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UN


철학의 이해


출처 : 위키피디아 외



목차

개요
1. 철학의 어원
2. 철학의 대상
3. 동서양 철학의 역사
4. 철학의 분야 - 형이상학과 존재론
5. 철학의 분야 - 논리학과 인식론
6. 철학의 분야 - 윤리학과 미학
7. 결정론과 운명론
8. 합리론과 경험론, 관념론
9. 유물론과 불가지론
10. 구조주의와 실존주의



개요



1. 철학의 어원

철학(哲學, 고대 그리스어: φιλοσοφία, 영어: philosophy)은 존재, 지식, 가치, 이성, 인식 그리고 언어 등의 일반적이며 기본적인 대상의 실체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말을 프로타고라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철학적 방법이란 질문, 비판적 토론, 이성적 주장, 그리고 체계적 진술을 포함한다.

철학의 영어 명칭 'Philosophy'(필로소피)는 고대 희랍어 필레인(Φιλειν, 사랑하다)과 소피아(σοφία, 지혜)의 합성어로써 직역하면 '지혜를 사랑한다'이다.
이는 소크라테스가 처음 사용한 말로 훗날 'Philosophy'의 어원이 되었다. 그는 스스로 모든 것을 안다고 자처하는 소피스트에 대하여 자신은 지혜의 소유자가 아닌 무지자(無知者)로서 오직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동양에서 쓰는 표현인 철학은 19세기 말 일본의 니시 아마네(西周)가 처음으로 'Philosophy'를 '희철학(希哲學)'으로 일역하여 사용하였다. 이것이 나중에 줄어서 '철학'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이인재(李寅梓, 1870년∼1929년)가 1912년 《철학고변(哲學攷辨)》을 발간하면서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학문 그 자체를 뜻하였고 전통상으로는 세계와 인간과 사물과 현상의 가치와 궁극적인 뜻을 향한 본질적이고 총체적인 천착을 뜻했다.
이에 더하여 현대 철학은 철학에 기초한 사고인 전제나 문제 명확화, 개념 엄밀화, 명제 간 관계 명료화를 이용해 제 주제를 논하는 언어철학에 상당한 비중을 둔다.

고대 희랍어의 필로소피아(지혜에 대한 사랑)에서 유래하였는데, 여기서 지혜는 일상 생활에서의 실용하는 지식이 아닌 인간 자신과 그것을 둘러싼 세계를 관조하는 지식을 뜻한다.
이를테면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이 포함된다. 이런 일반 뜻으로서의 철학은 어느 문화권에나 오래 전부터 존재하여 왔다. 심지어 문자가 없는 사회에서도 세계를 향한 깊은 지혜는 발견된다.

동양의 경우 서구화 이후 철학은 대체로 고대 희랍 철학에서 시작하는 서양철학 일반을 지칭하기도 하나 철학 자체는 동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오늘날 철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학문으로는 윤리학, 정치학, 심리학, 역사학, 사회학 등이 있다.

앎, 즉 배움과 깨달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은 모든 학문의 출발점이라서 지식과 지혜를 사랑하는 삶의 태도로 철학을 정의한다면, 철학은 특정한 학문 일종이라기보다는 학문 일반에서 요구되는 기본 자세이면서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해야 한다.
실제로 '철학'은 일상 어법에서 '세계관', '사고방식'으로 약간 포괄하는 뜻으로 쓰인다.


2. 철학의 대상

철학은 다양한 학문과 함께 쓰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형이상학, 윤리학, 정치철학, 과학 철학, 언어철학, 사회철학, 논리학, 예술철학(미학) 등이 있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의 연구 대상은 자연이었다. 이것을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이라고 하는데 자연을 스스로 움직이는 대상으로 생각하였다.
기원전 5세기 후반, 즉 소크라테스 시기 철학은 인간의 혼을 연구 대상으로 하였으며, 특히 윤리상 문제에 관심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이전 철학과 반대되는 생각을 하였고 소크라테스 이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등장한다.
이들은 소크라테스 시기 철학의 대상과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 대상을 동시해 연구하여 철학 체계를 정립하였다.

한편 중세 철학에서 대상은 신이었다. 중세는 기독교 사상이 주류였기에 종교상 주관을 강하게 띠어 신을 향한 고찰이 결국 중심 문제였다.

