하였다. 후생경제학, 경제윤리와 소득분배에 대한 연구로 유명하다.
1998년 경제학과 철학의 가교를 놓은 공적을 인정받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였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자유로서의 발전', '불평등의 재검토' 등이 있다.

맬서스와 식량문제
영국의 경제학자 토마스 맬서스는 인구의 기하급수적 팽창과 식량의 산술급수적 증산의 비대칭으로 심각한 빈곤과 기아의 문제가 닥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식량공급) 수준을 넘어서 태어난 아이들은 성인의 사망에 의해 여유가 생기지 않는 한 반드시 죽어야 한다...그러므로 죽음을 가져오는 자연의 작용을 헛되고 어리석게 방해하기보다는 오히려 쉽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도시의 거리를 더 좁게 만들고 집집마다 더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게 하고 전염병이 잘 돌도록 유인해야 한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인간을 황폐화시키는 질병을 특별히 퇴치하려는 것을 비난해야 한다.
또 무질서를 추방하는 계획을 추진함으로써 인류에 봉사하겠다는, 자비롭지만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비난해야 한다"

왜 노동자의 처우개선을 위한 계획이 잘못된 것일까? 계속해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가난한 노동자들은 속된 표현으로 하루살이처럼 산다. 이들은 눈앞의 궁핍에만 주의를 기울일 뿐 미래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는 것이 없다. 저축할 기회가 있어도 대부분 이를 외면하고 눈앞의 필수품 이외에는 전부 술집에 가서 마셔 버린다"
맬서스는 식량공급이 증가해도 빈곤의 문제는 끊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일랜드의 경우 감자는) 값쌀 뿐 아니라 아주 작은 토지에서 한 가족을 먹여 살리기에 충분한 식량을 매년 산출하지만, 민중의 무지함과 비참한 상태가 이러한 감자의 산출량을 과장되게 생각하게 한 결과, 그들은 단지 생존할 가능성밖에 없는데도 그들의 습성대로 분별없이 결혼해 인구가 점점 증가하게 됐고, 이는 산업과 국가자원을 훨씬 초과하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했다"
결국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명백히 너무나 속상한 일이기는 하지만, 중대한 사회적 개선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은 우리가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자연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
맬서스는 나중에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것은 "도덕적 자제"로, "비정규적인 대리만족 행위가 수반되지 않는 결혼의 억제"였다. 그러나 그는 산아제한에는 반대했는데, "산아제한을 할 정도로 난잡한 성적 교제는 인간 본연의 품위를 가장 현저하게 떨어뜨리고...특히 여성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또 온화하고 여성다운 성품을 파괴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맬서스의 위와 같은 주장들은 현대사회에서 대부분 받아들여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하지만 맬서스가 왜 그런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당시 영국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그 이전까지 한 세기에 약 1백만 명씩 증가하던 인구가, 18세기에는 무려 3백만 명이나 늘어났다. 당시 영국 영토였던 아일랜드의 경우, 1780년에서 1840년 사이의 짧은 기간 동안 인구가 두 배 가까이 증가해 총 인구가 80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리고 맬서스의 결론은 당대의 유력한 학설이던 '임금 생존비설'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흔히 '임금 생존비설'하면 마르크스를 떠올리기 쉽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마르크스가 태어나기 50여년 전인 1766년, 프랑스의 중농학파 경제학자 튀르고는 이렇게 썼다. "노동자들은 서로 경쟁하면서 자기 가격을 낮추지 않을 수 없다.
노동의 종류를 불문하고 노동자의 임금은 생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만큼을 넘지 못할 수 밖에 없으며, 실제로 넘지 못 한다" 그러므로 '임금 생존비설'에 따르면, 노동자들이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은 사실상 자살행위와 다를 바 없다. 임금상승의 가능성이 없으므로, 아이가 더 생기는 것은 곧 굶주림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임금 생존비설'은 맬서스의 결론을 뒷받침하는 훌륭한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맬서스는 자본주의의 급속한 발전 가능성을 제대로 보지 못 했다.자본주의의 도래와 함께 농업 생산에도 획기적 전환이 이루어지게 된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동안 인류의 식량생산 능력은 그야말로 비약적으로 증가해 왔다.
세계식량기구(FAO)는 "오늘날 전세계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루에 3500 칼로리를 공급할 수 있을만큼 곡물을 생산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프랜시스 라페 외(2003), '굶주리는 세계'). 1인당 칼로리 필요량은 하루에 2450칼로리이다.
또한 세계식량기구는 "1950년대 이래로 식량생산 증가분은 아프리카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인구증가율을 앞지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편 같은 책에 실린 미국고등과학진흥회(AAAS)의 연구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에서 영양실조에 걸린 5세 이하 어린이들 중 78%가 식량이 남아도는 나라에 살고 있다"고 한다.
단적인 예로, 세계식량기구에 따르면 인도는 "전세계 3대 농업수출국" 가운데 수위를 다툴 정도로 많은 농작물을 생산하지만 무려 2억에 달하는 인구가 기아에 직면해 있다고 하며, 브라질 역시 1~2백억 달러 상당의 식량을 수출하지만 6천만에 달하는 인구가 배고픔의 고통에 빠져있다고 한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아프리카의 경우인데, 재앙적인 기아에 시달리는 사하라 이남 사헬지대 국가들은 오히려 식량을 계속 수출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 기아는 ‘생산’의 문제가 아닌 ‘분배’의 문제인 것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경제권리장전’
2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1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의회 연두교서에서 발표한 ‘경제권리장전’은 빈곤과 실업의 만연이 파시즘과 전체주의가 대두한 원인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제 각 개인의 진정한 자유는 경제적 안정과 독립없이는 존재할 수 없음이 확연해졌다. “궁핍한 사람은 자유인이 아니다”. 굶주리고 직업 없는 사람들은 독재를 키우는 온상이 될 뿐이다.
이 시대 이러한 경제적 진실은 자명한 것이기에, 우리는 개인의 신분이나 인종, 종교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새로운 안정과 번영의 토대가 마련될 수 있는 이른바 ‘제2의 권리장전’을 선언한다.

그 안에는 다음의 권리들이 포함된다.
- 농·공·상·광업 등 어느 분야이건 할 만하고 보수가 충분한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권리.
- 적정한 의·식과 레크리에이션을 향유할 수 있는 보수를 받을 권리.
- 농민은 자기가 경작한 농산물을 그의 가족의 여유있는 생활에 부족하지 않은 가격으로 팔 수 있는 권리.
- 모든 기업인이 불공정한 경쟁과 독점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공정한 기업활동을 할수 있는 권리.
- 모든 가정이 적정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
- 노령, 질병, 사고, 실업의 경제적 공포로부터 적절히 보호받을 권리.
- 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
이 모든 권리들은 생활의 안전을 가져온다. 가정에 이러한 안전 없이는 지속적인 세계의 평화도 있을 수 없다”

출처=임석규(2005). '보수와 진보, 한국의 시장경제'. 생각의 나무.


제5장 초국적기업과 세계경제


초국적기업이란
초국적기업이란 한 나라에서 상품을 생산을 하고 국내나 해외로 판매하는 기업과는 달리 여러 나라들에 걸쳐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기업이다.
보다 엄밀하게 정의하면, 초국적기업은 “기업의 모회사와 해외자회사들로 구성된 2개 국 이상에서 사업을 벌이는 기업”이다.
초국적기업은 세계 곳곳에 포진된 해외자회사들과의 연결망을 통해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여 전체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한다.

초국적 기업의 성장과 세계적 지위
1970년대 초반 세계경제가 구조적 위기에 빠진 뒤 이윤율 저하에 직면한 기업들은 일국적 생산과정을 세계적 생산과정으로 전환하면서 이윤율 회복을 위해 초국적화를 빠르게 추진했다.
초국적기업의 활동이 증가하면서 해외자회사에서 벌이는 사업의 비중도 크게 증가했다. 이제 초국적기업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지위도 대단히 커졌다.
2009년 현재 세계적으로 약 8만 2천 개의 초국적기업이 81만개의 자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들 자회사들은 세계수출의 3분의 1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이 해외에서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의 수는 7,739만 명으로 독일에 고용된 노동자의 두배에 달할 정도다.

삼극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초국적기업
초국적기업은 세계경제에서 불균등한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초국적기업의 해외직접투자는 미국, 유럽, 동아시아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이 세 지역을 흔히 ‘삼극’으로 일컫는다. 반면 아프리카 등 나머지 지역에 대한 초국적기업의 투자는 매우 미미하다.
이는 초국적기업이 고숙련 노동력과 임금수준, 기술력, 유효수요가 있는 시장 등 이윤을 낼 수 있는 조건이 가장 유리한 선진국이나 발전도상국을 중심으로 활동을 펼치기 때문이다.

거대화된 초국적기업
초국적기업은 갈수록 거대화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초국적기업인 월마트는 1,707억 달러의 자산을 가지고 210만 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4,802억 달러를 벌어들여 143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이윤을 기록했다.
유엔개발회의에서 발간하는 통계에 따르면 2009년 현재 전 세계 100대 거대 초국적기업은 전체 8만개가 넘는 초국적기업 해외자산의 9%, 판매의 16%, 고용의 11%를 차지하고 부가가치는 세계 GDP의 4%를 차지할 정도다.
국가와 초국적기업을 합친 경제규모 상위 100위 중에 51개를 차지할 만큼 초국적기업은 이제 국민국가를 능가하는 규모와 힘을 가진 존재가 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경쟁하는 초국적기업
규모가 거대한 초국적기업은 처음에는 자신의 본국에서 사업을 진행하며 국내 산업을 장악했다. 그런데 국내시장을 장악하고 초국적화를 추진하면서 기업들은 세계적 차원에서 치열한 경쟁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 결과 주요 산업에서 초국적기업은 세계적 독과점 구조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런데 거대한 규모를 가진 초국적기업이 세계적으로 독과점을 형성하고 있다고 해서 세계적 차원에서 경쟁이 소멸한 것은 아니다.
이들 초국적기업들은 세계적 자본축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다른 나라 거대 초국적기업과 세계적 차원에서 새로운 경쟁에 직면하게 된다.

초국적기업은 복합기업이다
초국적기업은 다양한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들로 위계적 관계망을 형성하는 복합기업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프랑스 건설회사를 모태로 하는 초국적기업 비방디는 이후 수도사업에 진출한데 이어 1980년대부터는 미디어 통신 분야에 진출하여 세계적 초국적기업이 되었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블리자드’와 ‘유니버설 뮤직 그룹’이 모두 비방디의 자회사이다.
이처럼 초국적기업 대부분은 여러 사업 분야에서 다양한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기업들의 복잡한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다.

초국적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
초국적기업의 세계적 자본축적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진행된다. 글로벌 네트워크는 초국적기업의 세계적 생산망과 판매망,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조직구조를 총칭하는 개념이다.
세계 최대 화학 초국적기업인 BASF의 경우 전 세계에 걸친 385개의 생산기지를 통해 화학, 플라스틱, 기능성 제품, 농업관련 제품, 석유와 가스 등 다양한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한다.
한편 본사는 경영계획 수립, 연구개발, 재무관리, 광고 등 핵심사업을 담당한다.
이처럼 초국적기업은 본부를 중심으로 전 세계를 큰 지역으로 나누어 각 지역에 퍼져 있는 생산기지와 판매기지를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한다.

전략적 제휴와 외주 하청
초국적기업은 자회사들간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지만, 이 관계망만으로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지는 않는다.
초국적기업들은 전략적 제휴를 통해, 독립적인 기업을 유지하면서 서로가 필요한 부분에서 협정을 맺어 취약한 붑문을 서로 보완하고 강화한다.
이러한 전략적 제휴는 기술제휴, 조달제휴, 생산제휴, 판매제휴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초국적기업들은 하나의 전략적 제휴만을 체결하지 않고 다층적인 형태의 ‘제휴의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초국적기업은 투자를 늘리고 경제를 성장시키는가?
초국적기업의 옹호자들은 초국적기업의 투자로 유치국에 새로운 생산설비가 생기고 일자리가 늘어나며 경제성장도 빨라진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중국과 인도는 그 대표적 예다.
이 입장에 따르면 빠른 경제성장을 위해 초국적기업에게 공장부지를 제공하고 면세혜택을 주는 등 다양한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다양한 반론이 존재한다. 실제 초국적기업의 투자 가운데 신규투자보다는 국경을 넘는 인수 합병의 비율이 더 높다.
또한 투자자금도 초국적기업이 직접 조달하기보다 국민국가의 은행이나 국제금융시장에서 조달하는 자금이 더 많다.
게다가 한국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초국적기업의 유치가 빠른 경제성장의 필요조건인 것도 아니다. 더욱이 초국적기업이 투자를 하는 지역은 인구, 지리적으로 경제가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초국적기업은 일자리를 줄이는가?
초국적기업이 해외로 진출하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일자리 감소의 주범으로 초국적기업을 지목하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기업이 해외로 나가게 되면 국내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줄어들어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국의 초국적기업이 해외로 진출하는 반면, 다른 나라의 초국적기업이 그 나라로 진출하기도 한다. 일자리 감소의 원인은 산업구조조정, 기술변화, 가격경쟁력 약화 등 다양한 요인이 존재한다.

초국적기업은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는가?
초국적기업이 세계적 자본축적을 수행하면서 노동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초국적기업은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서 자본운동을 초국적화 함으로서 국민국가의 정치적 영향력에서 일정 부분 벗어나게 된다. 이와는 달리 노동은 일국 단위의 정치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두 번째로 초국적기업은 본국과 진출국의 노동법의 차이를 활용해서 노동과의 대면에서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려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무력화나 임금의 하향 평균화가 진행된다.
또한 초국적기업은 본국과 해외 진출국의 다양한 차이를 활용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법률이나 제도, 사회관계를 재편하는데 노력을 기울인다.
세 번째로 초국적기업은 성별 차이, 인종적 차이, 국적의 차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 등 다양한 차별을 활용해서 노동을 분할하고 지배하며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고 자본 축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애쓴다.
이처럼 초국적기업이 노동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 이론으로 ‘노동위협 효과’가 있다. 이러한 전방위적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일국 차원을 넘어서는 노동자들의 국제적인 단결과 연대가 필요하다.

수출이 늘면 빈곤은 줄어들까?
2009년 우리나라의 수출은 3,630억 달러, 수입은 3,210억 달러로 무역수지 흑자는 420억 달러를 기록하였다. 사상 최대규모다.
2009년 우리나라의 수출순위는 세계 9위를 기록하였고, 우리제품의 세계시장 점유율도 3%를 넘어섰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10년부터 연평균 12.5%씩 수출을 늘려 2014년에는 수출순위 세계 8위로 올라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그러나 수출이 늘어난다고 해서 부가 자연스럽게 아래로 흘러넘치는(trickle-down) 것은 아니다. 참여정부 시절 수출은 2002년 1,626억 달러에서 2007년 3,590억 달러로 갑절 이상 늘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동안 빈곤율도 상승했다. 이러한 상황은 여전히 개선되지 못 하고 있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빈곤율은 OECD 30개 국 가운데 여섯번째로, 빈곤층 인구의 소득을 빈곤선까지 끌어 올리는데 필요한 자금총액을 GDP로 나눈 빈곤갭은 다섯 번째로 높았다.
반면 최하위층의 평균 소득은 30개 국 가운데 24위였으며, 정부의 현금지원과 세금혜택으로 개선된 불평등도 역시 최하위였다.
저소득층·장애인·실업자 등에 정부가 지원하는 사회적 공공지출 비중도 최하위를 기록하였다.
2009년 4월에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결과는 지난 1년 동안 4인가구 기준으로 월소득 136만원 이하의 빈곤층이 무려 160여 만 명 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지만 IMF 환란 이후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빈곤층의 감소는 지극히 더딘 것을 미루어 볼 때 여전히 많은 빈곤층 혹은 차상위계층이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을 개연성이 다분하다.


제6장 위기의 경계에 놓은 세계식량


식량의 역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아프리카 많은 나라와 다르게 서구의 많은 국가에서 비만이 가난의 상징으로 바뀐 지 오래다. 이는 음식의 양보다는 질과 관련된 결과이다.
도덕이 존재하지 않는 상품으로서의 식량은 도리어 먹는 이의 건강과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씨앗의 상품화
더 많은 수확을 보장한다는 씨앗을 종묘상에서 일괄 구입하는 요즘, 농작물은 팔아야 할 농산품이 되어 환금작물의 소품종 대량생산이 보편화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 생태계가 단순해져 환경변화에 대한 완충력은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홍수와 가뭄, 해충피해가 집중되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농부들은 더 많은 살충제와 화학비료, 제초제에 의지해야 한다. 환금작물의 씨앗은 오로지 다수확을 목표로 육종했기 때문에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좁다.
때문에 외부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약하다.
1960년대 초 세상에 등장한 녹색혁명은 단작을 세계화했다. 그 이후부터 각 지역 그리고 각 나라 간에 소품종 대량생산을 특징으로 하는 비교우위 농업이 성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비교우위 농업은 상당한 폐해를 야기하고 있다. 쌀농사에 적합한 기후를 가진 필리핀에서 역설적으로 국제 곡물의 수입 부담이 늘어나 식량위기가 벌어졌다.
그 뿐 아니라 비교우위 농업은 화학 살충제, 비료, 제초제의 과도한 사용으로 토양을 황폐화시킨다.
그런데 이에 대한 대응으로 몬산토와 같은 초국적 기업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보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초국적기업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식량
비교우위 농업은 초국적기업의 전횡을 낳았다. 농산품의 구입과 판매 가격을 통제하는 초국적기업은 농산품 생산과 가공, 운송에 적극 개입할 뿐 아니라 사료, 축산, 육가공 및 국제교역에 주도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제 국제 곡물은 투기의 대상이 되었다. 식량의 선물거래는 재고량과는 관계없이 식량 가격을 급격히 변동시키고 있다.

공장식 축산업의 등장
다수확 품종을 집중 재배하면서 남아도는 농산품을 사료로 가공하면서 축산업은 공장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공장식 축산 역시 가축을 다수확 품종으로 획일화시키고 사육환경 역시 획일화시켰다.
가축의 빠른 생장을 위해 유전자 옥수수와 콩으로 만든 사료를 먹이며 성장호르몬을 주입하고 있다. 그런데 좁은 사육장에 유전자가 단순한 가축을 밀집시켜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에는 질병이 급속히 퍼질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조류독감, 구제역, 수족구병과 광우병 등 사람과 가축에게 모두 전염될 수 있는 인수공통 질병이 만연하고 있다.