근대 철학에서는 인간 지식의 근원이 주요 연구 대상이었으며 데카르트의 합리론과 로크의 경험론이 나오게 되었으며, 칸트는 합리론과 경험론을 종합하여 비판 철학을 완성하였다.

현대 철학은 언어 철학과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이 주요 쟁점이 되었다.
소쉬르가 처음 언어 철학을 언급한 뒤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등이 언어 철학을 발전시켰다.
구조주의는 언어 철학과 크게 연관 되어 생겨났으며 구조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포스트구조주의가 나타났다.
한편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 모더니즘을 비판하며 등장하였다.

철학상 문제의 특징
철학과 다른 학문을 구분하는 방법 중 하나는 철학이 제기하는 문제가 다른 학문의 그것과 구분되는 점을 살펴보는 것이다.
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수학과 물리학은 철학과 독립된 학문이 아니라 자연철학으로 인식되었다. 물론 여기서 당시에 통용된 물리학은 오늘날 자연과학에서 다루는 물리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철학의 고유한 문제들은 18세기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네 가지 물음으로 요약될 수 있다.
- 나는 무엇을 아는가?: 인식론의 주요 문제. 외부의 사물(物)은 어떻게 인식되는가? 외부 사물은 실재하는가?
인간의 지각 능력에 독립해서 존재하는 실재란 과연 있는가? 있다면 인간의 인식은 어떻게 "거기 밖(out there)"에 있는 실재에 대응할 수 있는가?
인식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하나의 인식이 참이 될 수 있는 기준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그리고 참인 인식에서 어떻게 지식을 획득할 수 있는가?
한편 형이상학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인간 대부분의 인식 방법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것이다. 신은 존재하는가? 우주의 시작과 끝은 존재하는가? 시간과 공간은 연속하는가?

-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윤리학 주요 문제. 옳고 그른 것들 사이 차이가 있는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찌 증명할 수 있는가?
실제 상황에서 우리는 옳고 그름에 향한 이론상 관념을 어떻게 적용하는가?

-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 예술철학(미학)의 주요 문제. 예술은 인간에게 어떤 쾌를 주는가? 아름다움(美)이란 무엇인가? 예술작품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 인간이란 무엇인가?: 사회철학의 주요 문제. 인간은 어떻게 해서 사회를 이루는가? 국가는 어떻게 성립되고 또 어떻게 운영되는가?


3. 동서양 철학의 역사


서양 철학의 역사
고대 그리스에서는 Philein(사랑하다)과 Sophia(知)라 하여 지식애(知識愛)나 학문 일반을 뜻했다.
그 종류로서는 가치철학, 실증철학, 도덕철학, 그 밖에 정치철학, 경제철학, 사회철학 등 열거한다면 한정이 없다.

역사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철학은 밀레토스 학파에 의해서 시작되었으며, 그것은 신화로부터의 학문의 독립이었다.
그리스에서는 철학이 '모든 학문의 여왕'이라고 불리어 거의 '학문'과 같은 뜻으로 쓰였다.
중세는 로마 가톨릭 교회 철학의 시대로 철학은 '신학의 시녀'가 되었다.
근세에 이르러 다양한 분야의 과학이 현저히 발전하면서 철학도 과학과 결부되어 발달했다. 또한 과학뿐만 아니라 예술 · 종교 그리고 일상생활에서의 여러 문제도 철학의 재료가 되어 철학은 더욱더 복잡해진다.

고대 그리스 철학 :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 플라톤의 철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중세 철학 : 교부철학, 스콜라 철학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 중세 논리철학
근대 철학 : 경험론, 합리론, 독일 관념론(칸트, 셸링, 피히테, 헤겔, 쇼펜하우어)
현대 철학 : 분석 철학, 언어철학, 현상학, 과학철학, 교육철학, 구조주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신포스트모더니즘