석유위기 앞의 농업
현대의 농업은 석유 농업이다. 화학비료는 물론 살충제와 제초제도 석유를 가공해 만든다. 석유 없이는 파종, 경작, 수확, 건조, 운반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최근 석유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옥수수, 콩, 사탕수수가 원료인 바이오연료가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바이오연료의 생산을 위해서는 석유와 함께 엄청난 양의 식량이 필요하다.

식품 첨가물의 확산, 음식 쓰레기, 해양오염
초국적기업에 의해 수입되는 농산품은 장시간의 수송이 필요하기 때문에 농약살포가 필수적이다. 가공식품 및 세계 곳곳에 지점을 확보한 패스트푸드에도 화학약품과 합성 첨가물이 들어간다.
한편 음식 쓰레기도 매일 엄청난 양이 발생한다. 미국에서는 음식 쓰레기가 전체 쓰레기의 40%에 육박한다. 버리는 식품으로도 굶주리는 세계의 인구를 구제할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바다나 호수에서 양식하는 어류에도 항생제와 호르몬과 같은 화학약품을 살포한다. 많은 양식장이 어패류의 산란장을 파괴할 뿐 아니라 많은 양의 오폐수를 배출하여 해양오염의 원인이 되고 있다.

기후변화와 식량위기
지난 100년 동안의 지구온난화는 태풍과 허리케인의 강도와 횟수를 늘렸고 사막화 확산의 원인이 되었다.
그 뿐 아니라 온난화는 토양미생물의 종류와 분포 상황을 바꾸고 강우의 양과 시기를 변화시켜 식량위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특히 다수확 품종 위주의 지나친 품종개량으로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줄어든 상황에서 곡물들이 온난화를 견뎌낼 수 없다면 미래의 식량 사정은 위태로울 수 밖에 없다.

식량주권과 유기농업을 향하여
식량이 무기화, 투기화된데다 석유위기가 멀지 않은 지금 축적한 외화로 식량을 수입하려는 자세는 식량문제의 대안일 수 없다.
안정적 식량을 확보하려면 식량기지를 해외에 마련하기보다 국내에 자급자족이 가능한 농토를 확보하여 식량주권을 지키는 것이 옳다.
식량을 수입에 의존할 경우 수출국이나 교역을 지배하는 다국적기업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농산물의 유전적 다양성의 폭을 복원해야 한다. 제철 제 고장 농산물의 다품종 소량생산을 위한 농토확보가 필요하다. 신뢰할 수 있는 농산물을 구입하기 위한 생활협동조합이 활성화될 필요도 있다.
생활협동조합을 통해 유기농업으로 재배된 제철 제고장의 농산물과 축산물을 구입하면 땅과 농민, 자신과 가족의 건강까지 살릴 수 있다.

바이오에탄올과 국제곡가의 폭등
몇 년 전 바이오에탄올이 전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몇몇 저개발국가에서 폭동이 일어날 정도로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곡물가 상승 때문이다.
장 지글러 유엔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은 ‘식량가격 폭등을 가져오는 바이오연료 생산확대는 인류에 대한 범죄행위’라고 규탄하기도 했다.
현재 바이오연료 생산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미국, 브라질, EU이다. 2007년 현재 미국은 바이오에탄올과 바이오디젤을 합하여 전세계 바이오연료의 43%를 생산하고 있고, 브라질은 32%, EU는 15%를 각각 생산하고 있다.
미국은 옥수수, 브라질은 사탕수수, 유럽연합은 대두를 주원료로 바이오연료를 생산하고 있다.
바이오연료 생산량은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2006년 한해동안 미국은 바이오에탄올 6498.7 백만 갤런, 바이오디젤 444.5백만 갤런을 생산했고 브라질은 바이오 에탄올 4966.5 백만 갤런과 바이오디젤 64.1백만 갤런을 생산했다.
EU는 바이오 디젤 생산에 주력하여 바이오에탄올 608.4백만 갤런과 바이오디젤 1731.9백만 갤런을 생산해 냈다.
미국은 2006년 813백만톤의 옥수수를 바이오에탄올 생산에 투입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02년의 투입량 253백만톤에 비해 세배 이상 증가한 수치이다, 그 결과 바이오에탄올용 옥수수 소비량이 식품, 종자 및 기타 용도 소비량을 두 배 이상 앞서게 되었다고 한다.
연료용 곡물 재배의 급증은 국제 곡물가의 폭등으로 이어졌다.
IMF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옥수수, 쌀 등 주요 곡물가격은 2007년 한 해 동안 47%나 올랐다. 그래도 선진국의 경우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식료품 구입비 비중이 1/10에 불과하여 충격이 그나마 덜하나, 빈국의 경우 충격이 엄청났다.
옥수수를 원료로 이용하고 있는 브라질도 아마존 파괴 우려로 인해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청정에너지로 주목받던 바이오에탄올 생산이 쉽게 축소되지는 않을 듯 하다.
석유처럼 생산량이 한정되어 있는데다 재생산이 불가능하고, 몇몇 나라들에 매장량이 편중 되어 담합이 쉽게 발생하는 자원 대신 다른 에너지원을 확보하고자 하는 욕구가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에는 옥수수, 고구마 등 곡물이 아니라 갈대, 옥수수줄기, 나무껍질, 우뭇가사리 비곡물자원을 이용한 바이오에탄올 생산이 연구되고 있다.

육식과 식량문제
‘삼겹살에 소주’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술자리 메뉴이다. 그런데 돼지고기 1kg을 생산하는데 사료용 곡물 4kg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2007년 현재 우리나라의 전체 양곡공급량은 2,244만 톤이다. 그 가운데 수입량이 1,484만 톤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사료용으로 수입된 곡물이 971만 톤(65.4%)으로 식용으로 수입된 513만 톤의 두 배에 달한다.
이는 전체 양곡수요량 2,033만 톤 중에서 사료용 수요량이 983만 톤(48.3%)으로 식량용 530만 톤, 가공용 400만 톤을 합친 것보다 많은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한편 2007년 현재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도는 27.8%에 불과하다.


제7장 국제 환경 협력과 에너지 안보


지구적 환경 문제와 국제 환경 레짐의 등장
지구의 생태계는 전체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 지역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어 전 인류에게 심각한 재앙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제 정치 역사에서 지구적 환경 문제가 의제화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국제 환경레짐의 출발은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인간 환경에 관한 유엔회의’를 시작으로 한다.
이 회의는 구체적 성과를 이루지는 못 하였으나 향후 지구적 차원의 환경협력에서 비중있는 역할을 하게 되는 유엔환경계획(UNEP)을 창설하게 하였다.
그리고 20년 뒤인 1992년에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된 ‘환경과 개발에 관한 유엔회의’에서 주목할만한 국제 환경 협력의 성과가 나타났다.
이 회의에서 채택된 리우선언에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이 수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회의에서 ‘기후변화협약’과 ‘생물다양성협약’도 채택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국제 환경레짐을 통한 지구적 환경 문제 해결은 성공적이지 못 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해폐기물의 제3세계 투기와 바젤 협약
1960년대부터 선진국에서 일기 시작한 환경운동의 영향으로 선진국 정부는 강력한 환경정책과 규제를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오염산업이나 오염물질을 발전도상국에 이전/수출하는 경우도 존재하였다. 선진국이 자국의 유해 폐기물을 후진국에게 보내는 것을 ‘제3세계 투기’라고 한다.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유해폐기물을 받아들였으나 그것이 얼마나 위험하며 어떻게 관리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이나 기술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로 인해 노동자들이 중독되어 상해를 입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후 유해폐기물이 국경을 넘어 처리되는 것을 규제할 국제 협약의 필요성이 부각되었다. 마침내 1989년 3월 스위스 바젤에서 유해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을 규제하는 바젤협약이 체결되었다.
이 협약은 1992년에 발효되어 2001년까지 149개국이 서명하였다.
이 협약의 핵심은 규제 대상 폐기물의 종류를 명시하고 수출입에 관한 규약 및 책무를 정하며 수입국과 수출국, 통과국에 이르기까지 유해 폐기물 이동시 사전에 통보해 동의를 얻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유해 폐기물 발생 최소화와 자국내 처리 우선을 유도하려 한 것이다.
이 협약으로 유해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은 크게 줄어들었으나 협약 비가입국의 유해 폐기물에 대해서는 규제가 미치지 못 하고 있다.

유전자 조작 생물체의 국가간 이동과 카르테헤나 조약
1970년대에 등장한 유전자 조작 생물체는 이후 빠른 속도로 농업에 적용되었다.
2006년 현재 총 25개 국가의 1억 4백만 헥타르 면적에서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재배되고 있으며 미국은 전체 경작 면적이 64%에서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재배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식품 안정성과 생태계 교란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국제 NGO들을 중심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때문에 곡물 수입국들은 곡물의 수출 시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포함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그에 따라 2001년 1월 카르테헤나 생명공학 안정성 의정서가 채택되었다.
이 의정서는 생물다양성 협약의 부속의정서였다. 그런데 생물다양성 협약과 마찬가지로 카르테헤나 협약 역시 각국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이 발생하게 되었다.
미국을 비롯한 농산물 수출국들은 이 의정서의 채택에 반대하였고, 현재까지 의정서 채택을 거부하고 있어 실효성을 반감시키고 있다.

오존층 보호와 비엔나 협약
1985년 채택된 비엔나 협약은 오존층 보호를 위한 국제협약이었다. 특히 오존층 파괴의 주범으로 주목된 염화불화탄소(CFC)의 사용을 규제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비엔나 협약은 강제 의무가 없는 선언에 그쳤고, 각국 간의 이해관계로 인해 한계에 봉착했다. 그리하여 1987년에 새로이 염화불화탄소의 규제를 의무화한 몬트리올 의정서가 채택되었다.
이후 염화불화탄소의 사용은 전면적으로 금지되었으며, 이러한 노력의 결과 성층권의 오존양이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어 국제 환경협력의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협약
지구가 현재와 같이 생명체가 살아가기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은 대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 덕분이다.
그러나 산업 발전과정에서 석유, 석탄 등과 같은 화석 연료를 연소한 결과,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증가하여 우주 밖으로 빠져나가야 하는 적외선을 더욱 많이 품게 되었다.
그 결과 지구 표면의 온도가 점차 상승해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지구의 온난화는 해수면의 상승, 생태계 교란, 이상 기후의 증가, 열대 전염병의 확산, 식량 생산의 혼란 등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높다.
과학자들과 환경단체들은 화석연료 사용을 급격히 줄임과 동시에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 역시 얽히고 설킨 각국의 이해관계로 인해 그 해결책을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또한 화석연료 기업들을 중심으로 지구온난화에 대한 경고를 부정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전예방의 원칙에 따라 기후변화를 다루기 위한 국제협약인 교토의정서가 체결되었다.
그러나 미국이 이 의정서의 비준을 거부한데다, 중국 등 발전도상국들도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압력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이 의정서가 목표한 온실가스 감축 계획의 실현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도 존재한다.

석유정점과 석유를 둘러싼 분쟁들
전지구적 환경위기에 대한 국제적 협력과 다르게 에너지 문제와 관련 국제 상황은 갈등과 분쟁의 모습으로 더 자주 관찰되고,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다루어진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석유는 선진 산업국뿐만 아니라 발전도상국까지도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거의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석유 자원이 중동 지역을 포함하여 몇몇 지역에 지리적으로 편중되어 있으며, 미국과 영국 등의 국제석유자본에 의해서 대부분 통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1970년대의 1, 2차 석유파동은 국제유가를 급등시켜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발생시켰다.
이후 에너지 절약, 새로운 매장지의 발견과 고효율 기술의 발전으로 낮은 유가가 계속되었으나 2001년 9.11테러 이후 다시 유가가 상승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지정학적 원인 외에 ‘석유정점’이라는 새로운 쟁점이 주목받고 있다. 석유정점은 석유 생산이 일정 한계에 도달한 이후에는 점차 감소되면서 증가하는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 하는 현실적 상황을 가정한다.
석유정점이 현실화될수록 국제적, 국지적 갈등은 더욱 격화되고 환경파괴와 인관침해도 빈번해질 것이다.
지금도 석유가 매장된 지역에서는 석유를 위한 인권 탄압과 환경오염이 발생하는 등 ‘석유의 저주’가 벌어지고 있다.
한편 한국은 해외 에너지 의존도가 96%에 달하여 심각한 에너지 안보 문제를 안고 있다.
석유 에너지 의존을 줄이는 근본적 대안이 필요하며, 석유를 둘러싼 인권 탄압과 환경오염의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것이다.

국제 환경 레짐은 어떻게 가능한가
국제 환경 레짐은 전 지구적 환경 문제를 다루기 위한 협력의 틀이기도 하지만, 각국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다투는 경쟁의 장이기도 하다.
이는 생물다양성협약과 기후변화협약 등이 환경협약이기도 하지만, GMO의 무역이나 탄소 배출권 거래제 등을 다루는 무역협정, 경제협정의 성격도 강하게 띠고 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이것은 1990년대 GMO의 국제적 규제를 둘러싸고 발생한 미국과 유럽의 무역 전쟁처럼 선진 산업국가 사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선진국과 발전도상국 사이의 문제이다.
환경문제의 해결에 필요한 비용 부담이 공평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또한 여전히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제3세계 발전도상국에게 규제를 강요하는 것이 타당한지 수많은 논란이 국제 환경 레짐 안에서 거듭되고 있다.

주목받는 신재생에너지, 풍력 에너지
지구 온난화로 인해 '삼천리 금수강산'을 자랑하는 우리 역시 언젠가 제사상에 바나나와 파인애플을 올리는 시대를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 이제라도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
신재생에너지가 주목받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데다 바람도 양호해 풍력에너지를 활용하는데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2006년 현재 풍력에너지는 1킬로와트(kWh) 당 발전단가가 107.29원으로 신재생에너지 가운데에서는 가장 저렴한 편이다.(석유는 84원)
주지하다시피 서구의 선진국들은 이미 풍력에너지 상용화에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 규모가 결코 작지 않다.
독일은 2006년 6월 현재 19,299 메가와트(MW)의 풍력발전 용량을 갖추고 있는데, 이는 우리 소양감댐 100개의 발전용량과 맞먹는 규모다.
독일은 풍력발전을 통해 2005년 한 해 동안 2,460만 탄소톤의 이산화탄소를 감축했다 한다.
우리에게 '환경 후진국'으로 알려진 미국 또한 10,039 메가와트의 풍력발전용량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한 해 동안 풍력에너지 R&D(연구개발)에 3,900만 달러를 투자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풍력에너지 비중을 총 전력소비량의 20%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 밖에도 덴마크는 총 전기수요의 18.5%를 풍력에너지로 충당하고 있고, 스페인은 총 전력량의 7.78%를 풍력발전을 통해 얻고 있다.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작거나 엇비슷한나라들도 이렇게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풍력에너지가 널리 보편화되는 것도 몽상은 아닐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의 풍력에너지 활용 정도는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2006년 4월 현재 우리나라의 풍력발전용량은 175메가와트에 불과하다.
비교해보면 독일의 100분의 1, 미국의 50분의 1도 안 되는 규모다. 하지만 가능성만큼은 부족하지 않다.
매년 2%씩 발전단가가 하락하고 있을 뿐 아니라 메가와트 급 대용량 풍력발전기를 수출할 정도의 기술력도 보유하고 있다.


제8장 세계화와 인간노동


세계화와 인간노동의 관계에 대한 상반된 입장들
세계화는 “자본, 노동, 상품, 서비스, 기술, 정보 등이 주권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 조직, 교류, 조정되는 현상”으로 정의된다.
세계화가 인간노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설명으로는 크게 ‘업그레이드’ 이론과 ‘바닥을 향한 경주’이론이 있다.
‘업그레이드’ 이론에 따르면 세계화는 국가 간 교역의 증대를 통해 ‘상호 이익’을 증진시켜 결과적으로 세계적 차원에서의 부가 증가하게 된다.
세계 경영에 나선 대기업이나 선진 부문, 상류층이 이득을 얻게 되면 그 부가 자연스럽게 온 사회로 흘러넘쳐 중소기업이나 영세부문, 중하층도 이득을 얻게된다는 것이다.
이를 ‘트리클다운 효과’라 한다. 이 입장에 따르면, 세계화는 세계 각국에서 수입되는 재화와 용역을 보다 값싸게, 보다 다양하게 향유할 수 있게 한다.
세계적 차원에서의 경제 활동이 활성화되면 새로운 고용이 창출되고 소득이 증가하며 지역 사회도 발전한다고 본다. 범지구적 교류와 소통이 증진되고 ‘글로벌 스탠다드’가 도입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바닥을 향한 경주’ 이론에 따르면 세계화는 불가피한 시대적 대세가 아니라 특정한 정치적, 사회적 세력 관계의 산물이다.
세계적 차원에서 투자, 생산, 교역, 유통, 소비 등이 증진되는 것은 맞지만 이미 설정된 위계질서 또는 권력관계 안에서 활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특정한 나라 또는 특정한 계층만이 이익을 보게 된다.
자유 무역이나 투자 자유화로 이득을 보는 건 주로 선진강국이며 대다수 발전도상국은 오히려 피해를 입게 된다. 초국적기업은 이득을 보지만 하청업체의 노동자들은 희생당한다.
한편 세계금융자본은 시세 차익을 얻기 위해 온 세상을 ‘카지노 자본주의’로 만들어 외환위기를 일으킨다.
상류층의 극소수 사람들은 더욱 부자가 되지만 중하층의 대다수는 갈수록 사회적 지위가 저하되어 ‘빈곤의 세계화’가 진행된다.
결국 극소수의 기득권층을 위해 온 사회가 희생을 해야 하는 ‘사이펀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노동빈민이 늘어나고 고용없는 성장 시대가 도래하며 민주주의와 삶의 질은 현저히 훼손당한다.
한편 ‘업그레이드’ 이론과 ‘바닥을 향한 경주’ 이론 외에도 다양한 이론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현실을 신자유주의 세계화 자체에 대한 긍정론과 부정론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견해이다.
“세계화는 한 가지 이슈일 뿐, 진짜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 관계”이다. 세계화 물결 속에서도 한 국가의 정책과 정책 시행에 따라 현실의 변화는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 입장으로 세계화를 바라 볼 때 경제가 아니라 정치를 핵심에 놓게 된다.
두 번째는 세계화 담론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이 입장은 “약탈과 착취를 ‘상호 의존’ 또는 ‘국적 없는 회사’ 따위로 묘사하는 이상한 개념이 곧 세계화”라 본다.
이들은 세계화 대신에 제국주의라는 개념을 쓴다.
세 번째는 세계화와 노동의 연관성을 다룰 때 노동자를 희생자로만 서술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주노동자와 여성노동자들은 세계화의 피해자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저항자이기도 하고 새로운 대안을 실험하는 창조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계화와 인간 노동의 현실-자본 이동 및 노동 이민의 증가
무한한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은 국경과 지역을 넘어 돈벌이 행진에 나선다.
그런데 초국적 자본은 보다 저렴한 노동력을 찾아 임금 사다리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노동자들은 보다 나은 노동조건을 찾아 임금 사다리의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하려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자본은 비교적 자유롭게 하향 이동을 하지만 노동의 상향 이동은 국경선마다 엄격한 통제를 받게 된다. 이처럼 자본과 노동은 출발점이나 이동 과정에서 현저한 힘과 권력의 불평등을 보인다.
그 결과 세계 200대 대기업의 수익은 1983년부터 1999년까지 약 360% 증가한 반면 일자리의 수는 겨우 14% 늘었을 뿐이다. 초국적 기업의 매출액은 국민국가의 경제규모에 비해서도 월등하다.
월마트의 매출액은 스웨덴의 국내총생산보다 크다.
이러한 불평등한 조건 하에서 지구 전체적으로 ‘국제 이민’이 크게 늘고 있다. 2010년 현재 세계 인구 65억 명 중 약 3.1%, 2억 1천 4백만 명 정도가 국제 이주민이며, 그 중 49%가 여성이다.
국제 이주 노동자는 세계 노동력의 약 3%를 차지한다. 이들 중 교수, 엔지니어, 의사, 원어민 강사, 예술인 등 극소수의 전문직은 비교적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지만 비전문직의 일반 노동자들에겐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다.
세계화와 더불어 국내 이주노동이 급속도로 증가하는 것도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중국의 경우 농촌에서 도시의 공장으로 이주한 농민공이 무려 2억 3천 만 명이나 된다.

세계화와 인간 노동의 현실-노동시장 유연화와 비정규직
미국 기업들은 1991년 이후 물가상승률을 고려해도 이윤이 50%나 늘었지만 직원을 해고하고 새로 뽑기를 반복한다. 해고 뒤 새 일자리를 얻은 노동자의 평균 수입은 14% 줄었다.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 하는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늘어가고 자녀가 있는 가정에 돌아가는 복지혜택은 줄어들었다. 이처럼 노동시장 유연화는 노동자들의 삶에 악영향을 미쳤다.
흑자기업조차 항상적인 구조조정의 압박에 시달리고, 정리해고를 당하는 노동자들은 극도의 분노로 파멸적인 행위를 하기도 한다.
한편 네덜란드와 노르웨이 등 유럽에서는 ‘유연안정성’을 중시한다. ‘유연안정성’은 유연성과 안정성의 합성어로 시간제 노동자의 경우 짧은 노동시간만큼 보수도 줄어들지만 정규직 노동자가 받는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고숙련 전문직은 유연하게 자신의 노동을 조절할 수 있는 반면 저숙련 비전문직은 ‘유연하게’ 해고당할 준비를 해야 한다.
세계화와 더불어 대부분의 비전문직 노동력은 마치 일회용 컵처럼 쉽게 구하고 쉽게 버리는 대상이 되고 말았다.

세계화와 인간 노동의 현실-노동 빈민과 노예노동
세계화와 더불어 초국적 기업들은 한편으로는 저임금 노동력을 찾아, 다른 한편으로는 넓은 시장을 찾아 범지구적인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아동노동 및 노동빈민의 발생과 같은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나이키, 이케아, 베네통 같은 유수의 초국적 기업들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 하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발전도상국의 5~14세 어린이 2억 5천 만 명이 학교도 가지 못 한 채 강제로 노동에 투입되고 있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여성 노동자의 수는 지난 20년 간 거의 두 배로 늘었다. 그러나 농촌이나 공동체의 해체로 생계가 막막해진 여성들이 저임금 노동시장에 몰려드는 경우가 많다.
저임금, 장시간, 무권리 노동으로 악명이 높은 라틴 아메리카나 아시아의 자유무역지대에 고용된 노동자의 3분의 2가 여성이다.
또한 오늘날까지 노예노동은 근절되고 있지 못 하고 있다. 현재 지구 상에는 약 2천 7백만에서 4천 만 명의 인간 노예가 존재한다. 그런데 일부 초국적 기업들이 바로 이 노예노동과 연관되어 있다.
아프리카 콩고 금광이나 콜탄 광석 채굴 사업에는 바이엘이나 삼성같은 초국적 기업이 관련되어 있는데, 일부는 심지어 반란군을 지원하면서 유혈적으로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일을 시키고 있기도 하다.

세계화와 인간 노동의 현실-노동의 질 저하 및 일중독 확산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국가의 보호 방벽이나 기업의 보호 방벽을 허물어 트리고 노동자가 직접 시장경쟁과 대면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 결과 노동의 질과 노동생활의 질이 저하되고 일중독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 미국, 일본, 독일 등 각국의 노동자의 3분의 1에서 2분의 1 정도가 일중독에 빠질 정도로 자신의 삶과 일 사이의 균형을 잃고 있다.
노동조합의 대의원들은 노동자의 노동권 보호나 노동자 민주주의보다 더 많은 잔업 물량을 확보하는데 관심을 기울이기도 한다.
2010년 초 도요타 자동차의 리콜 사태의 배경에는 지나친 노동비용 감축으로 인한 숙련 인력의 부족 등이 야기한 제품 품질 저하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잘못된 세계화에 대한 인간적 저항들
이처럼 잘못된 세계화에 대한 저항도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첫째, 신자유주의 세계화 추진 기구 및 기제에 대한 반대 운동이 있다. 이들은 대안으로 공정거래 운동, 토빈세, 사회책임투자, 통화 공동체, 생산적 대안공동체 등을 제시한다.
둘째, 각종 투자협정 및 자유무역협정 반대 운동이 있다.
한미 FTA 반대 운동도 그 일부이다. 한편 노동진영은 ‘바닥을 향한 경주’를 저지하기 위해 국제노동기구의 8개 기본협약이나 OECD의 가이드라인을 통해 간접 개입하기도 한다.
셋째, 독자적인 대안적 세계화를 위한 회의체 운동이 있다. 2001년부터 해마다 열리는 ‘세계사회포럼’이 대표적이다.
넷째, 각국 노동조합 사이에 국제연대를 이루거나 특정한 쟁점에 대해 노조차원에서 세계적인 연대 행동을 조직하는 일이다.
일례로, 2007년에는 영국, 미국, 독일의 노조가 다국적 기업에 체계적으로 저항하기 위해 ‘글로벌 노조’를 만들기도 했다.
다섯째,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위한 구조조정이나 기업과 국가의 정책에 대해 자발적이고도 직접적인 저항을 하는 운동이다.
이는 서구의 주류언론으로부터 거의 주목을 받지 못 하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를 위하여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인간노동에 초래한 결과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을 수 있다.
첫째, 세계화로 인해 인간 노동은 대체로 ‘바닥을 향한 경주’로 내몰리는 경향이 있다.
둘째, 세계화 과정에서 ‘업그레이드’되는 일부 집단은 사실상 나머지 대다수 중산층 및 하류층의 희생을 바탕으로 다양한 혜택을 누리게 된다.
셋째, 인간다운 세계 또는 대안적인 세계를 형성하려면 ‘아래로부터의’ 세계화가 필요하다. 이것은 편협한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의 울타리도 극복하면서 동시에 현재처럼 불평등한 양극화를 부르는 위로부터의 세계화도 지양하는 것이다.
넷째, 생명, 평화, 공존, 공생을 위한 ‘아래로부터의 세계화’를 현실적으로 추동하려면 우선 노동자 개인은 피해의식을 넘어 자신의 노동과 생활 속에서 우러나는 솔직한 느낌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노동조합이나 시민사회 단체들은 직접적인 사회경제적 이득을 넘어 보다 넓은 사회구조적 향상을 위해 소통하고 연대해야 한다.

* 다자간투자협정=약칭 MAI(Multinational Agreement on Investment).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외국인 직접투자를 보호하고 촉진하자는 취지로 OECD가 체결을 추진하고 있는 다자간 규범이다.
이 협정은 제조업 직접투자 뿐 아니라 금융투자도 투자에 포함시키고 투자자에 대한 내국민 대우와 최혜국 대우, 핵심인력의 자유로운 이동과 민영화 시 외국인투자자 참여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자간투자협정이 체결되면 제조업 뿐 아니라 금융시장도 전면개방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 국제노동기구=약칭 ILO(International Labor Organization).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 노동자의 지위향상을 도모하는 국제기구이다.
각국의 노동입법, 적정 노동시간, 임금, 보건, 위생 등에 대한 권고나 지도를 행하고 국제노동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1946년 12월 유엔 최초의 전문기관으로 발족하였으며 우리나라는 1991년에 가입하였다.

세계의 아동노동 실태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 한켠에는 아직도 수많은 어린이들이 무거운 노동의 짐에 시달리고 있다.
2006년 5월 국제노동기구(ILO)가 발표한 보고서 'The End Of Child Labour:Within Reach'에 따르면, 2004년 현재 전세계의 아동노동자 인구는 2억 1770만명에 달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절반이 넘는 1억 2630만명이 '위험한 일'(hazardous work)을 하고 있다.
지구에 살고 있는 어린이 7.5명 중 한 명이 배움 대신 노동을 강요받고 있고, 13명 중 한 명이 목숨을 잃을수도 있는 '위험한 일'에 종사하고 있는 셈이다.
다행스럽게도 개선의 징후가 보이고 있다. 2000년의 자료와 비교해보면, 전체 아동노동자 수는 11.3% 감소했고 '위험한 일'에 종사하는 아동노동자 수는 25.9% 감소했다.
이와 같은 아동노동의 빠른 감소는 저개발 국가의 경제성장과 아동노동의 폐해에 대한 자각에 힘입은 바 크다. UNICEF같은 국제기구와 NGO들의 적극적인 활동도 중요한 기여를 했다.
특히 NGO들은 선진국에서 아동노동으로 만들어진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전개해 상당한 반향을 이끌어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여전하다. 사실 아동 노동의 빠른 감소는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에서만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중국에는 무려 3500만 명에 달하는 아동노동자들이 존재하며, 어린이가 가장 많은 나라인 인도의 아동노동자 현황은 제대로 파악조차 되지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ILO가 아동노동을 효과적으로 근절시킨 모범으로 우리나라의 예를 들고있다는 점이다.
ILO는 우리나라의 사례를 들어, 어린이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이 아니라 교육이며 높은 교육수준이 빠른 경제성장을 추동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이 말하는 생산과 분배
대표적 고전경제학자의 한 명으로 손꼽히는 존 스튜어트 밀은 생산과 분배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있다.
‘풍요 속의 빈곤’이 심화되는 요즘 다시금 새겨볼 만한 말이 아닌가 한다. 분배는 생산량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민주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부의 생산법칙과 조건은 물리적 진실의 성격을 띄고 있다. 그 안에는 선택적 혹은 인위적인 면이 전혀 없다.
인류가 생산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외적인 틀에 의해 정해진 방법과 조건에 따라, 그리고 그들 자신의 정신과 육체의 특성에 의해 생산될 수 밖에 없다.
좋든 싫든 생산은 과거에 얼마나 축적해 두었는지에 의해 제한되고 그것이 정해지고 나면 인간의 활력, 기술, 기계의 완벽도 그리고 통합된 노동의 이득을 제대로 활용하는가 등에 비례한다.
좋든 싫든 같은 토지에 노동을 두 배 들인다고 해도 경작법을 개선하지 않았다면 두 배의 식량을 얻을 수 없다.
좋든 싫든 개인의 비생산적인 소비는 속해 있는 공동 사회를 그만큼 가난하게 하고, 반면 생산적인 지출은 공동 사회를 살찌운다...
부의 분배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순전히 인간제도의 문제이다. 일단 사물이 주어지면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인류는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사물을 처리한다.
누구에게든 또 어떤 조건이든 원하는 대로 그 사물의 처리를 맡길 수 있다.
나아가 완전 고립 상태를 제외한 모든 사회적 상황에서 사물의 처리는 사회적 합의 또는 적극적인 힘을 발휘하는 사람들의 합의에 맡겨진다.
한 개인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의 땀으로 생산해 낸 것도 사회가 허락하지 않으면 그것을 보유하고 있을 수 없다”


제9장 지구화와 인권 및 시민권


인권이란 무엇인가?
인권은 자유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근대 계몽주의자들은 신의 뜻에 따라 모든 인간은 타고난 자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이성적이고 올바른 권리라는 사상을 발전시켰다.
근대 초에 인권은 이처럼 “인간이 타고난 자유와 행복에 대한 요구”인 자연권 또는 천부인권이었다.
자연권은 사회관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동일한 권리를 갖는다는 개인주의적-보편주의적 인권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현대에는 인권이 사회관계에 따라 구성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시민권이란 무엇인가?
현실에서 인권은 미국의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을 통해 탄생한 근대국가를 통해 보장되기 시작하였다.
시민 혁명은 절대주의 왕국을 무너뜨리고 계몽주의자들의 인권사상을 수용하여 새로운 헌법, 정부와 국가를 만들어 인권을 보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근대 국가는 특정한 지역에 사는 특정한 시민들에게만 권리를 보장할 수 있었을 뿐,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를 보장할 수 없었다.
따라서 현실 역사 속에서 인권은 시민권(citizen's rights)의 형태로 실현되었다. 시민권은 “시민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서로에게 또는 국가에 가지는 요구”로 규정될 수 있다.
시민권은 국가라는 정치적 기구 및 제도에 의해 실현된 인권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적-개인주의적-보편주의적 인권의 형성
초기 인권은 절대왕정과 귀족과의 투쟁 과정에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때문에 왕과 귀족의 특권적 지위를 부정하고 모든 개인의 타고난 자유를 강조하는 자유주의적-개인주의적-보편주의적 인권관이 발전했다.
이에 따르면, 인권은 신체의 자유, 언론·사상·신념의 자유, 재산을 소유하고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자유, 계약의 자유 등 신분, 계급, 인종, 성(gender)에 관계없이 필요한 자유였다.

근대 사회에서의 인권과 시민권의 발전
마샬에 따르면, 영국에서의 시민권과 인권은 3시기에 따라 크게 변화했다.
첫 번째 시기인 18세기 영국에서 시민권 또는 인권은 자유권을 의미했을 뿐이었다.
두 번째 시기인 19세기에 시민권과 인권은 정치권을 포함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20세기에 시민권은 사회권으로까지 확대되었다. 특히 20세기에 시민권이 사회권으로까지 확대되는 과정은 시민권과 인권의 근본적 변화를 수반했다.
자유권에는 신체의 자유, 언론·사상·신념의 자유, 재판을 받을 권리, 재산권 등이 포함된다.
정치권은 국가 기구에 참가하거나 그 기구의 구성원에 대한 서거권자로서 정치적 권력의 행사에 참가할 수 있는 권리로 선거권과 피선거권으로 구성된다.
사회권은 적절한 경제적 복지와 안전의 권리로부터 사회적 유산을 공유하고 그 사회에 지배적인 기준에 따라 문명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에 이르는 모든 영역을 의미한다.
20세기 중반 이후 등장한 사회권은 계급이라는 사회관계를 고려함으로써 개인주의적, 보편주의적 인권관에서 벗어났다.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는 특수한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새로운 인권관이 생겨났다.

현대 사회에서의 인권과 시민권의 발전-집단인지적 인권
집단인지적 인권은 사회적 강자들과 신체적·문화적·종족적·경제적으로 다른 사회적 약자들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자유와 권리다.
집단인지적 인권관이 탄생하는 데에는 여성주의자들이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노동자들에 이어 여성주의자들이 자유주의적 시민권과 인권의 문제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자유주의적 인권에 대한 여성주의 비판의 핵심은 그것이 부유한 남성들에게 중요한 인권을 유일하고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곧 자유주의적 인권에는 여성들에게는 필요한 성적 자기결정권, 자기 몸에 대한 통제권, 임신·출산 등 재생산권, 임신 선택권이 빠져 있어, 그런 권리에 대한 요구를 비정상적이고 부당한 것으로 만들었다.
결국 여성은 인권이나 시민권으로부터 소외되었다. 여성주의자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의 특성, 여성의 가치, 여성의 활동, 여성의 복합적인 사회적 위치를 고려하는 시민권과 인권을 구축하려고 했다.
집단인지적 인권은 여성뿐만 아니라 소수종족, 성적 소수자, 장애인 등 기존에는 정상적인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보호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권리들로 인권을 크게 확장했다.

현대 사회에서의 인권과 시민권의 발전-다문화적 인권
다문화적 인권은 미국에서는 집단인지적 인권과 동일어로 다양한 소수집단의 권리를 의미하며, 캐나다와 호주에서는 이민자와 소수민족에게 필요한 권리를 의미한다.
지구화와 지역화는 현대사회를 문화적으로 매우 다양하게 만들었으며, 다원성을 존중하는 문화적 다원주의를 하나의 원리로 정착시키고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이 발전함에 따라 여성, 장애인, 유색인종 등 소외됐던 집단들은 자신들의 다름과 정체성을 인정하는 새로운 시민상과 권리를 사회가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양한 구성원을 가진 사회는 그것을 인정하고 다양한 구성원들의 요구를 고려해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다문화적 권리는 이러한 맥락에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국가가 다문화적 권리를 인정하고 보장하는 것은 사회에서 소외되었던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교육과 정치적·문화적·사회적 참여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공통 문화와 양식, 그리고 소속감’을 증진시킴으로써 사회의 통합을 강화한다.
다문화적 인권은 (1) 자치권과 집단 대표권, (2) 다문화권과 (3) 차별보상권으로 대별된다.
자치권과 집단 대표권은 소수집단이나 사회적 약자가 자유롭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발전시키거나 자신의 요구를 결집할 수 있도록 일정한 지역적 관할권 또는 정치적 자율성을 가질 수 있는 권리와 중앙정부의 정책결정에 자신의 대표를 참여시킬 권리다.
다문화권은 소수집단이 주류 사회에서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차별이나 불이익의 위험 없이 자신들의 신체적·문화적 특징을 표출할 수 있는 권리다.
마지막으로 차별보상권은 소수 집단이 주류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기회를 제공하거나, 과거 또는 현재에 겪어야 했던 차별을 보상하고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소수집단에게 일정한 특권을 제공한다.