동양 철학
고대 희랍 철학자들에 의해 출발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여러 나라에서 발전된 철학적 전통들을 서양철학이라 한다면, 동양철학은 중국에서 비롯된 철학사상에 바탕을 둔 한국, 일본 등지의 철학을 일컬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인도의 고대철학을 동양철학의 범주에 넣기도 한다.
다만 이마누엘 칸트가 제시한 네 가지 물음을 만족하는 철학은 동양에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동양 사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중국 철학 : 노장 사상, 제자백가 사상, 공맹 사상, 성리학, 양명학, 고증학
- 선진 시대 : 노자 · 공자 · 양주 · 묵자 · 장자 · 혜자 · 맹자 · 순자 · 한비자
- 한대 : 동중서 · 왕충
- 위진 현학 : 왕필 · 혜강 · 곽상 · 열자
- 당-송대 : 한유 · 주돈이 · 소옹 · 장재 · 정이 · 정호 · 주희 · 육상산
- 명-청대 : 왕양명 · 왕용계 · 왕심재 · 하심은 · 나근계 · 이지 (1527년) · 유종주 · 황종희 · 왕부지 · 고염무

인도 철학 : 우파니샤드의 철학, 샹가의 철학, 고대 인도신화

한국 철학 : 퇴계학, 퇴계사상, 율곡사상, 실학사상, 도학, 태학


대표적인 철학자
- 고대 중국 철학자 : 공자 · 노자 · 장자 · 맹자
- 고대 그리스 철학자 : 소피스트 · 소크라테스 ·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 · 에피쿠로스 · 플로티노스 · 프로클로스
- 중세 철학자 : 아우구스티누스 · 토마스 아퀴나스 · 안셀무스 · 둔스 스코투스 · 피에르 아벨라르
- 르네상스(15 - 16세기)의 철학자 : 마르실리오 피치노 ·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 · 지오르다노 브루노 · 몽테뉴 · 니콜로 마키아벨리
- 17 - 18세기의 철학자 : 르네 데카르트 · 존 로크 · 토머스 홉스 · 조지 버클리 · 데이비드 흄 · 이마누엘 칸트 · 프리드리히 헤겔 · 프리드리히 셸링 · 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 ·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 장자크 루소
- 19세기의 철학자 :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 프리드리히 니체 · 쇠렌 키르케고르 · 카를 마르크스
- 20세기의 철학자 :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 에드문드 후설 · 고틀로프 프레게 · 버트런드 러셀 ·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 앙리 베르그송 · W.V.O. 콰인 · 마르틴 하이데거 · 모리스 메를로퐁티 · 장 폴 사르트르 · 장 피아제 · 시몬 베유 · 미셸 푸코 · 존 롤즈 · 자크 데리다 · 질 들뢰즈 · 펠릭스 가타리 · 안토니오 네그리 · 존 듀이 · 윌리엄 제임스 · 솔 크립키


4. 철학의 분야 - 형이상학과 존재론


형이상학
형이상학(形而上學 · Metaphysics)으로 번역되는 영어 낱말 "메타피직스(Metaphysics)"는 그리스어의 메타(meta: 뒤)와 피지카(physika: 자연학)의 결합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유래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에 따르면, 형이상학은 존재의 근본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라틴어 의 역어로 세계의 궁극적 근거를 연구하는 학문이며, 다른 정의로는, 형이상학은 사회의 근본 체계, 사회 현상, 모든 지식들 또는 인류 대다수에게 그보다 나은 지식일지라도, 그것들의 근원은 변증된 체계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개별적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철학이념이기도 하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의 근본을 연구하는 부문을 "제1철학"이라 하고 동식물 등을 연구하는 부문을 "자연학“(물리학)이라 했다.
그가 죽은 후 유고(遺稿)를 정리·편집함에 있어 제1철학에 관한 것이 "자연학" 뒤에 놓여 그때부터 메타피지카(metaphysika: 형이상학)라는 말이 쓰이게 되었다.

형이상학에 대한 동서양의 견해는 차이가 있다.
대표적인 차이로는 서양의 경우 인간은 형이상학적 진리들을 직접적인 경험으로 알 수 없다는 견해가 많은 반면, 동양의 경우 형이상학적 진리들을 직접적인 경험으로 알 수 있다는 견해가 많다.

서양의 형이상학
서양 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형이상학이라는 말은 여러 뜻으로 쓰이고 있다.
볼프는 철학을 표상력(表象力)에 의한 형이상학(이론)과 의욕력에 의한 실천철학(실천)으로 나누었다.
칸트가 형이상학이라 칭하는 것은 주로 볼프를 따르고 있으나 기존의 형이상학적 논의는 독단적이라 해서 배척했고, 경험할 수 없는 것을 논하는 기존의 형이상학과는 다르며 인식론에 기반을 둔 "학문으로서의 형이상학"을 정립하려고 하였다.