한국에서의 집단인지적-다문화적 권리
한국에서 다문화적 인권은 크게 2가지 측면에서 활용될 수 있다.
우선 다문화적 인권은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등 오래 전부터 사회적으로 소외된 집단의 인권을 보장하고 이 집단들을 사회적으로 통합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또한 지구화의 영향으로 한국 사회에 외국인 이민자, 결혼 이민자가 대거 유입되면서 생겨난 새로운 소수집단의 권리를 발전시킬 수 있다.
구체적으로 다문화 가정의 구성원들에게 2중 언어·문화 교육, 집단 형성 지원, 집단 대표권 등의 기존 한국 시민들이 가지지 않았던 새로운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다문화 가정의 인권을 내실화하고 사회통합을 도모할 수 있다.

인권이 서로 충돌할 때
법에 보장된 권리에는 순위가 정해져 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헌법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권리인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가장 근본적인 인권이다.
그 뒤에 존엄과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필요한 권리들이 “평등권”, “신체의 자유”, “양심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 “재산권”, “참정권”, “교육권”, “노동3권”, “복지권” 순으로 제시되는데, 이 순서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의 우선순위를 나타낸다.
필요한 경우에 헌법은 수정될 수 있지만, 권리들이 충돌할 경우 헌법과 헌법에 담겨있는 인권의 기본정신은 판단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 세계인권선언=1948년 12월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모든 국민, 모든 국가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기본적 인권기준이다. 총 30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가운데 몇 가지 조항은 다음과 같다.
제22조-모든 사람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국가적 노력과 국제적 협조를 통하여 그리고 각국의 조직과 자원에 의거하여 자신의 존업성과 인격의 자유로운 발전에 불가결한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를 실현할 권리를 가진다.
제23조-모든 사람은 근로의 권리, 직업의 자유선택권, 정당하고 유리한 근로조건에 대한 권리 및 실업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고 동일한 노동에 대하여 동일한 보수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모든 근로자는 자신과 가족의 인간적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정당하고 유리한 보수를 받고, 필요한 경우에는 다른 사회적 보호방법에 의하여 보충받을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거나 가입할 권리를 가진다.
제24조-모든 사람은 휴식과 여가의 권리를 가지며, 여기에는 노동시간의 합리적인 제한과 주기적인 유급휴가가 포함된다.
제25조-모든 사람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식량, 의복, 주택, 의료 및 기타 필요한 사회적 용역 등 적합한 생활 수준을 유지할 권리와 실업, 질병, 불구, 배우자 사별, 노령, 그 밖의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사유로 인한 생계수단의 결여 등에 대하여 보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모자는 특별한 배려와 지원의 대상이 된다. 모든 어린이는 적출과 서출의 구별없이 동일한 사회적 보호를 받는다.

다문화가정의 현황
2010년 여성가족부 발표에 따르면, 외국인 결혼이주자는 2009년 5월 현재 12만 5,673명으로 혼인귀화자 4만 1,417명을 합치면 총 16만 7,090명이다.
국적으로 분류해보면, 조선족이 30.4%, 베트남이 19.5%, 필리핀이 6.6%, 일본 4.1%, 캄보디아 2.0% 등이었다.
2009년에 결혼한 농촌 총각 8,596명 가운데 40%가 넘는 3,525명이 외국인 신부과 결혼했을 정도로 농촌에서 다문화가정을 찾아보기는 더 이상 어렵지 않다.
같은 여성가족부 조사에 의하면 여성 결혼이주자는 한국인 남편에 비해 평균 10살 어리고, 이혼·사별을 경험한 결혼이주자는 4.0%인 것으로 밝혀졌다.
다문화가족의 평균 자녀 수는 0.9명으로 조사되었다. 73.5%의 응답자가 자녀교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월평균 소득은 100~200만원이 38.4%, 100만원 이하가 21.3%를 차지하여 상당히 낮은 편이었고, 응답자의 30%가 빈곤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34.8%가 차별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하였으며 22.5%가 언어문제를, 21.1%가 경제문제를, 14.2%가 자녀문제로 인해 한국생활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미국 독립선언서(1776) 전문
토머스 제퍼슨이 기초한, 자유주의적-개인주의적-보편주의적 인권의 형성을 알린 미국 독립선언서.
“인류 역사에서 한 민족이 다른 민족과 정치적 결합을 해체하고 세계 여러 나라 사이에서 자연법과 신의 섭리가 부여한 독립·평등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 필요해졌을 때, 우리는 인류의 신념에 대한 엄정한 고려를 하면서 독립을 요청하는 여러 원인을 선언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자명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조물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는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으며, 이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동의에서 유래한다.
또 어떠한 형태의 정부이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는 언제든지 정부를 변혁하거나 폐지해 인민이 가장 효과적으로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는, 그러한 원칙에 기초를 두고 그러한 형태로 기구를 갖춘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는 것이 인민의 권리이다.
진실로 인간의 심려는 오랜 역사를 가진 정부를 천박하고도 일시적인 원인으로 변경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인간에게는 이미 관습화된 형식을 폐지하면서 악폐를 시정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 악폐를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 계속된 학대와 착취가 변함없이 동일한 목적을 추구하고 인민을 절대 전제 정치 밑에 예속시키려는 계획을 분명히 했을 때에는, 이러한 정부를 타도하고 미래의 안전을 위해서 새로운 보호자를 마련하는 것이 그들이 권리이자 의무이다.
이와 같은 것이 지금까지 식민지가 견뎌온 고통이었고, 이제 종래의 정부를 변혁해야 할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대영국의 현재 국왕의 역사는 악행과 착취를 되풀이한 역사이며, 그 목적은 직접 이 땅에 절대 전제정치를 세우려는 데 있었다.
지금 이러한 사실을 밝히기 위해 다음의 사실을 공정하게 사리를 판단하는 세계에 표명한다.
국왕은 공익을 위해 매우 유익하고 필요한 법률을 허가하지 않았다.
국왕은 긴급이 요구되는 중요한 법률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동의하지 않으면 시행해서는 안 된다고 식민지 총독에게 명령했다. 이렇게 하여 시행이 안 된 법률을 국왕은 다시는 고려하지 않았다.
국왕은. 인민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권리이지만 오직 전제군주에게만은 두려운 권리인 입법부에서의 대의권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광대한 선거구를 조정하는 법률을 허가할 수 없다고 했다.
국왕은 우리를 괴롭혀 결국은 자신의 정책에 복종시키기 위해 입법기관의 양원을 공문서 보관소에서 멀리 떨어진 유별나고 불편한 장소에 동시에 소집했다.
국왕은 인민의 권리를 침해한 데 대해 민의원이 단호하게 반발하면 몇 번이고 민의원을 해산했다.
국왕은 민의원을 이렇게 해산한 뒤 오랫동안 대의원의 선출을 허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입법권은 완전히 폐지할 수는 없는 것으로, 결국 인민 일반에게 돌아와 다시 행사하게 되었지만, 그 동안에 식민지는 내우외환의 온갖 위험에 당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왕은 식민지의 인구를 억제하는 데에도 힘을 썼다. 이것을 위해 외국인귀화법에 반대했고, 외국인의 이주를 장려하는 법률도 허가하지 않았으며, 토지를 새로이 취득하는 데에도 여러 가지 조건을 붙여 까다롭게 했다.
국왕은 사법권 수립 관련 법률을 허가하지 않음으로써 사법행정에도 반대했다.
국왕은 판사의 임기, 봉급의 액수와 지불에 관해 오로지 국왕의 의사에만 따르도록 했다.
국왕은 우리 인민을 괴롭히고 인민의 재산을 축내기 위해 수많은 새로운 관직을 만들고, 수많은 관리를 식민지에 보냈다.
국왕은 평화 시에도 우리 입법기관의 동의 없이 상비군을 주둔시켰다.
국왕은 군부를 문민의 통제에서 독립시켜 우위에 놓으려고 했다.
국왕은 다른 기관과 결탁해 우리 헌정이 인정하지 않고 우리 법률이 승인하지 않은 사법권에 예속시키려 했고, 식민지에 대해 입법권을 주장하는 영국의회의 여러법률을 허가했다. 즉,
대규모의 군대를 우리 사이에 주둔시키고,
군대가 우리 주민을 살해해도 기만적 재판을 해서 이들이 처벌받지 않도록 하고,
우리의 동의 없이 세금을 부과하고,
수많은 사건에서 배심 재판을 받는 혜택을 박탈하고,
허구적인 범죄를 재판하기 위해 우리를 본국으로 소환하고,
우리와 인접한 식민지에서 영국의 자유로운 법률제도를 철폐하고 전제적 정부를 수립한 뒤, 다시 그 영역을 넓혀 이 정부를 모범으로 삼아 이 식민지에도 동일한 절대적 통치를 도입하려 하고,
우리의 특허장을 박탈하고, 우리의 귀중한 법률을 철폐하고, 우리의 정부형태를 변경하고,
우리 입법기관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어떠한 경우든 우리를 대신해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선언하는,
이러한 법률을 허가한 것이다.
국왕은 우리를 자신의 보호 밖에 둔다고 선언하고, 우리와 전쟁을 벌임으로써 식민지 통치를 포기했다.
국왕은 우리 바다에서 약탈을 자행하고, 우리 해안을 습격하고, 우리 도시를 불사르고, 우리 주민들의 생명을 빼앗았다.
국왕은 가장 야만적인 시대에도 그 유례가 없고 문명국의 원수로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잔학과 배신의 상황을 만들고, 이와 더불어 이미 착수한 죽음과 황폐와 포학의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이 시간에도 외국 용병의 대부대를 수송하고 있다.
국왕은 해상에서 포로가 된 우리 동포 시민들에게 그들이 사는 식민지에 대항해 무기를 들거나, 우리의 벗과 형제 자매의 사형을 집행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손에 죽기를 강요했다.
국왕은 우리 사이에 내란을 선동했고, 변경의 주민에 대해서는 연령·남녀·신분의 여하를 막론하고 무차별로 살해하는 것을 전쟁의 규칙으로 하는 무자비한 원주민을 자기 편으로 하려고 했다.
이러한 탄압을 받을 때마다 그때그때 우리는 겸손한 언사로 시정을 탄원했다. 그러나 여러 차례 계속된 진정에 대해 돌아온 것은 박해 뿐이었다. 이와 같이 모든 행동에서 폭군이라는 정의를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국왕은 자유로운 인민의 통치자로 적합하지 않다.
우리는 또한 영국의 형제 자매에게도 주의를 환기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우리는 영국의회가 우리를 억압하려고 부당한 사법권을 확대하려 하자 수시로 경고했다. 우리는 우리가 아메리카로 이주해 식민을 하게 된 제반 사정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그들의 타고난 정의감과 아량에도 호소한 바 있다. 그들과 같은 피가 흐른다는 데 호소하여 우리와의 연결과 결합을 결국에는 단절시키는 이러한 탄압을 거부해줄 것을 탄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또한 정의와 혈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영국에서 독립해야 하는 사정을 고발할 필요성을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세계의 다른 국민에게 대하듯이 영국인에 대해서도 전시에는 적으로, 평화 시에는 친구로 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한다.
이에 아메리카 연합의 모든 주 대표들은 전체 회의에 모여서 우리의 공정한 의도를 세계의 최고 심판에 호소하며, 이 식민지의 선량한 인민의 이름과 권능으로 엄숙히 발표하고 선언한다.
이 모든 식민지 연합은 자유롭고 독립된 국가이며, 권리에 의거하고 자유롭고 독립된 국가여야 한다. 이 국가는 영국의 왕권에 대한 모든 충성의 의무를 벗으며, 대영제국과의 모든 정치적 관계는 완전히 해소되고 또 해소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 국가는 자유롭고 독립된 국가로서 전쟁을 개시하고 평화를 체결하고 동맹관계를 협정하고 통상관계를 수립하는 등 독립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모든 행동과 사무를 할 수 있는 완전한 권리를 갖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생명과 재산과 신성한 명예를 걸고 신의 가호를 굳게 믿으면서 이 선언을 지지할 것을 서로 굳게 맹세한다“


제10장 성과 정치/경제


페미니즘, 성의 정치/경제 체계인 가부장제를 발견하다
오늘날 우리는 페미니즘의 등장으로 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집단의 여성들이 스스로를 종속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였다.
페미니즘은 성적 차별을 철폐하고 새로운 성적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다양한 움직임을 형성해 오고 있는 단계라 할 수 있다.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일컬어지는 매리 월스톤크래프트는 프랑스혁명의 영향을 받아 집단 여성의 권리와 함께 여성의 교육권을 주장하게 되었고, 이는 이후 역사에서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1968년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68혁명 이후 페미니즘은 제2의 단계를 맞는다. 실제로 '제2의 물결'은 서구에만 국한되지 않고 현재까지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페미니즘은 '가부장제'를 발견하였다. 가부장제의 발견은 성(섹스, 젠더, 섹슈얼리티)의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체계를 발견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페미니즘은 가부장제를 해석할 개념으로 특히 '젠더'에 초점을 맞추었다. ‘젠더’는 흔히 사회문화적인 성이라고 정의된다.
가부장제의 '젠더' 발견은 다른 말로 여성을 '제2의 성'으로 만드는 사회제도의 발견이었다. 여성이 남성중심적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예속된 그러나 동시에 신비화된 '타자'로 살아왔음을 발견한 것이다.

페미니즘, 근대의 사회계약론을 다시 보다: 성적 계약론
근대 사회는 서구의 계몽주의에 입각한 루소의 ‘사회계약’ 이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페미니즘은 그 계약론에 여남 사이의 계약이 언급되지 않는다고 보고 새롭게 성적 계약론을 제시하였다.
사회계약론은 시민사회가 개인들의 자유로운 계약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지만 ‘성적 계약론’의 입장에서 보면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하나는 계약관계가 평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진다는 착각이고, 다른 하나는 성적 계약의 이야기가 아예 억압되어 있다는 점이다.
페미니즘이 시도한 재설정과 차별화의 역사는 긴 행렬을 만들고 있다. 여기서는 이론적 재설정의 예를 간단히 들었지만, 페미니즘이 재구성한 것은 다양하다.
페미니즘은 이론만이 아니라 역사학의 내용도 바꾸었다.
'매춘의 역사', '포르노그래피의 역사', '여의사의 역사', '강간의 역사', '자궁의 역사', '여성의 역사' 등 페미니즘의 등장 이전에는 나오지 않을 내용들이 차별화되면서 등장한다.
그리고 여성학과 여성운동만이 아니라 학문 분과에 '여성'을 추가하게 되었다.

페미니즘, 남성적 가치를 문제삼다: 여성적 가치론
페미니즘은 남성적 가치를 문제 삼으며 여성적 가치에 관심을 두었다.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고 남성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던 초기 단계에서 남성적 가치를 문제 삼고 비판하는 것으로 이동했다.
특히 제2의 물결을 만들어낸 페미니즘은 남성문명, 남성적 가치를 비판하고, 여성적 가치를 재평가하거나 여성성을 찬양하는 입장들을 만들어 내었다.
급진적 페미니즘은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이루어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반면 프랑스의 페미니스트들 중 일부는 여성의 성체험이 남성의 성체험 보다 훨씬 다양하고 우월하다는 즉 여성의 경험이 남성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폈다.
프랑스 페미니즘은 남성의 논리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면서 남근이성주의라는 것이 너무나 이성 중심의 사고였고 그 사고는 근대문명, 근대의 경제체제를 형성하는 중심축이 되었다고 본다.
생태학적인 페미니즘은 근대문명이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에 얼마만큼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가 하는 측면을 강조하면서 그것을 여성에 대한 폭력과 연관시킨다.
그래서 남성적 가치가 아닌 여성적인 가치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

페미니즘, 사적 유물론을 다시 보다: 성계급론
‘성의 변증법'은 엥겔스의 유물론을 재설정한다.
역사적 유물론은 성의 변증법에서 모든 역사적 사건의 궁극적 원인과 커다란 동력을 찾고자 하는 역사과정에 대한 견해로서,
즉 사회를 생식적 재생산을 위한 두개의 다른 생물학적 계급으로 구분하고, 이 두 계급은 서로서로 투쟁을 하며, 이러한 투쟁에 의해 창조된 결혼, 출산, 육아의 양식 변화에서,
그리고 신체적으로 구별된 다른 계층들의 연관된 발전 ‘사회적 지위들’, 그리고 ‘경제․문화적’ 계층제도로 발전된 성에 근거한 최초의 노동분업에서 그 원인과 동력을 찾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계급을 최초의 계급으로 놓은 급진적 사상 이후 페미니즘은 성과 계급에 관한 논쟁을 벌인다. 1980년대 서구 페미니즘 내부에서는 성을 문제삼을 것인가, 계급을 문제삼을 것인가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있었다.
페미니스트들은 자본주의의 모순이 해결되면 여성문제의 해결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경우 여성의 문제는 자본주의의 문제라고 규정짓는다.
이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이 가부장제의 문제점을 제대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여성과 남성의 성차별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지 않았다고 보는 쪽은 사회주의 페미니즘이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계급모순과 성모순을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는 이중체계론을 내세웠다.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에 대응하다: 섹슈얼리티론
젠더는 여성/남성과 같이 성별을 일컫는 말이고 섹슈얼리티란 인간의 성적 욕망, 성적 정체성, 남자다움, 여자다움, 동성애, 양성애, 이성애 등과 관련된 것을 일컫는 개념이다.
마르크스주의가 노동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면 페미니즘은 젠더와 섹슈얼리티가 노동만큼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남성들이 여성들을 성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페미니스트의 가장 중요한 논쟁점이 된다. 자신의 것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이면서 가장 잘 뺏기는 것이 섹슈얼리티와 노동이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섹슈얼리티는 여성들과 남성들로 그리고 그들의 관계가 사회를 만드는 것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적 존재들을 만들어서 욕망을 창조하고, 조직하고, 표현하고 방향을 잡는 사회적 과정이다.
다른 이들을 위하여 어떤 이들의 노동을 조직적으로 몰수하는 것이 계급을 결정하듯이, 다른 이들의 사용을 위하여 어떤 이들의 섹슈얼리티를 조직적으로 몰수하는 것은 여성을 결정한다.

페미니즘, 여성들 사이의 정치/경제적 차이도 문제 삼다
페미니즘은 남성과의 관계, 남성중심적 가부장제에 대한 문제제기에 이어 여성들 사이의 차이 또한 문제를 삼았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와 차별에 관심을 갖고 대안을 찾으려 하면서 페미니즘은 여성들 사이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1세계/백인/중산층 여성과 다른 여성들이 존재하며 이성애자여성과는 다른 레즈비언여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페미니즘 내부의 정치적 입장의 차이들을 만들었다.
서구의 중심성을 벗어나려는 탈식민 페미니즘과 남반구 페미니즘이 등장하게 되었다.

페미니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가부장성을 문제 삼다
현재를 전지구적 자본주의 시대 혹은 신자유주의 시대라 할 수 있다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전지구적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혹은 가부장체제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세계화가 여성의 노동들을 재조직하는 방식은 글로벌 경제의 불평등한 구조에 기인한다. 불평등한 구조는 국가 간의 경제적 불평등도 원인이 된다.
입양과 출산 자체도 '국제 분업'의 양상을 띤다. 국가의 빈부에 따라 입양이 이루어진다. 국제결혼 또한 경제적 불평등 구조가 작동하는 장이다.
다문화주의, 다문화사회 등의 이름으로 미화되는 국제결혼을 하는 여성들은 국가, 민족, 인종에 따라 차등화 된다. KTX 여승무원, 이랜드, 기륭전자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해고 현상은 신자유주의적 경영의 결과로 나온 것이다.
한국의 비정규직의 70% 이상이 여성인 이유는 신자유주의 자체가 가부장제와 함께 작동하기 때문이다.

현재진행형의 페미니즘
페미니즘은 발견, 재설정 그리고 논쟁의 역사를 통해 많은 문제를 부각시켰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과거의 이론과 실천이 아니고 현재진행형이고 미래지향적이다.
먼저 페미니즘이 발견했다고 한 가부장제는 아직 제대로 이론화가 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여성들의 해방과 여성을 포함한 인류의 성적 해방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이론과 실천의 괴리, 여성들 스스로가 가부장제에 복속하고 있는 측면, 지배권력으로서의 성권력에 대한 철저한 인식 등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더 분명한 것은 아직 가부장체계와 성체계가 전면적으로 이론화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부장체계의 전면적 이론화는 현재 변화하는 시대상과 연결되어 이론화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 매리 월스톤크래프트(1759~1797)=영국 런던 태생으로 학교 교사와 교장으로 재직하다가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하는 운동을 주도하였다.
계몽주의 사상과 프랑스 혁명을 열렬히 지지하였으며, 여성의 평등한 권리와 기회를 주장하는 사회철학을 제시한 고전적인 페미니스트로 평가를 받는다.
낭만적 사랑과 물질적 안락함은 여성의 자연적 조건이라기보다 남성의 지배로 여성을 노예로 만들기 위해 사회적으로 부여된 수단이라고 보았다.

여성 상위 시대가 도래하였는가?
2010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0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의하면, 2009년 여성의 대학진학률은 82.4%로 최초로 남성의 진학률을 앞질렀다. 이제 여성 상위의 시대가 도래한 것일까?
그러나 2009년 현재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49.2%로 오히려 그 비율이 줄어들었다. 반면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009년 현재 73.1%로 여성의 참가율과 큰 차이를 보였다.
그 뿐 아니라 여성의 일자리는 보다 불안정한 경향을 보였다. 남성의 상용직 비율은 46.2%였지만 여성의 상용직 비율은 31.2%였다. 반면 임시직 근로자 비율은 여성이 30.6%로 남성 15.4%의 두 배에 달하였다.
또한 11.9%의 여성이 무급 가족노동에 종사하고 있었다. 이는 남성 1.3%의 9배나 되는 수치다.
2010년 외무고시 합격자의 60%가 여성이었고, 2009년 행정고시 합격자의 46.7%, 사법시험 합격자의 35.6%가 여성이었다. 그러다 보니 ‘여풍’이 화제가 되고 ‘여성 상위 시대’가 회자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노동시장에서의 여성의 열악한 처우가 그들을 공공부문 시험에 천착하게 하는 하나의 유인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베티 프리던의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
미국에서 1963년에 출간된 베티 프리던의 '여성의 신비' 는 1960~70년대 미국 여성운동의 자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는 '여성의 신비' 의 첫 장 부분이다.
“미국여성들은 여러 해 동안 이 병을 마음속 깊이 간직한 채 침묵을 지켜왔다. 이것은 이상한 동요나 불만에 대한 자각이었으며 또한 20세기 중반의 고통받는 미국여성들이 고대했던 바람이었다.
교외 지역에 사는 (중·상류층의) 가정주부들은 제각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홀로 싸웠다.
여성들은 가족을 위해 침대를 정리하다가, 쇼핑하다가, 또 아이들과 땅콩 샌드위치를 먹다가, 과외 활동을 위해 아이들을 자동차로 데려다주다가, 밤에 남편 곁에 누웠다가, 스스로도 묻기 두려웠던 조용한 질문을 떠올렸다. ‘이게 전부인가?’
15년 이상 여성을 위한 또는 여성에 대해 씌여진 수백만 가지 글들 가운데 이러한 열망에 대해 적은 글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전문가들이 쓴 글이나 책, 여성잡지에서는 여성들로 하여금 현모양처로서 자기역할을 수행할 것을 강조하는 것만이 최고의 이상이자 운명이라고 주입시켰다.
전문가들은 그들에게 좋은 남자를 만나서 놓치지 않는 방법···또한 어떻게 하면 더욱 여성답게 보이도록 옷을 입으며 여성답게 행동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어떻게 하면 결혼 생활을 더욱 재미있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여성들은 시인이나 물리학자, 회사의 사장이 된다는 것은 신경질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불행한 여성이 되는 지름길이라고 배워왔다.
또한 진정한 여성은 여성 해방론자들이 쟁취하려고 애써왔던 직업, 고등교육, 정치적 권리, 자주성, 독립의 기회도 원치 않아야 한다고 배웠다.
40대, 50대 여성들 중에는 그러한 꿈을 포기했던 것을 고통스레 기억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젊은 여성들은 이제 더는 그러한 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백 년 전의 여성들은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 투쟁했지만 지금 여학생들은 좋은 남편을 고르기 위해 대학에 간다.
1950년대 중반까지는 60퍼센트가 결혼을 하기 위해 또는 교육을 많이 받는 것이 결혼에 장애가 되는 것이 두려워서 대학을 중퇴했다.
···미국 여성들의 유일한 꿈은 완벽한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며, 최대의 야망은 다섯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아름다운 저택에 사는 것이었다.
그들이 유일하게 노력하는 일은 좋은 남편감을 만나서 결혼한 후 자기만을 생각하게 하는 일이었다.
집 밖에서 일어나는 세계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며, 남자들이 중요한 결정을 해주기를 바랐다.
또 여성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자랑스럽게 여겨 인구 조사란에 직업을 가정주부라고 당당하게 쓰곤 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괴로움을 느끼던 여성은 결혼 생활이나 자기 자신에게 뭔가 분명히 잘못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여성들은 자신들의 생활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느꼈다.
부엌 바닥에 윤을 내면서 그 신비스러운 만족감을 느끼지 못 한다면 도대체 나는 어떻게 된 여성인가? 하고 자문하면서도 자기의 불만을 인정하는 것을 너무나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다른 여성들이 같은 불만을 함께 느끼며 살아가는지 결코 알 수 없었다. 남편에게 말해보려 해도 남편도 아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또 그녀 스스로도 정말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정신 분석가들은 그러한 증상에 대해서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없었다.
많은 여성들이 그랬듯이 정신과 의사에게 도움을 구하러 간 어느 여성은 ‘매우 수치스럽게 생각해요’ 또는 ‘저는 거의 절망스러울 만큼 신경질적인 것 같아요’하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가진 대부분의 여성들은 정신 분석가에게 가보려고 하지 않았다. ‘정말로 문제될 것은 없어···나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하고 스스로에게 말해왔던 것이다.
이름도 붙일 수 없는 이 문제는 도대체 어떤 것인가? 여성들이 이것을 표현하려고 애쓸 때 사용하는 말들은 대체 어떤 것들인가? 때로 여성은 ‘어쨌든 공허하고
···불완전한 기분을 느낀다’ 또는 ‘살아있는 것 같지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현재 개인적으로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는 수 천명의 여성들 중에서, 기혼자들은 결혼 생활에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미혼자들은 불만과 우울증으로 고통스러워한다고 알려졌다.
무엇이라고 이름붙일 수 없는 이 문제는 주부들의 일상적인 가정 생활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가? 이 문제를 말로 표현하려고 할 때 여성들은 단지 자기가 지내는 매일의 생활을 이야기할 뿐이었다.
주부들은 단순히 현대 가정 주부로서 자기 역할에 대한 수많은 의무감 때문에 덫에 걸려 꼼짝하지 못 했다. ···
만약 내가 옳다면, 오늘날 수많은 미국 여성들의 가슴 속에서 꿈틀거리는 이름 모를 문제는 여성다움을 상실해서도 교육을 너무 많이 받은 탓도 아니며, 가사 노동이 힘들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우리 가운데 누군가 인식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인식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여성들과 아이들을 괴롭혀왔으며, 수년 동안 의사들과 교육자들을 당황하게 해온 낡은 문제와 또 새롭게 나타난 문제들을 해결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그것은 한 국가와 한 문화권으로서 우리의 미래에 중대한 열쇠가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우리는 ‘나는 나의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가정 외에 다른 어떤 것을 원했다’고 말하는 여성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다“


제11장 평화와 전쟁


전쟁은 불가피한가?
전쟁은 경쟁관계에 있는 정치집단 사이의 갈등을 군사력을 동원하여 해결하려는 행위다. 전쟁은 국가의 안과 밖에서 벌어지는 무력충돌으로 정의되며, 한편으로는 사상자 수를 기준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전쟁의 가장 큰 부정적 효과는 인명의 살상이다. 현대의 총력전은 전쟁에 모든 사람을 동원하게끔 한다. 따라서 군인과 민간인 모두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전쟁이 사회통합과 연대감 형성에 기여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외부나 내부의 타자를 적으로 설정하고 내적 통합을 달성하려는 정책들은 전쟁과 평화의 경계를 모호하게 할 뿐만 아니라 평화를 전쟁을 준비하는 상태로 생각하게끔 함으로써 사람들의 평화적 감수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인류는 20세기 초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계속되었다. 핵전쟁의 공포 때문에 강대국 사이의 전쟁은 없었지만, 주변부에서는 전쟁이 계속되었다.
20세기 말에 소련 및 동구의 사회주의국가가 해체되면서 내전이 증가했다. 아프리카 지역에서 종족 간 분쟁, 자원을 둘러싼 내전이 계속되고 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의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가 공격 받은 이후 근대의 전쟁은 국가 간 전쟁이라는 틀이 무너지고 있다.

전쟁은 왜 발생하는가?
원시사회나 중세사회와 달리 근대사회의 전쟁은 근대국가들 사이에서 발생한다. 15세기부터 유럽에서 시작된 근대국가들의 형성과정은 전쟁의 연속이었다.
전쟁은 다시금 전쟁을 필요로 했고, 결국 자본화된 강제를 동원할 수 있었던 국가들의 국제체제가 만들어졌다.
일부 강대국들의 집단관리체제로서 유럽협조체제를 규율하는 원칙이 군사력에 기초한 ‘세력균형’이었다. 그러나 1차세계대전 이후 세력균형이 도리어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는 반성이 제기되었다.
이후 전쟁의 근원을 찾기 위한 연구도 활발해졌다.
먼저, 독일의 지정학 전통에서는 다윈의 진화론에 근거하여 하나의 ‘유기체’로서 국가는 생존을 위한 항상적 투쟁을 해야 하고, 이 국가가 팽창주의적 성격을 상실하게 되면 급격한 쇠퇴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전쟁의 원인을 근대국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민족주의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민족주의는 전쟁이 시민들 사이의 연대를 제고하고 보다 우수한 국가를 만들게 한다는 사고를 생산했다.
국가를 위해 죽는 것을 숭고하게 생각하는 애국심은, 다른 국가에 대한 배타성과 적대성을 만드는 장치였다. 21세기의 전쟁에도 민족주의는 주요 변수로 기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제체제의 ‘무정부상태’를 전쟁의 원인으로 보려는 시각이 있다. 무정부상태는 주권을 가진 근대국가의 상위에서 국제관계를 규율하는 권력기구가 없음을 의미한다.
국제체제가 무정부상태라는 가정은, 국가를 넘어선 권위체가 없는 한 전쟁이 불가피하거나 또는 무정부상태에서 ‘안보’가 국가의 사활적 이익이라는 논리를 생산한다.

평화란 무엇인가?
서구적 전통에서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다. 서구적 근대에서는 평화를 세력균형과 동일시하거나 패권국가가 부과하는 질서를 평화로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칸트는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일상화하는 전제왕정을 타파하고 모든 국가가 공화정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제체제의 무정부상태를 제거하고 안보문제를 집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국제연맹’의 창설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서구적 근대의 평화개념에 대한 도전은 ‘평화연구’ 또는 ‘평화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평화연구자들은 과거와 같은 큰 전쟁은 없지만 평화가 도래하지는 않았다고 느끼고, 평화가 무엇인지를 정의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비판에 대응하여 갈퉁은 ‘폭력과 평화’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다. 폭력은 직접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직접적 폭력의 정점에 전쟁이 위치한다.
구조적 폭력은 국내적, 국제적 차원에서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를 야기하는 사회구조에 의한 폭력을 의미한다.
결국 전쟁이 없는 상태는 ‘소극적 평화’로 구조적 폭력이 제거된 상태는 ‘적극적 평화’로 정의될 수 있다.

평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평화는 국가들 간의 국제적 수준, 국가 내부의 국내적 수준, 그리고 개인적 수준에서 생각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평화는 국제적 수준에서 달성되어야 할 목표로 간주되지만 국내적 수준 및 개인적 수준에서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은 국제적 수준에서의 평화는 지속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
현실주의적 입장은 평화를 국가안보의 하위개념으로 생각한다. 안보를 얻기 위해서는 압도적 힘의 우위나 공포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쪽의 군비증강이 다른 쪽의 군비증강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군비증강이 안보를 불안하게 하는 ‘안보의 딜레마’를 촉발할 수도 있다.
자유주의적 입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먼저 경제적 자유주의 입장에 따르면, 국가들 사이의 경제적 교류의 확대가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
다음으로 국내체제의 문제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칸트를 재해석하여 서구적 민주주의의 도입이 평화의 기초라는 공화적 자유주의를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제도적 자유주의 입장은 국제제도의 건설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자유주의는 평화적 방법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려 한다는 점에서 현실주의와 구분될 수 있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입장이 안보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급속히 증가한 미국의 군비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연간 군비지출 규모는 어느 정도나 될까? 지난 2000년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의 국방예산은 급속하게 증가해왔다.
2001년 당시 3,080억 달러였던 미국의 국방예산은 2002년 3,510억 달러, 2003년 3,960억 달러를 기록한데 이어 2005년에는 4,2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미국이 2005년에 군비로 쓴 4,200억 달러를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400조 원이 넘는 액수로, 당시 우리 정부예산 203조 원의 두 배에 달한다.
이렇게 미국의 군비가 급속히 증가한 것은 물론 ‘테러와의 전쟁’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미국 성인의 5분의 1 이상이 구직신청서나 도로표지판을 제대로 읽지 못 하는 문맹(文盲)이며, 3천만명 이상의 국민들이 빈곤 상태이기도 하다.
군비지출 2위~10위 국가들의 국방예산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돈을 군비로 지출하고 있는 미국이, 선진국 가운데 가장 유아사망률이 높은 나라라는 사실은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국내에서 과연 갈퉁이 지적한 ‘적극적 평화’를 실현하고 있는가?
미국에서는 교도소에 수감된 인구가 200만 명을 넘어서, ‘유럽 국가에 실업자가 많은 반면 미국에는 교도소에 갇힌 재소자가 많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제12장 세계화와 살림의 경제


세계화와 경제의 미래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의 특징은 대외적으로 세계 시장과 초국적 기업, 세계금융자본을 위해 개방을 확대하고, 대내적으로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부단한 혁신과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는 압력이 강화되는 점이다.
이러한 세계화를 옹호하고 추진하는 진영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가속화하면서 빈곤 퇴치 등 일부 부작용만 잘 해결되면 나라 경제가 균형적으로 발전하고 선진화할 것이라 본다.
대외개방으로 ‘외부충격’을 가하고 선진 부문에 ‘선택과 집중’을 하면 자원 이용의 효율성이 증가하여 다른 부문의 선진화도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
반면 세계화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해진다고 본다.
일국적 차원에서나 세계적 차원에서나 ‘20대 80 사회’, 즉 20%의 소수는 승자로 80%의 다수는 패자로 갈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국가들에서도 ‘20대 80의 사회’가 관철된다.

살림의 경제학
본래 ‘살림살이’를 뜻하던 경제는 오늘날 ‘돈벌이’를 뜻하는 말로 변하였다.
이는 인간 삶의 과정들이 화폐와 상품의 범주로 편입되면서 생활과정 그 자체보다는 교환가치가 우리 삶을 압도적으로 지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돈벌이 경제에서 돈벌이와 삶의 질이 충돌한다는 점이다. 개인은 소득 증대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고 내면을 억압해야 한다.
기업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연을 훼손하고 인건비를 줄이면서 값싼 원료와 노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처럼 돈벌이 경제에서는 자연, 인간, 내면을 살리기보다는 죽여야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근본적인 모순이 발생한다.
바로 이런 모순을 극복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외면과 내면이 조화롭게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이론이 ‘살림의 경제학’이고 그것을 실천적으로 구현하려는 것이 ‘살림의 경제’다.
살림의 경제학은 생명 살림의 원칙, 계속 살림의 원칙, 서로 살림의 원칙, 스스로 살림의 원칙, 내면 살림의 원칙 등 5원칙을 기초로 한다.