헤겔부터는 형이상학이 회복되어 사유(思惟)의 형식이 동시에 실재의 형식이라고 하는 형이상학적 논리가 주장되었다.
하이데거, 야스퍼스도 형이상학을 주장했으나 객체적인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자각존재의 의미이다.
변증법에서는 형이상학이 자기에게 대립하는 것을 고정시켜 생각한다고 주장한다

동양의 형이상학
서양에는 인간은 형이상학적 진리들을 직접적인 경험으로 알 수 없다는 선입견이 있다. 때문에 형이상학적 진리들은 사색 · 추론, 또는 근거 없는 신념 또는 신앙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또한 서양에서는 모든 사상 체계는 서로 간에 대립 또는 모순되어, 하나가 진실이라면 다른 하나는 거짓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동양에서는 인간은 직접적인 경험에 의해 형이상학적 진리들을 알 수 있다는 관점을 갖는다.
또한 형이상학적 진리들을 알기 위해 사색 · 추론 · 신념 또는 신앙에 의존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하나의 형이상학적 진리에 대해 여러 가지의 해석이 있을 수 있는데, 이들 여러 가지 해석은 대립하거나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라고 보며 각각의 해석은 다양한 종교적 · 사상적 · 철학적 배경 또는 경향성을 가진 여러 다른 사람들 중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직접적인 경험으로 이끔에 있어 특히 적합하다고 본다.

존재론
존재론(存在論)은 자연이나 정신 등의 특수한 존재자가 아닌, 모든 존재자가 존재자인 한 공통으로 지니는 것, 존재자가 존재자로서 지니는 근본적인 규정을 고찰하는, 형이상학의 한 부분이다.
근세 초기에 생긴 용어이지만 그 내용은 고대부터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1철학(형이상학)은 존재학(存在學)이며, 중세의 스콜라 철학은 이를 계승하고 있다.
근세에 들어와 볼프는 존재론을 형이상학의 한 부분이라 하여 특수존재를 논하는 여러 부문의 총론으로 하였다.
칸트는 존재론(형이상학)을 독단론이라 하여 부정했다. 그러나 칸트 이후 새로이 부활하였으며, 특히 헤겔의 존재론이 주목된다.
현대에 와서는 하르트만, 하이데거, 들뢰즈가 특수한 존재론을 주장하고 있다.


5. 철학의 분야 - 논리학과 인식론


논리학
논리학(論理學, 문화어: 론리학, logic)은 인간의 두뇌 활동과 관련하여 그 원리들을 분석하고 명제화하여 체계화하는 학문이다.
올바른 추론과 증명의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일반적으로는 논증의 학문이라고 정의되며, 판단·추리·개념 등과 관련하여 올바른 조리에 관한 과학이라고도 한다. 철학의 한 분과로 분류된다

논리학은 영어의 'Logic', 독일어의 'Logik', 프랑스어의 'Logique'에 해당되는 말이며, 이들은 모두 그리스어의 Logos에서 유래된 말들이다.
Logos는 Legein(센다, 모은다, 배열한다, 말한다)이라는 동사에서 전환된 명사로서, 말, 생각, 사유, 사고, 논리라는 뜻 이외에도 개념, 판단, 정의(定義), 이유, 이성, 진리, 사상, 법칙, 이론, 학문 등의 뜻을 지닌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고대 인도 및 중국 문명에서 수학과 더불어 논리에 대해 연구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논리학은 일반적으로 기원전 약 6세기를 전후로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지금의 논리학이라 불리는 학문의 체계가 잡혔다.

논리학은 20세기 초 버트런드 러셀과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가 공동으로 저술한 《수학 원리》(라틴어: Principia Mathematica 프린키피아 마테마티카[*], 1910-1913)가 출간된 시기를 기준으로 그 이전을 전통논리학, 그 이후를 현대논리학으로 구분한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확립된 논리학을 전통논리학이라고 하는 반면, 20세기 러셀과 화이트헤드가 공동으로 저술한 《수학 원리》를 기반으로 한 그 이후의 논리학을 현대논리학이라고 부른다.

쿠르트 괴델의 규명이 있기 전까지 수학의 명제는 증명이 되어야만 '참'이었고 그것을 '정리'라고 불렀으며 정리는 곧 '진리'였다.
그러나 괴델이 1930년 10월 '참이지만 증명할 수 없는 산술적 명제가 존재한다'는 불완전성 정리를 발표하면서 논리학도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논리학은 사리에 맞는 합리적인 사고로 그 내용을 올바르게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해 반드시 그래야 하는 사고의 규범을 연구한다.
심리학도 사고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이지만, 실제 사고가 어떻게 행해지는가를 연구한다는 점에서 논리학과 차이가 있다.

논리학은 크게 형식논리학과 인식논리학의 두 종류로 나뉜다.
- 형식논리학 : 개개의 판단이나 개념의 내용에 상관없이 추리의 형식상 타당성만을 문제로 삼는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전통적 형식논리학과 그 현대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기호논리학이 이에 속한다.
- 인식논리학 : 추리 형식의 타당성뿐만 아니라 판단이나 개념의 내용이 진리인 것 같은 인식을 얻기 위한 사고의 경로나 그 형태를 연구한다.
예로부터 뛰어난 철학자들은 자기의 철학적 인식을 올바른 것으로 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역적 논리학 대신 모두 제각기의 입장에서 특징있는 인식론적 논리학을 설정했다.
베이컨의 귀납적 논리학, 칸트의 선험적 논리학, 헤겔이나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논리학, 듀이의 실험적 논리학 등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인식론
인식론(認識論)은 지식에 대한 제반 사항을 다루는 철학의 한 분야로서 지식의 본질, 신념의 합리성과 정당성 등을 연구한다.
인식론(Epistemology)은 고대 그리스어의 episteme(지식 또는 인식)와 logos(이론)을 합친 데에서 비롯하였다.

인식론이 다루는 중요 주제는 다음의 네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지식에 대한 철학적 분석과 진리, 신념, 정당화 등의 개념과 연관되는 방식에 대한 연구.
2.회의주의에 대한 제반 문제
3.지식과 정당화의 기반과 범주
4.지식과 정당화의 규범

인식론 연구에 대한 위의 구분은 스코틀랜드 철학자 제임스 프레더릭 페리에가 1854년 《형이상학의 원리:앎과 존재의 이론》에서 처음으로 제시한 것이다.

인식론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epistemology는 지식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ἐπιστήμη(에피스테메)와 낱말 또는 말하기를 뜻하는 λόγος(로고스)를 합하여 만든 말이다.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제임스 프레더릭 페리에는 존재론을 뜻하는 ontology의 조어 방식을 참조하여 epistemology를 만들고 그 성격을 규정하였다.
독일에서는 요한 피흐테와 베르나르드 볼차노가 동일한 의미로 Wissenschaftslehre를 사용하였고, 이는 뒤에 에드문트 후설이 다시 채용하였다.
프랑스에서는 1908년 에밀 메이에송이 《정체성과 실제》에서 보다 좁은 의미로 "지식에 대한 이론"을 뜻하는 용어로 épistémologie 를 사용하였다. 메이에송은 이를 과학 철학과 같은 의미로 보았다

인식적인 연구는 그리스·중세에도 있었으나, 철학의 중심적인 과제가 된 것은 근세, 특히 로크부터이다.
인식의 기원에 관한 주장으로는 이성론과 경험론이 있다. 근세에 와서 이성론은 주로 유럽에서 그리고 경험론은 영국에서 발달했다.
영국에서는 중세기 이후 경험론의 전통이 있었으며 로크 이후에는 더욱더 치밀해졌다.
칸트는 이 양자를 종합하려고 선험적 관념론을 주장했다.
다음으로 인식의 본질에 관해서는 '인식의 대상'이 관념적이라는 관념론과 실재적이라는 실재론이 대립한다.
칸트의 비판주의는 인식이 경험적 실재론인 동시에 선험적 관념론이라 하여, 이 양자를 종합하려 했으나 충분히 종합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 후 철학도 복잡해짐에 따라 인식론도 복잡해졌다. 신칸트주의, 그리고 현상학에서는 인식론이 철학의 방법 그 자체가 되어 있다

지식
지식의 세 가지 종류 :
2+2=4 라는 수학 지식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수와 연산에 대한 지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철학에서는 선언적 지식과 절차적 지식(노하우) 그리고 숙지된 지식을 구분한다.
예를 든 덧셈의 계산에는 수와 연산에 대한 선언적 지식과 함께 이를 계산하는 절차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며, 결과적으로 연산의 숙달에 의해 터득된 지식을 내면화하게 된다.