삶의 질 중심 구조혁신
지금까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구조조정은 노동의 유연화를 통해 사람을 일회용 컵처럼 가볍게 처리하려 하였다.
그러나 ‘삶의 질’ 중심의 구조혁신은 경쟁력이나 이윤이 아닌 ‘삶의 질’을 드높이기 위한 구조 변화다. 크게 보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살자는 것이다.
여기서 삶의 질은 건강과 여유, 존중과 평등, 따뜻한 공동체, 온전한 생태계 등 네 차원을 가리킨다.
삶의 질 중심 구조혁신에서 가장 중요한 다섯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가 시급히 필요하다.
둘째, 주거, 교육, 의료 문제를 사회공동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셋째, 개성 있는 평등화, 즉 고교·대학·직업 평등화를 실시해야 한다.
넷째, 유기농법으로 곡물, 과일, 채소를 생산하는 농민을 공무원 대우해야 한다.
다섯째, 각 산업 분야나 기업 활동에서 삶의 질 향상에 도움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엄격히 구분하여 도움되는 것은 적극 촉진, 장려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줄이거나 없애야 한다.

유기농업
현재 한국은 먹을거리의 75% 이상을 외국에서 수입한다. 식량자급률이 불과 25%다. 그것도 수입되는 석유를 사용하는 농업 아래서 그렇다.
그런데 카길, 몬산토, 네슬레 등 초국적 기업들이 농산물의 독과점 체제를 이루고 있다.
독점 이윤 속에 편입된 먹을거리 시스템의 세계화는 효율성, 간편성, 수익성을 중심으로 작동하기에 각 사회의 자립성과 건강성, 생태성에 치명적이다.
이에 맞서 유기농업 운동, 유기농 학교 급식운동, 농민 장터 운동, 지역물류 시스템 운동 등이 나타났다.
한국에서도 유기농 및 농촌 살리기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기농 운동은 이미 108개 국 750개 회원 단체가 속해있는 세계유기농운동연맹과 국제유기농업학회가 주축이 되고 있다.

대안교육
대안교육 운동은 입시 교육, 경쟁 교육, 점수 교육, 몰개성 교육 등 갇힌 교육이 아니라 자율과 자립, 개성과 민주주의, 협동과 공동체를 추구한다.
한국에서는 대안 교육 운동이 대안학교를 중심으로 1990년대 이후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대안 교육운동은 1919년에 시작한 독일의 발도르프 학교, 1921년에 영국에서 시작한 섬머힐 학교가 대표적이다. 이들 학교들은 아이들의 자유와 개성, 소규모 공동체를 중시한다.

협동조합
원래 협동조합은 자발적으로 구성한 상부상조 단체다. 그 중에서도 생협은 기존 ‘소비자주의’ 운동을 한 단계 고양한 것으로 소비자와 생산자가 연대하는 ‘사회적 경제’의 대표적 형태다.
한국에서 생협은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되었다. 협동조합은 농업협동조합, 노동자협동조합, 학교협동조합 등 다양한 형태로 상부상조하는 살림살이 경제를 실천한다.
세계의 협동조합 운동은 1895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세계협동조합연맹이 탄생함으로써 활성화되었다.
그로부터 1백년이 지난 1995년에는 자본주의 이윤 논리에 위협받는 협동조합의 위상을 정립하기 위한 ‘협동조합의 정체성 선언’이 발표되었다.

대안 에너지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의 핵심은 기계의 사용이었고, 기계의 핵심은 화석 에너지였다. 그 뒤로 석탄, 석유, 천연 가스 등 화석 에너지는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이 되었다.
그렇게 약 250년이 흐른 뒤 인류는 에너지 고갈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1972년 로마클럽이 발표한 '성장의 한계'는 화석 에너지 고갈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현재 40%의 에너지를 원자력에서 얻고 있는 한국에서는 2000년에 ‘에너지 대안센터’가 탄생하여 에너지 대안 운동이 본격화했다.
에너지 위기는 결코 원자력 발전의 확대나 화석연료의 추가 확보로는 온전히 극복될 수 없다. 에너지 절약, 에너지 효율화, 신재생에너지 개발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역화폐
지역화폐 운동은 중앙은행권을 통한 거래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능력과 마음을 거래하여 ‘우정과 환대의 공동체’를 건설하는 방법의 하나로 등장하였다.
현재 캐나다, 미국, 호주, 프랑스, 네덜란드 등에 3천여 종의 지역화폐가 존재한다. 한국에도 대전 한밭레츠의 ‘두루’, 경기도 과천의 ‘품앗이’ 등의 지역 화폐가 존재한다.
공동체 지역화폐의 사용으로 지역경제 활성화, 신용창조 및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통제력 강화, 인간적 교류 강화, 공동체 의식 강화, 사회적 관계 개선, 사회 소외의 완화 등 여러 이점을 기대할 수 있다.
한편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과 같이 빈민을 위한 무담보 소액대출을 통해 빈민의 자활과 자립을 돕는 금융시스템도 시사적이다.

공정무역
공정무역은 “소비자가 생산자에게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상품을 구입하자는 윤리적 소비운동”으로, 소비자가 무조건 싸게 구매하려는 태도나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분리와 불신을 극복하려는 운동이다.
커피 재배 농민들의 빈곤에 대응한 공정무역 운동에서 볼 수 있듯, 공정무역 운동은 ‘자유무역’에서 비롯된 구조적 빈곤을 타파하고자 하는 풀뿌리 운동의 일환이다.
국제빈민구호체인 옥스팜에 의하면, 보통 소비자가 우간다산 커피에 지불하는 돈 가운데 우간다 커피농민에게 돌아가는 몫은 겨우 0.5%에 불과하다. 현재 공정무역은 전체 무역량의 1% 수준이다.
한국에서도 아름다운 가게나 YWCA를 중심으로 ‘착한 커피’ 등의 공정무역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한편, 공정무역보다 한 걸음 더 나간 ‘민중무역’도 존재한다.
2006년 볼리비아, 쿠바, 베네수엘라 정부는 민중무역 협정을 체결하여 쿠바는 교육과 의료 부문의 지원을, 베네수엘라는 석유를, 볼리비아는 콩과 탄화수소를 상호 제공하기로 하였다.
그 외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대안적 세계화 운동도 존재한다. 이 운동은 2001년 9.11사태 이후 반전운동과도 결합하고 있다.

희망의 미래를 위하여
지금 세계의 정치와 경제는 ‘무한경쟁’인가 ‘자족공생’인가의 갈림길에 서 있다. 지금의 돈벌이만을 위한 무한경쟁 패러다임은 사람과 자연과 영혼을 훼손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을 돌려 세우기 위해서는 살림살이 패러다임을 추구하는 ‘살림의 경제’가 바로 서야 할 것이다.

* 이코노미의 어원=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상행위를 두가지로 구분하였다. ‘이코노미’의 어원이 된 ‘에코노미아’는 가정이나 잘 통치되는 국가를 꾸려가는데 필요한 상행위라는 뜻이다.
반면 ‘크레마티스티케’는 돈벌이 그 자체가 목적인 상행위로 부자연스럽고 바람직하지 못 한 상행위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화폐의 교환을 통해서만 부를 창출하는 소매업과 고리대금업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로버트 하일브로너의 '고전으로 읽는 경제사상' 참조.
* 카길=개인 소유의 다국적 기업으로 미국 미네소타주에 있다. 1865년에 세워졌으며, 미국의 개인 기업 중 두 번째로 큰 기업으로 피고용인이 약 158,000명이고 매출은 약 880억 달러이다.
곡식의 구입, 가공과 더불어 사료와 비료 산업에서도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거대 농산물 기업이다.
* 그라민은행=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에 의해 1983년에 창립된 소액 신용 대출 은행.
1976년 유누스 박사가 고리대금업자에 시달리는 대학 인근 마을 주민 42명에게 27 달러를 빌려준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특히 대출을 할 때 주로 여성을 대상으로 소그룹을 만들게 하여 자립을 돕는다. 자세한 내용은 무하마드 유누스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참조.

일해도 빈곤하다? 근로빈곤 문제
외환위기 이후로 일자리의 질이 저하되었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려온다. 안정적이고 질좋은 일자리는 줄어들고 저임금은 물론 불안정하기까지 한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다.
그 결과 일해도 가난을 면치 못 하는 ‘근로빈곤’의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그럼 ‘근로빈곤’이란 무엇일까? 근로빈곤에 하나의 분명한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누가 근로빈곤의 상태에 처해있는지에 대한 보편적인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노대명 외(2008)의 연구의 따르면, 근로빈곤층은 '노동'에 대한 시간개념에 따라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
먼저 과거 중심적 개념에 의하면, 근로빈곤층은 “빈곤층 중 연간 절반 이상을 유급근로에 참여한 모든 경제활동인구”를 지칭한다.
이는 미국 노동통계청(BLS)이 사용하는 정의이기도 하다. 그리고 현재 중심적 개념은 “현재 또는 조사시점에 근로 또는 구직활동에 참여하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근로’ 개념을 판단”한다.
마지막으로 미래 중심적 개념은 “조사대상자가 근로활동에 참여할 근로능력 또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는가에 초점을 두고”, 근로가능성(Workability)의 유무를 근로빈곤층의 기준으로 삼는다.
이 가운데 유럽연합에서는 과거 중심적 개념에 따라 근로빈곤층을 정의하는 경향을 보이며 이는 미국에서도 동일하다.
따라서 향후 근로빈곤층은 과거 중심적 개념에 의해 정의되는 방향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높다(노대명 외, 2008).
그럼 현재 근로빈곤 인구는 얼마나 될까? 현대경제연구원(2010)에 따르면, 2008년 근로빈곤층의 수는 총 취업자 2,357만 명 중 11.6%에 달하는 273만 명으로 추정된다.
2006년 이래 근로빈곤층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병희 외(2010)에 의하면, 최근 빈곤율이 증가하는 주된 원인은 근로빈곤 문제의 심화에 있다.
1997~2008년의 기간 동안 도시근로자가구의 빈곤율 증가에 노인빈곤층 증가보다 근로빈곤층 증가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의 근로빈곤율은 OECD 회원국에 비해 더 높다. 또한 저소득 취업자 중 본인의 근로소득 만으로 빈곤선보다 높은 소득을 벌어들이는 이는 겨우 18.1%에 불과했으며, 다른 가구원의 근로소득을 더해 빈곤을 벗어나는 경우가 절반 가까운 수준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여, 가장과 배우자가 모두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맞벌이 부부의 빈곤율도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 의하면, 전체 빈곤가구 가운데 맞벌이 가구의 비중은 2006년 2.8%에서 작년 5.4%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근로빈곤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노대명(2006)에 의하면 근로빈곤의 발생원인은 저임금과 고용의 질 등 경제적 요인과 가구 구성의 변화 같은 사회 인구학적 요인, 개인의 취업경쟁력과 같은 개인적 요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먼저 경제적 요인은 산업구조개편과 노동시장 유연화로 고용이 감소하고 또 불안정해져 근로빈곤이 발생한다고 본다.
특히 세계화는 “생산비용의 절감 또는 잉여의 창출을 위해 노동비용을 절감하는데 초점을 둔 노동유연화를 조장한다.”
한편 사회 인구학적 요인은 1인 취업자 가구 또는 미취업자 가구의 증대를 중시한다. 하위소득 계층에서 나타나는 사적이전소득의 감소도 근로빈곤의 한 원인이 된다.
마지막으로 개인적 요인은 근로빈곤층이 공급 측면에서 취약한 경쟁성을 보이는 것에 주목한다.
그러나 원인을 개인적 요인에서 찾는 것은 근로빈곤층이 경험하는 차별과 배제로 인해 제한적인 설명력을 갖는다. 한 예로 근로빈곤층은 흔히 1차적 해고대상이 된다.
세 가지 요인 가운데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역시 경제적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정부의 공식적 발표에 의하면, 지난해 비정규직 규모는 575만 4000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34.9%이다.
2002년의 비정규직 규모 384만 명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숫자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 따르면,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이들 비정규직의 정규직 대비 임금 비율은 46.2%에 불과했다.
이 비율은 2000년 53.2%를 기록한 뒤 점점 낮아지고 있다.
일본의 근로빈곤(‘워킹푸어’) 문제를 다룬 현대경제연구원(2010)의 보고서 역시 경기 침체로 인한 정규직 비율의 감소, 경비 절감을 위한 비정규직 채용 확대가 근로빈곤층 증가의 주된 요인이라 지적하고 있다.


제13장 문화제국주의를 넘어 삶의 양식이 되는 문화


문화의 정의
문화는 인문주의적 의미, 사회적 의미,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담고 있다. 가장 보편적으로 정의되는 문화는 인류학적 의미에서의 문화다.
여기서 문화란 “지식, 신앙, 예술, 도덕, 법률, 관습 등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로 정의된다.
레비스트로스가 문화의 상대성을 논하며 주장하였듯이 각각의 문화는 상하의 개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름이 있을 뿐이다.
후기 산업사회에서 흔히 사용되는 남용, 오용된 의미의 문화는 소비자본주의 체계에 의해 혼동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가 헤게모니를 장악한 이후, 문화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 문화상품에 의한 소비로 대치되고 말았다. 돈을 벌어들이지 못 하는 문화는 고사되고 있다.

문화 성립의 구성요소
문화를 성립시키는 핵심적 특징은 ‘다양성’과 ‘정체성’이다.
나름의 정체성을 가진 각각의 문화가 다양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서로 접변을 통해 충돌하고 자극하며 더 성숙한 문화를 발전시켜 나갈 수도 있다.
문화의 또 하나의 특질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승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전승된 문화는 정신을 고양하고 세대를 통합하는데 기능한다.

문화제국주의
문화제국주의는 지배적인 정치, 경제적 힘을 지닌 서구가 타 지역에 대한 문화적 침투를 통해 고유한 문화의 정체성을 상실케 하고 전통문화를 파괴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2차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 대한 무력적이고 가시적인 침략은 드물게 되었지만, 자신의 문화를 하위의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어 폐기하도록 만드는 문화제국주의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주요 통신사와 CNN 같은 대형 언론매체들은 정보와 사고의 독점으로 전세계의 여론을 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제국주의의 제도적, 정치적, 경제적 작용들이 문화의 힘없이 유지될 수 없다는 전제 하에서, 문화가 도덕적 힘을 제공하여 ‘이데올로기적 평정’을 성취하는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의 문화제국주의
미국의 문화제국주의는 냉전이 종식되면서 폭발적으로 확대되었고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더욱 공격적인 형태를 띠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미국은 세계 최대의 영화산업국으로 부상하였고, 이제 미국문화는 낯선 타국문화가 아닌 누구에게나 익숙한 글로벌한 문화가 되어버렸다.
이후 무역협상에서 방송, 영화 등 시청각 분야에 대한 개방 요구는 미국의 전통이 되고 말았다.
미국은 시장개방과 관련한 모든 협상에서 먼저 일정 기간 동안 자국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하도록 하는 스크린쿼터를 폐지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에 있어 문화부문은 항공, 제약에 이은 제3위의 수출 품목이다. 미국은 현재 전 세계 영화시장 점유율의 85%를 차지할 정도로 유례없는 독과점을 이루고 있다.
자유무역 하에서 각자 비교우위에 있는 상품을 정해 만드는 것이 무한경쟁을 이겨내는 비법으로 제시되고는 한다. 그런데 문화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문회적 예외 혹은 문화적 다양성이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양성과 정체성이 소멸된 문화는 상업적 오락상품에 불과하다.
문화는 교역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단지 교류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이다.

문화제국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원칙, 문화다양성 협약
2005년 유네스코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을 제외한 148개 국의 압도적 지지로 통과된 문화다양성 협약은 미래 문화교류의 틀을 위한 전 세계적 합의이다.
문화는 교류의 대상이며, 교역의 대상이 아니기에 자유무역협정에서 문화는 자동적으로 예외조항에 들어간다는 것이 문화다양성 협약의 골자이다.
더불어 이 협약은 국제적인 문화다양성 기금을 조성하여 사라져가는 소수의 문화, 언어들이 재생될 수 있는 활동을 국제적으로 벌이게 한다.
문화다양성 협약은 전 세계인의 삶에서 문화를 생존시켜 인류 모두가 자신의 문화를 지니고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인간다운 삶을 위한 권리장전이다.
한국은 일찍부터 이 협약에 서명하였으나 한미FTA와의 충돌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인해 2010년 6월에 이르러서야 국내법의 효과를 가지게 되었다.

살림의 문화를 위한 제도적 모색-한글 보듬기
풍요로운 정신을 가꾸며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 중의 하나는 자유자재로 자신의 사고를 담을 수 있는 언어를 갖는 것이다.
유네스코는 현존하는 전 세계 6,809개 언어 가운데 90%인 6,000여 개가 금세기 말이면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일 뿐 아니라 특정 사용집단이 세계를 인식하는 체계이자 그들의 정신적 성취를 담고 있는 그릇이다. 언어가 소멸하면 다양한 인류의 정신세계까지 사라지게 된다.
불행하게도 한글의 위상은 점점 위축되고 있고 영어권에서 새로 유입되는 어휘들은 우리말 번역을 거치지 않고 거의 대부분 그대로 들어와 우리의 소통을 방해한다.
우리나라의 국어정책은 정책의지가 존재하는지 싶을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다.
2008년 현 정부는 모든 공문과 회의진행을 영어로 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영어 공용화 작업을 추진하다 시민단체들의 반발로 철회하기도 하였으며, 지방정부도 온갖 영문 도시브랜드를 만들어 내고 있다.
2008년 현재 정부와 지자체가 지출한 영어예산은 한글예산의 37배에 이른다. 한글은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유일한 문자이기도 하다.
모국어에 대한 깊이 있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시험용 영어에 아무리 매진한다고 해도 탁월한 언어감각을 갖는데 한계가 있다.
적어도 한글과 영어에 대한 예산은 같은 수준에 놓여야 한다.
한류의 확산으로 우리말을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도 늘고 있고, 결혼이민과 이주노동자 등 한글 교육이 필요한 다문화가정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또한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700만 교포들의 자녀들이 한글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살림의 문화를 위한 제도적 모색-도서관 천국에서 미래가 만들어진다
우리나라에 있는 도서관 숫자가 OECD 평균치에 이르기 위해서는 2천개의 도서관을 새로 지어야 한다.
새로 지어지는 도서관은 땅값이 싼 산간 변두리보다 접근성이 용이한 곳에 작게라도 많이 지어질 필요가 있다.
전문사서직의 법정 기준 도달률은 100%에 이르도록 해야하며, 도서구입비도 국고를 통해 마련되어야 한다. 도서관은 국가가 제공해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화서비스다.
지식기반의 시대로 접어드는 21세기에 전 국민이 정보와 지식에 대한 고른 접근권을 갖게 하는 것은 가장 확실한 투자이기도 하다.