버트런드 러셀은 《표현에 대하여》(On denoting)와 《철학의 문제들》(Problems of Philosophy)에서 기술된 지식과 숙지된 지식을 구분하였다.
또한, 길버트 라일은 《마음의 개념》(The Concept of Mind)에서 선언적 지식(Know that)과 절차적 지식(Know how)를 구분하였다.
마이클 폴라니는 선언적 지식과 절차적 지식을 자전거를 타면서 균형을 잡는 것에 비유하여 설명하였다.
즉, 자전거 동역학에 대한 이론적 지식을 알고 있다고 해도 훈련을 거쳐 균형을 잡는 법을 터득하지 못한다면 안정적으로 자전거를 탈 수는 없다.

신념
신념은 개개인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다.
신념의 형성에는 종교적 신앙, 타인의 견해에 대한 신뢰, 권위에 대한 인정 등이 작용한다.
철학의 전통적 관점에서 보면 인식론 역시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이 때문에 어떤 것이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가에는 인식의 관점이 작용한다.

인식론에서 신념의 문제에 대한 유명한 사례로는 코페르니쿠스 전환이 있다.
임마누엘 칸트는 자신의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에 대하여 인식에 대한 코페르니쿠스 전환이라고 자칭한 바 있다.
토머스 쿤은 우주에 대한 지식이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로 변화한 것은 무엇보다도 인식의 관점인 패러다임의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진리
철학은 순수하게 논리적인 사고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식 양식이다.
체계적인 인식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논리가 필요하지만, 철학적 진리는 논리에 선행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 이후 서양 철학에서 진리는 일원적인 것이었다.
진리를 뜻하는 그리스어 알레테이아(Αλήθεια)는 잊혀진 것을 되찾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플라톤은 이데아론에서 잊혀진 이데아를 상기하는 것이 철학의 주요 임무라고 보았고 이는 이후 중세를 거쳐 서양의 철학과 신학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근세 이후 합리론과 경험론, 비판론 등의 철학 관점이 등장하면서 진리에 대한 인식은 다양해 지기 시작하였다.
데카르트는 합리론을 내세워 모든 지식에 대한 시험을 거쳐 남는 절대적 진리에 다다를 수 있다고 보았고, 존 로크 등의 경험론자들은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절대 진리의 개념을 유보하고 경험의 축적만이 인간이 진리를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라고 보았다.
칸트는 합리론과 경험론 모두를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진리는 이성과 경험의 양측에서 구축된다는 이론을 세웠다.

한편, 니체는 진리에 대한 신념이나 인식이 절대적 가치를 가질 수 없다고 보고 "사실이야말로 존재하지 않는 바로 그것이며 존재하는 것은 해석뿐"이라고 주장하였다. 니체의 이러한 주장은 진리에 대한 상대주의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에 들어 존 듀이는 지식의 유용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진리와 유용성을 구분하면서도 참이라고 인정되는 것에 대한 행위만을 유의미한 것으로 보았디.

과학 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과학적 방법은 기본적으로 진리에 대해 경험론적 입장을 취한다.
과학적 방법을 통하여 얻은 진리는 경험적이며 귀납적인 것으로, 여기에는 반증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한다. 즉, 과학의 발전에 따라 과학 지식은 그 의미와 내용이 변할 수 있다.

정당화
인식론에서 지식은 참이라고 정당화되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정당화는 지식의 종류에 따라 수학적 증명, 과학적 방법에 따른 시험, 언어 논리적 논증과 같은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각각의 분야에서는 지식의 정당화를 이끌어내는 여러 방법이 존재한다.
지식이 진리를 근거로 해야 한다는 철학적 전통에 의해 지식은 정당화의 방식에 따라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는 대응적 진리, 전체적이고 체계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정합적 진리, 검증 가능성과 유용성을 척도로 삼는 실용적 진리 등으로 구분된다

게티어 문제 : 지식은 진실과 믿음의 교집합의 일부분인가?
에드문트 게티어는 1963년 《정당화된 참된 믿음은 지식인가?》라는 짧은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논문에서 게티어는 어떠한 참된 명제가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정당화된 믿음이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을 보였다.
다이어그램에서 참인 명제와 신뢰되는 명제의 교집합인 보라색 영역은 개인에게는 참된 믿음이라 할 지라도 여전히 노란색 영역으로 표시된 지식 이외의 다른 명제들을 포함하고 있다.