살림의 문화를 위한 제도적 모색-관람하는 예술이 아닌 행하는 예술
민주주의 국가에서 문화정책의 목표는 문화의 민주화가 되어야 한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재능을 인정받은 몇몇 사람들이 직업적인 예술가로 살아남아 행하는 예술을 종종 관람하는 것으로 만족하거나 그 마저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산성의 논리를 벗어나 단지 기쁨을 위해 일상 속에서 행하는 창작은 자아를 성장시키고 확대시킨다.
문화의 민주화라는 목표가 궁극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직접적인 체험의 예술이 소득과 사는 곳에 상관없이 가능할 수 있어야 한다.

살림의 문화를 위한 제도적 모색-문화휴가제
문화를 삶 속에 끌어들이는 일은 삶 속에서 창조적인 휴식이 우리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세계 최고의 노동시간에 비해 하위에 머무는 노동생산성은 우리의 일하는 방식에 무언가 큰 오류가 있음을 시사한다.
더욱이 삶을 창의적으로 만들고 문화를 즐기는 일은 오랜 훈련과 습관으로 가능하기에, 인생의 말년에 찾아오는 기나긴 휴식의 시간에도 충분한 문화 향유를 영위하지 못 할 수도 있다.
때문에 전 국민에게 연간 1주일의 문화휴가를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문화가 깊숙하게 우리의 삶에 스며들 때 사람들의 사는 풍경은 더 알록달록해지고 풍요로워 질 것이다.

‘일중독’ 한국사회
한국사회는 ‘일중독’ 사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OECD 발표에 따르면, 2007년 현재 우리나라의 연간 노동시간은 2,261시간으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국가 연간 노동시간 순위
한국 2,261 1위
폴란드 1,953 2위
슬로바키아 1,947 3위
멕시코 1,933 4위
체코 1,914 5위
일본 1,850 6위
이태리 1,824 7위
아이슬란드 1,822 8위
미국 1,798 9위
그리스 1,783 10위
헝가리 1,780 11위
* 출처: OECD Employment Outlook(2008). 민주노총 정책보고서 ‘좋은 일자리’ 지수 OECD 국제비교 (2008)에서 재인용.

이러한 ‘일중독’은 야근, 특근 등의 직업문화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생존경쟁이 치열해진 요즘에는 일할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어두어야 한다는 부담도 강하다.
더욱이 회식이나 잦은 술자리로 인해 주중에는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도 힘들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삶의 질 만족도가 매우 낮고, 과로 및 산재사망 비율이 매우 높은 것은 위와 같은 ‘일중독’ 현상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우리도 문화여가 생활을 향유하고 싶다! 노인층의 문화생활 문제
평생을 가족과 일터를 위해 헌신하고 충분한 문화여가 생활을 누려야 할 노인 세대가 문화여가 생활로 배제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2010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60세 이상의 노인은 ‘소일거리가 없다’는 것을 건강과 경제문제 다음의 문제로 꼽았다.
65~69세의 37.2%가, 70~79세의 27.3%가 TV시청으로 소일한다고 응답하였다.
60~64세의 주당 평균 TV 시청시간은 27.3시간이었고,
65세 이상의 주당 평균 TV 시청시간은 28.3시간이었다.
반면 지난 1년간 한 번이라도 공연ㆍ전시ㆍ극장ㆍ스포츠 관람 경험이 있다는 대답은 60~64세 노인 가운데 14.4%, 65세 이상에서는 11.4%로 20~29세의 81.8%, 15~19세가 79.4%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를 보였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많은 노인들이 풍부한 문화생활을 만끽하지 못 한 채 오직 TV 시청으로 소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14장 글로벌 거버넌스와 민주주의


세계화에 대한 논쟁
세계화는 세계의 모든 개인, 집단, 사회가 하나의 지구 안에서 서로 긴밀하게 상호작용을 하는 사회적 과정을 가리킨다.
세계화가 거버넌스의 토대인 국민국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매우 다른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세계화 찬성론자는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경제가 성장해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반면 세계화 비판론자는 세계화가 개별 국가 차원에서 운영되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토대를 근본적으로 약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들은 실업의 증가와 저임금 노동자의 양산을 우려한다. 전자의 입장을 대표하는 조직이 세계경제포럼이라면, 후자의 입장을 대표하는 조직은 세계사회포럼이다.

세계화와 민주주의
세계 경제가 통합되면서 지속적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인권과 민주주의가 신장된 것은 사실이다.
1970년에 민주적 정치제도를 선택한 국가는 서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30여 국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세계 인구의 약 60%에 달하는 89개국이 민주적 제도를 발전시키고 있다.
하지만 민주적 거버넌스가 모든 나라에 정착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 국가의 거버넌스는 풀뿌리 차원의 참여, 깊이있는 심의, 행정부의 책임성, 투명성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 하다.
또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옹호하는 ‘워싱턴 합의’ 하에서 통제받지 않는 자유시장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경제적 혼란과 불평등 심화의 원인이 되어가고 있다.
이처럼 세계화 과정은 민주주의에 새로운 기회를 주는 반면 이전에 경험하지 못 했던 커다란 위험을 만들기도 한다.

세계화와 국민국가
18세기 이후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거버넌스는 국민국가를 통해 형성되었다.
국민국가의 핵심 요소는 주권이다. 주권이란 한 국가가 일정한 영토에서 다른 국가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되어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권력을 말하며,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해 최초로 명시되었다.
그런데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베스트팔렌 주권 체제는 약화되었다. 세계경제의 통합으로 각국 정부는 초국적 기업의 활동과 금융 거래를 통제하는 수단을 포기했다.
개별 정부의 무역, 산업, 금융 정책은 다른 국가와의 협상을 거쳐 결정해야 한다. 또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의 사고와 문화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은 거의 사라졌다.

국민국가와 민주주의의 미래
세계화의 급속한 진행으로 기업의 초국적 활동이 확대되고 국민경제가 점차 국제시장의 논리에 종속되기 시작하면서 시장의 규모와 범위는 급속하게 커진 반면 경제에 개입하는 정부의 역량은 감소되었다.
케인스 경제학과 복지국가, 노조·기업·정부가 서로 협력하여 경제·사회 정책을 결정하는 코포라티즘을 통해 형성된 ‘합의의 정치’의 토대는 심각하게 약화되었다.
때문에 국민국가의 미래를 둘러싼 논쟁이 제기되었다. 국가중심적 현실주의 이론은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주권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주장한 반면 지구주의 이론은 국가 자체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국가의 주권이 상당한 정도 제한되기도 했지만, 국가의 예산, 규모, 공무원의 수와 활동 영역, 사회를 감시하는 능력, 공공여론을 주도하는 능력은 계속 증가했다.

글로벌 거버넌스-초국적 거버넌스
한편,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국민국가가 주도하던 거버넌스의 일부 기능은 초국적 기구로 옮겨갔다. 1970년대 이후 초국적 기구의 수, 규모, 예산, 활동범위는 급속하게 확대되었다.
특히 거시경제정책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과 같은 기구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그리고 유럽연합과 유엔 등도 글로벌 거버넌스의 주체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글로벌 거버넌스-기업의 거버넌스
세계화에 따른 초국적 기업의 영향력 증대 역시 글로벌 거버넌스에 중요한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제 일부 초국적 기업의 자산과 연간 매출액은 개별 국가의 국내총생산보다 훨씬 더 많을 정도이다.
초국적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조세와 부동산의 특혜를 제공하는 국가도 있다. 그러나 초국적 기업을 뒷받침하는 지구적 금융시장은 규제 장치가 가장 발전하지 못 한 분야이기도 하다.
이렇게 적절한 규제 구조를 갖추지 않은 금융시장 자유화는 경제적 불안정을 심화시킬 수 있다.

글로벌 거버넌스-시민사회의 거버넌스
1990년대 이후 시민사회조직도 급격히 성장했다. 국제적 시민사회 조직은 1981년 13,000개에서 2001년 47,000개로 증가했다. 이러한 시민사회조직들은 정책을 제시하고 정책결정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조직은 다양한 전략을 선택한다. 어떤 시민사회조직은 정부와 협력하기도 하지만, 어떤 조직은 때로 정부와 거리를 두며 비협조적 태도를 유지한다.

글로벌 거버넌스의 주요 과제-초국적 기구의 역할
이제 국민국가가 주도하는 거버넌스는 초국적 기구, 초국적 기업 및 시민사회조직이 참여하는 다층적, 복합적 거버넌스로 변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구적 거버넌스의 민주적 성격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먼저 초국적 기구의 경우, 운영 과정에서 민주적 원리가 제대로 반영되고 있지 못 하다.
유엔 안보리,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의 운영은 몇몇 강대국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또한 노동표준, 사회적 권리, 남녀평등, 금융시장, 군비축소 등의 분야에서 초국적 기구의 거버넌스는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초국적 기구는 적은 인원과 예산으로 효과적인 집행력을 갖지 못 하는 경우가 많고 강제수단이 없어 효과도 제한적이다.
그러나 세계적 차원에서 빈곤, 발전, 환경, 마약, 범죄, 테러리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민주적 지구체계의 발전이 필요하다.

글로벌 거버넌스의 주요 과제-기업의 사회적 역할
지구화되는 세계에서 민주주의에 가장 위협을 주는 심각한 문제는 거버넌스를 지배하는 시장의 절대적 우위이다.
정책결정과정에서 부유층과 기업의 영향력은 커진 반면 대다수 사람들은 배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노동표준, 사회적 권리, 환경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주주 뿐 아니라 소비자와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배려하는 책임 자본주의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
특히 2001년 엔론, 월드컴 등 미국 대기업의 회계부정 및 파산사태를 계기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국제협력이 시작되었다.
유엔과 유엔 환경계획은 각기 글로벌 컴팩트, 글로벌 리포팅 이니셔티브(GRI) 등의 공통규범을 제정하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은 법률적 구속력을 가지고 있지 못 하기 때문에 기업의 자발적 수용과 준수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 효과가 제한적이다.
초국적 기구가 제정한 환경과 노동의 보호 기준을 실행하기 위해 국제적 협력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글로벌 거버넌스의 주요 과제-지구시민사회
세계화 과정에서 지구시민사회의 생성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 중 하나로 손꼽힌다. 지구적 시민사회조직들은 국제사회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세계의 초강대국과 거대한 초국적기업도 국제법의 규정을 준수하도록 공개적 압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구시민사회가 지구체계를 민주적으로 개혁할 만큼 충분한 수준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초국적 기업에 비해 여전히 시민사회조직은 충분한 세계화를 달성하지 못 하였다.
대다수 인류는 소득과 교육수준이 낮아 시민사회조직에 참여하기 어려운 조건이며, 대다수 시민사회조직의 성원은 유럽과 북미의 교육받은 백인 중산층이다.
발전도상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경우는 아주 적다. 글로벌 거버넌스의 민주적 성격을 강화하기 위해 풀뿌리 차원의 시민사회조직에 광범위한 대중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지구적 민주주의 모델을 향하여
글로벌 거버넌스를 글로벌 민주주의로 확산하고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유엔이나 국제 사법재판소 같은 국제기구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초국적 기업이나 금융자본을 규제하는 장치는 아직까지 매우 취약하다. 그리고 세계적 차원에서 민주적 거버넌스를 강화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중요한 정책결정은 충분한 대표성을 갖지 못 하는 소수 엘리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미래의 지구적 민주주의는 시민적 자유, 분권화, 참여민주주의가 확대된 형태로 발전해야 한다. 또한 다른 문화, 민족, 인종에 대한 관용과 함께 미래 세대를 위한 생태적 지속가능성도 추구해야 한다.

* 국제결제은행=약칭 BIS(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 1930년 스웨스 바젤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12개국의 공동출자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배상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최근에는 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 결성된 각종 통화협정, 지급협정에 대한 실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멕시코, 브라질 등 채무 과다 국가에도 자금 융자를 하는 등 국제적인 신용질서 유지를 위한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의 장기적인 안정화와 상업은행의 건전성과 형평성을 목적으로 은행자본규제에 관한 국제적 통일기준(BIS 자기자본비율)을 설정하였다.
* 그린피스=1971년 12명의 환경보호운동가들이 캐나다 밴쿠버에 모여 결성한 국제 환경보호단체이다.
핵실험 반대, 멸종위기에 처한 고래 등 야생동물 보호, 방사성 폐기물 해양투기 저지운동 등 다양한 환경보호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2008년 현재 41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으며, 전세계 280만 명의 지지자들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다. 군축을 통한 평화운동 및 지속가능한 농업운동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경영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크게 네 가지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순서대로 경제적 책임, 법적 책임, 윤리적 책임, 자선적 책임이다.
경제적 책임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여 적정한 가격에 판매하고, 안정적으로 이윤을 벌어들여 투자자들에게 보상을 하는 기초적인 책임이다.
법적 책임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법의 틀 속에서 경영을 해야하는 의무적이고 기본적인 책임이다. 그리고 윤리적 책임과 자선적 책임이 상위적인 개념으로 존재한다.
기업의 비중이 커지고 영향력이 강해짐에 따라 윤리적 책임과 자선적 책임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도 늘어나고 있다.
한편 조지아 대학의 캐롤 교수에 의하면, 윤리경영은 '합법의 테두리를 넘어 입법의 취지나 사회통념까지 고려한 경영방식, 법적 강제성을 띠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가 기대하고 요구하는 바를 충족하는 경영형태'로 정의된다.
윤리경영의 반대말은 비윤리경영이다. 비윤리경영은 기업윤리와 법 제도 모두를 이윤추구의 장애물로 인식하는 관점이다. 그리고 윤리경영과 비윤리경영의 사이에 초윤리경영이 존재한다.
초윤리경영이란 법이 곧 윤리로서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괜찮다는 입장이다.
'윤리경영'이 기업의 이념으로 처음 명시된 건 1943년, 세계적인 의약품 및 생활용품 기업 '존슨 앤 존슨'의 회장 로버트 존슨에 의해서다.
로버트 존슨은 '존슨 앤 존슨'의 사훈이 된 우리의 신조(Our Credo)를 제정하여 소비자, 종업원, 지역사회, 주주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하였다.
'우리의 신조'의 진가는 1982년에 빛을 발했다. 당시 연 매출액의 7%, 이익의 17%를 차지하던 존슨 앤 존슨의 주력상품 '타이레놀' 캡슐을 복용한 7명의 시카고 시민이 갑자기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조사결과 시안화물이라는 독극물이 타이레놀 캡슐에 들어 있었는데, 누군가 고의로 시중에 판매중인 타이레놀 캡슐에 독극물을 투여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러나 존슨 앤 존슨은 조사가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이 사건에 신속히 대처, 즉시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고 대대적으로 경보광고를 게재하였다.
그리고 시카고 지역의 제품을 수거하라는 미국식품의약국(FDA)의 권고를 넘어 미국 전역에서 2억 4천만 달러를 들여 1억달러 어치의 타이레놀 전량을 수거, 폐기하였다.
혹시 모를 인명사고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결과 타이레놀의 시장점유율은 다음해 7%까지 떨어졌으나 사건해결 후 3년만에 제자리를 회복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비슷한 사건이 재발하자 1억 5천만 달러를 들여 타이레놀을 캡슐형태에서 알약형태로 교체하였다.
엄청난 비용이 소모되었지만 존슨 앤 존슨은 축적된 소비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연간 15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는 세계적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존슨 앤 존슨과는 정반대의 경우로, 비윤리경영의 대표적인 예는 유키지루시(雪印) 유업이다. 유키지루시 유업은 연 매출 5,600억엔의 종합식품 그룹으로 일본 최대의 유제품 업체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0년 6월, '유키지루시 저지방 우유'를 먹은 145명의 오사카 주민이 설사와 구토 증상을 보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오사카 시 당국은 우유제품의 회수와 판매자제를 권고하였다.
그러나 유키지루시 유업은 도리어 기자회견장에서 "행정대응에도 문제가 있다...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잘못을 인정할 단계를 아니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피해자를 개별적으로 접촉하여 보상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하려 하였다.
하지만 이후 식중독 환자가 급증하자 행정당국의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결과 유키지루시 오사카 공장의 제조라인에서 황색 포도상구균과 셀레우스균이 발견되었고 평소 원유저장 탱크의 파이프 밸브를 제대로 세정하지 않은 것이 그 원인으로 밝혀졌다.
유키지루시 오사카 공장장은 그제서야 공식적으로 잘못을 시인하였으나 오히려 유키지루시의 사장은 "나는 자고 있지 않았다"며 기자회견장을 박차고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오사카 공장이 사건발생 뒤에도 사용이 금지된 저지방우유를 다시 개봉하여 재활용한 사실이 밝혀졌고 분노한 여론에 못 이겨 결국 유키지루시의 오사카 공장은 문을 닫아야 했다.
그리고 자회사인 유키지루시 식품에서 쇠고기 원산지를 속여 판 사건까지 겹쳐 유키지루시 식품은 결국 파산하고 모기업인 유키지루시 유업도 기업 이미지에 심대한타격을 입고 말았다.
이시카와 데쓰로 사장은 결국 퇴진하였으며, 식중독 환자 1명이 숨진 것에 대해 과실치사의 혐의로 기소되고 말았다.
존슨 앤 존슨과 유키지루시의 대조를 통해 윤리경영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사건 초기부터 엄정하게 윤리경영의 원칙을 적용한 존슨 앤 존슨은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해 재기에 성공한 반면, 유키지루시는 법적하자만 없으면 문제에 될게 없다는 초윤리경영의 자세를 견지하다 비윤리경영의 실태가 드러나 커다란 타격을 받고 안타까운 인명만 잃게 한 것이다.

폴 크루그먼이 바라본 미국 사회의 불평등 세계화는 찬사의 대상인 동시에 격렬한 비판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화가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2008년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그의 저서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원제 The Consciencs of a Liberal)에서 "오늘날 계층간 수입의 불평등은 1920년대만큼이나 크며, 정치적인 양극화도 이렇게 심했던 적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1940년대 이후 1970년대까지 미국은 상대적으로 평등했던 '중산층 중심의 사회'를 이루었는데, 이는 루즈벨트가 추진한 '뉴딜정책'으로 짧은 기간동안 커다란 변화, 즉 대압착(Great Compression)이 이루어진 결과이다.
크루그먼은 불평등의 감소에 있어 시장보다는 정치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썼다.
그러나 1980년대 레이건 집권 이후 미국사회의 불평등은 급격하게 심화되었다.
"1973년 이후 일반 노동자 한 명이 한 시간당 생산해 내는 상품의 가치는 물가상승을 고려하고서도 거의 50% 정도 향상"되었지만 "현재의 35~44세 남성의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소득을 비교해 보면, 1973년의 소득이 현재보다 12%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1973~2005년 사이에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가구별 소득의 중앙값"의 누적상승률은 약 16%였지만 여성노동을 비롯해 가구 전체의 노동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 크루그먼의 분석이다.
크루그먼은 "평균소득은 상당히 증가했지만, 이는 주로 소수집단의 소득이 엄청나게 커졌기 때문"이라고 썼다.
그러나 크루그먼은 일반적인 통념과는 다르게 이러한 불평등이 기술발전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무언가 다른 제도적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놀랍게도 기술발전이 소득 불균형을 초래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직접적 증거는 거의 없었다"는게 크루그먼의 주장이다.
크루그먼은 이렇게 쓰고 있다. "일반적으로 어마어마한 소득을 벌어들이는 사람들은 고학력자들이지만, 그들이 취한 이득이 전체 고학력자의 이득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CEO들이나 학교 선생님들은 모두 석사학위를 소지한 경우가 많지만 학교 선생님들의 소득은 1973년 이후 크게 증가하지 않은 반면, CEO들의 소득은 1970년대 일반 노동자들의 30배에서 현재는 300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그는 "무분별하게 오른 CEO들의 소득" 역시 경제적인 변화를 반영하기보다 사회적, 정치적 환경의 변화를 반영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러한 변화는 뉴딜시대와 마찬가지로 주되게 '정치'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크루그먼의 말이다.
노조의 몰락으로 견제세력이 사라지고, 공화당의 우경화로 보수주의 운동이 대세를 점하게 된 것이 변화의 주된 원인이라는 것이다.
크루그먼은 점증하는 불평등에 대응해 국민의료보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자료를 인용하며 "미국은 일인당 의료비용으로 캐나다나 프랑스, 그리고 독일의 거의 두 배, 그리고 영국의 2.5배나 지불했지만 기대수명은 가장 짧다"고 썼다.
"세계보건기구는 경쟁력 측면에서 미국의 의료체계를 37위로 평가"했다.
크루그먼은 불평등의 심화가 불러오는 파괴적인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많은 미국인들이 세계 유수의 호텔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생겨나는 하루 1만 1,000달러짜리 호텔 스위트룸에 묵지 못한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수백만의 중산층 가정이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실제 형편보다 무리해서 집을 사고, 갚을 수 있는 능력보다 많은 빚을 지는 것은 큰 문제다.
그리고 불균형이 심해지면서 일류학군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부근의 집값은 점점 더 오르는 추세다"
2005년까지 미국에서 매년 파산을 선고하는 가정은 1980년대에 비해 다섯배나 늘어났다.
"이러한 파산의 급증은 사람들이 능력도 없으면서 사치를 부리기 위해 너무 많은 지출을 한다는 도덕적인 비판"을 낳았지만 실제 "빚이 늘어난 이유는 주로 집을 장만하기 위해 더 많은 지출을 하기 때문이며 이는 좋은 학군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심하기 때문"이다.
그는 프랑스와 미국을 비교하였다.
"당신이 인생에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거나 당신의삶 전부가 어려웠다면 미국인보다는 프랑스인인 것이 분명히 나을 것이다
...반대로 당신의 삶이 아주 잘 풀린다면 프랑스인일 경우 더 불리하다
...프랑스는 시장영역 밖에서의 정책이광범위하게 적용되어 부유한 사람들을 괴롭혀 가난한 사람들을 도움으로써 불평등을 줄인다" 그는 프랑스가 비효율적이라는 편견을 반박했다.
"프랑스의 일인당 국내총생산은 미국의 74%밖에 안 된다...그러나...이는 고용된 인구가 더 적기 때문이다. 프랑스 노동자 일인당GDP는 미국보다 10% 낮을 뿐이다.
그리고 노동자 일인당 GDP의 차이는 전적으로 프랑스 노동자들의 휴일이 더 많기 때문이다. 연평균 프랑스 노동자들의 근무시간은 미국 노동자들의 86%에 해당한다.
시간당 노동자의 생산성은 미국보다 프랑스가 약간 높은 듯 하다...일단 장년층이 되면...프랑스인의 취업률도 미국과 같다"
세계화가 부의 축적에는 상당한 기여를 했지만, 동시에 부의 편중을 불러와 정치적 양극화를 낳았고 이는 다시 불평등의 심화를 불러오고 있다는 것이 크루그먼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이다.

아담 스미스는 자유방임만으로 사회발전과 풍요가 달성될 수 있다고 믿었는가?
아담 스미스는 ‘자유방임주의’의 기초를 놓은 경제학자로 이름이 높다. 그러나 그가 이기심만을 예찬한 것은 아니다.
‘국부론’에 앞서 쓰여진 ‘도덕감정론’에서 그는 양심이라는 공정한 관람자(Impartial Spectator)가 인간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적 발전과 국제빈곤에 있어서도 아담 스미스가 말한 ‘양심’에 기초한 이타심이 좀 더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자아 사랑의 강한 충동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자애의 부드러운 힘도 아니고, 자연이 인간의 마음에 켜놓은 박애의 불꽃도 아니다.
이때 발휘되는 것은 보다 강한 힘, 보다 강렬한 동기이다. 그것은 이성과 원칙과 양심이며, 마음속에 거주하고 있는 자이자 내부의 사람이며, 우리 행동에 대한 재판관이자 중재자이다.
타인의 행복에 영향을 주는 일을 할 때마다 우리 내부의 가장 몰염치한 열정이 깜짝 놀라도록 큰 목소리로 우리 자신이 수많은 사람 중에 하나에 불과하며 어떤 면에서나 다른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소리치는 이는 바로 내부의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가 염치없이 무턱대고 자신을 내세운다면, 우리 자신이 분개와 혐오와 저주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도 바로 내부의 사람이다.
이 내부의 사람이 있기에, 우리 자신이, 그리고 자신에 관련된 모든 것이 사실은 사소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고, 또 이같이 불편부당한 관찰자의 눈을 통해서만 잘못된 자기 사랑의 표현을 고칠 수 있다.
바로 이 내부의 사람이 우리에게 관용의 미덕과 불의의 왜곡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타인의 더 큰
이익을 위해 우리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옳다는 것과, 우리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끼치는 것이 잘못임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우리가 이와 같이 신성한 덕행을 베풀게 하는 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도 인류에 대한 사랑도 아니다. 이와 같은 경우에 일반적으로 발휘되는 것은, 이보다도 확고한 사랑이며 강력한 애착이다.
즉 명예와 고귀함, 숭고함과 존엄성, 그리고 우리 자신의 품성의 우수성 등에 대한 사랑이다”
출처=로버트 하일브로너. '고전으로 읽는 경제사상' (1996; 2001). 민음사.

코포라티즘을 설명하는 관점들
코포라티즘(사회적 합의주의)을 분석하는 이론적 틀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포드식 대량생산체제와 완전고용을 중시하는 케인즈주의 이론이 코포라티즘을 가능하게 하였다는 관점이다.
이 이론은 주로 1960~70년대의 초기 코포라티즘을 분석하는데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초기의 코포라티즘은 임금억제와 완전고용을 교환하는 정책을 지향하였다.
따라서 노동조합과 사용자의 단체가 얼마나 개별 사업장을 통제할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했다.
높은 노동조합 조직율과 중앙집중화된 노사단체, 이들 단체들의 강력한 리더십, 노동조합과 사회민주주의 정당과의 연대가 대표성과 통제력을 보장하는 중요한 환경으로 제기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세계화가 본격화하면서 초기의 코포라티즘은 힘을 잃기 시작했다. 다국적 기업이 성장하고 자본이동이 자유로워진 상황에서 국가 단위의 협약이 제대로 기능하기 힘들다는 비판이 일었다.
두 번째 관점은 1990년대 이후 네덜란드, 아일랜드, 핀란드 등 소규모 개방경제를 가진 나라들에서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으로 채택된 코포라티즘을 강조하며 각 경제주체의 ‘전략적 선택’에 주목한다.
1990년대 이후 세계경제는 다품종 소량생산의 무한경쟁체제로 진입하였다. 이에 따라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국가의 기능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0년대의 사회적 조합주의의 특징은 절차와 제도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구조조정, 사회보장제도, 비정규직, 근로시간에 관한 광범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정부 정책결정에 노사가 참여하고, 결정사항은 법과 제도로 확립되어 정부가 이행을 감독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단위 사업장의 동태보다는 합의과정에서의 지지 확보가 중요하게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각 주체들은 사회적 협약에 참가하는 것이 참가하지 않는 것보다 이익이 된다고 판단할 때 코포라티즘을 받아들이는 전략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다.
초기의 코포라티즘의 환경적인 조건이었던 높은 노동조합 조직율과 노사단체의 대표성보다 이해타산적 성격이 강한 주관적인 선택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네덜란드의 경우 노조 조직률은 26%에 불과하다.
마지막 세 번째 이론은 통합모형이론이다. 통합모형이론은 전략적 선택을 중시해도 환경적인 요인을 간과할 수는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앞서 언급한 네덜란드, 핀란드의 경우 코포라티즘의 결과가 만족스러웠지만 멕시코의 경우는 실패작으로 평가받는다.
왜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것일까? 환경이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는 없겠지만 전략적 선택의 과정에 있어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통합모형이론에 따르면, 소규모 개방경제체제에서는 세계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외부의 환경 변화에 민감하다.
따라서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 노사 간의 합의가 중요해진다. 그 밖에 당사자들이 얼마나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오랜 세월동안 축적된 노사 간의 신뢰가 존재하는지 여부도 중요하다.
노조와 사용자 단체의 성향도 일정한 작용을 한다.


제15장 세계시민의 연대와 공동행동


국제규범이란 무엇이고 왜 필요한가
근대 국제질서의 가장 큰 특징이자 한계점은 질서가 주권국가의 절대적이고 신성불가침한 주권 위에 정초되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국가 주권이 어떠한 절차에 의해서 누구에게 양도되어야 하고 그 양도된 주권을 통제하고 행사하기 위해서는 어떤 원칙에 의해서 어떤 장치가 필요한가에 대한 보다 복잡한 문제가 제기된다.
이를 위해서 주권 국가는 주권성을 근본적으로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자신의 권한을 양도하는 원칙인 국제적인 규범 혹은 제도를 창출한다.
국제 규범 혹은 제도는 국가가 국제무대에서 행동하는 것을 지시하고 제약하고 또 어떤 기대를 형성하는 규범 혹은 원칙을 의미한다.
때에 따라서 국제질서는 이 규범을 강제하고 감시하기 위한 기구를 만들기도 한다. 규범에는 ‘공유된 도덕적 평가’가 포함되어 있다.

국제규범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국제규범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세 단계로 정리될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규범이 제안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규범을 제기하는 주창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두 번째 단계는 규범에 대한 동의가 확산되면서 제도화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국가와 국제기구가 전면에 등장한다.
국가들이 새로운 규범에 동의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동기는 통치의 정당성의 확보이다.
마지막 단계는 규범이 제도화되고 하나의 가치이자 태도로 완전히 내면화되는 단계이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조디 윌리엄스가 이끈 대인지뢰금지협약은 국제규범이 제기되고 정착되는 과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이다.
규범은 국가들 사이의 질서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 의해서 국가와 기업의 행동을 감시하고 비판하고 강제하는 활동의 도덕적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1990년대 유엔을 통한 국제규범의 만개
1990년대에는 유엔을 중심으로 국제규범을 소개하고 정착시키기 위한 국제적 활동이 만개하였다.
2차세계대전 이후 안보를 중심으로 한 다자간 외교의 기본적인 포럼이며 나아가 새로운 국제규범을 정초하고 저개발국들의 사회경제적 발전을 돕는 국제기구로 출범한 유엔은 사실 커다란 한계를 안고 있었다.
첫째는 세계경제질서를 다루는 금융과 개발이 유엔의 바깥에 위치한 IMF와 세계은행에서 처리되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냉전과 탈식민화에 따라 유엔을 주도하였던 미국이 스스로 유엔에서 발을 빼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에 냉전이 종식되면서 유엔의 역할은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냉전의 종식과 함께 지구는 명실상부하게 하나로 통합되었으며 가속한 세계화에 따라 전통적인 안보와 평화의 이슈를 넘어 여러 가지 새로운 지구적 이슈들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인권 부문에서는 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회의가 개최되었고, 여성 부문에서는 1995년 베이징에서 세계여성회의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유엔이 이렇게 새로운 규범을 생산하는데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시민사회의 참여를 성공적으로 끌어들인데 있다.
유엔은 ‘국제평화와 복리의 실질적인 보장을 위하여 NGO와 긴밀히 협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위기에 처한 국제규범과 아래로부터의 저항
그러나 유엔이 새로운 다자주의를 표방하면서 야심차게 진행하였던 새로운 국제질서의 창출은 2000년대 초부터 위기에 부딪히고 만다.
2000년 세계 187개국의 정상과 정부대표들이 모여 합의한, 절대빈곤과 기아퇴치의 내용을 담고 있는 새천년개발계획(MDGs)은 선진국들의 미온적 지원과 미국 부시 행정부의 반대로 좌초될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보편적 규범으로 자리잡은 인권과 환경 역시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비롯하여 인도의 카스트 문제 등은 개별 국가의 반발로 별 다른 진전을 보지 못 하였다.
이처럼 유엔이 주도한 새로운 국제질서의 창출이 어려움을 겪는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첫 번째는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정책이 9.11 이후 더욱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로 2003년 이라크 침공은 유엔의 승인없이 미국과 소수의 동맹국에 의해 독단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테러리즘과의 전쟁은 각국에서 반테러법안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정지하거나 훼손하는 법안을 도입하는 것을 정당화했다.
두 번째는 국제규범이 내면화되지 못 하고 오히려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미국 뿐 아니라 중국도 국제규범을 주권에 대한 손상이라는 이름으로 거부하여 예외주의의 일반화를 초래하였다.
때문에 국제규범의 기초를 보편적으로 세우려던 국제회의들은 대부분 자국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정치적 논쟁의 장으로 변질되는 일이 연이어 발생하였다.
세 번째는 세계화의 진전과 이에 따른 위기의 심화이다. 냉전의 종식 이후 세계경제는 완전히 유엔 바깥 영역의 일이 되어 버렸다.
예를 들어 세계무역기구(WTO)는 유엔과 아무런 공식적 관계가 없는 독자적 조직이다. 안보와 경제의 방향을 조정하는 G8과 같은 회의 역시 유엔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진다.
때문에 유엔은 비싼 돈을 주고 말만 늘어놓는 관료조직 혹은 사교클럽이라는 비난을 미국과 제3세계 양쪽 모두로부터 받게 되었다.
또한 초국적기업과 같이 국제질서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행위자가 등장하였다. 이들은 국제규범과는 거의 무관하게 책임을 지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
나아가 세계화는 국제질서의 일관성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예를 들어 노동정책과 관련하여 국제노동기구(ILO)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합의되고 결정되는 사안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있어도 이를 중재할 방법이 없다.
이러한 요인들과 함께 유엔 자체가 가지고 있는 심각한 결함이 문제를 확대시키기고 있다.
무엇보다 시급한 안전보장이사회를 개혁하는 문제는 국제정치에 발목잡혀 있으며 유엔의 방만하고 방대한 조직운영은 미국이 고의로 분납금을 체불하는 핑계가 되었다.
국제규범을 소개하고 기초를 세우는데 유엔의 파트너로서 주도적 역할을 해왔던 시민사회 역시 유엔 바깥에서 세계화에 저항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포럼을 시작하는 등 유엔과 거리를 두고 있다.

새로운 질서를 향하여
국제질서를 정초하는 새로운 규범은 누구에 의해 어떻게 주도되어야 하는가? 이에 대한 입장으로는
첫 번째, 유엔에 보다 큰 희망을 가지면서 유엔을 통해 글로벌 거버넌스에 국가적 성격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국가적 성격의 강화는 주권국가의 강화가 아니라 공공재에 대한 공공적 통제와 분배, 그리고 민주적 절차와 시민들의 참여 등 근대 민주국가의 특징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두 번째, 유엔을 통한 개혁은 환상이라고 일축하는 입장이 있다. 이들은 지구적으로 중앙화된 현재의 거버넌스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면서 탈중심화할 것을 주장한다.
세계화에 따라 지역과 국가의 주권성이 훼손되면서 각국 국민들이 자기 스스로 개발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이 손상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비교우위가 아니라 상호보완성의 원칙에 의해 무역이 이루어져야 하며, 의료와 빈곤에서는 보다 공공적인 방향에서의 국제협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국제질서는 여전히 시장에 의해 주도되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시장근본주의자들의 입장이 있다.
이들은 2000년 대에 들어와 생긴 혼란이 오히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비판한다.
따라서 이들은 국제무역과 경제질서에 유엔이 개입하지 말고 완전히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중에서 향후 국제질서의 방향이 어느 쪽의 주장대로 흘러가게 될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낙관적인 것은 이 과정 속에서 지구적 시민사회의 유대감이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증대하였다는 사실이다.
대인지뢰협약, 국제형사재판소 설치 및 2004년 동남아 쓰나미에 대한 지구적 모금, 공정무역과 친환경관광의 확대 등은 풀뿌리 차원에서 새로운 국제질서가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는 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