게티어는 두 가지 사고 실험의 예를 들어 이를 설명하고 있다.
그 중 하나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취직하길 원하는 두 사람, 스미스와 존스가 동전 열 개씩을 가지고 있다.
스미스는 존스가 가지고 있는 동전을 세어 보아 열 개라는 것을 안다.
스미스는 동전을 열 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취직할 것이라 믿고는 존스가 취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재로 취직하는 사람은 스미스이고 나중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동전의 개수를 세어 보아 열 개라는 것을 확인한다.
이 상황에서 스미스는 동전 열 개를 가진 사람이 취직한다는 정당화 되지 않은 믿음 때문에 올바른 지식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동전의 개수에 대한 지식이 사실이고 둘 중 한 명이 취직한다는 것 역시 사실일지라도 이 둘 사이를 연결하는 믿음의 정당화 방식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전 10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취직된다.'는 A에게 '정당화 된 참인 믿음'일지라도, 지식이 될 수 없다. 게티어 문제는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정당화된 믿음이라고 할 지라도 그 근거의 검증 없이는 참된 지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티어의 문제 제기 이후 로버트 노직, 사이먼 블랙번과 같은 철학자들은 지식의 조건을 추가하거나 수정하여 게티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로버트 노직은 다음과 같이 지식을 정의하였다.
: S가 P에 대해 오로지 다음과 같이 안다면,
- P가 있다;
- S 는 P 라고 믿는다;
- P가 거짓이면, S는 P를 믿지 않았을 것이다;
- P 가 참이면, S 는 P를 믿게 될 것이다.

노직은 세번째 조건에 의해서 게티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철학자 데이비드 멀릿 암스트롱은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노직의 주장을 반박했다.
만일 재판에 기소되어 판결을 기다리는 딸을 가진 아버지가 있다고 하자.
그는 평생 보아온 자신의 어여쁜 딸이 결코 그런 죄를 지을리 없다고 생각한다.
재판 결과 딸은 유죄가 확정되어 처벌을 받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재판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딸이 무죄라고 생각한다.
이 사례에서 믿음은 어떤 것이 거짓이라고 판명되는 상황에서도 유지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따라서 노직의 세번째 조건은 효력을 잃는다.

내재주의와 외재주의
신념의 정당화에는 일반적으로 내재주의와 외재주의의 두 견해가 존재한다.
내재면주의는 신념의 정당화가 어떤 방식으로든 개인의 내면에서 작용한다는 견해이다.
내재주의에도 두 가지 서로 다른 견해가 있는데, 하나는 수용론적 내재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존재론적 내재주의이다.
수용론적 내재주의에서는 신념이란 P라는 명제에 대해 개인이 신뢰하게 됨으로써 P에 대한 신념이 생기게 된다.
수용론의 관점에서 보면 개인이 갖는 P에 대한 신념은 P를 믿을 만한 이유나 근거를 수용함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한편, 존재론적 내재주의에서는 개인의 정신 상태에 의해 신념의 정당화가 수립된다고 본다.
이 두 관점은 비록 구분될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함께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내재주의에 대한 유명한 논쟁 가운데 하나로 "새로운 악마 문제"가 있다.
특히 신뢰주의과 같은 입장에서는 새로운 악마 문제를 내재주의적 인식론의 간접적인 증거로 제시한다.
만일 데카르트가 말하는 사악한 악마와 같은 존재가 있어서, 모두가 신뢰하고 동일하게 경험하는 어떤 주제가 실은 사악한 악마의 체계적 조작이라고 한다면 그 주제에 대한 모든 신념 역시 거짓이 될 것이다.
이 경우 우리는 이성적인 방법을 통하여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이 객관적 실체인지 아니면 악마의 농간인지를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뢰주의에 따르면 각 개인의 신념에 대한 정당화가 모두 동일한 방식의 합리적 과정을 거친 것이라고 할 지라도 이 모든 것이 여전히 이러한 악마의 속임수일 가능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데카르트의 결론처럼 인식은 내면적 사고의 과정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신뢰주의의 주장이다.

인식론에서 근세 이후 계속되어 온 내재주의에 반대하는 외재주의는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출현하였다.
외재주의에서는 "사실"이 신념을 가진 사람과 독립적인 외부에 존재한다고 본다.
따라서 신념의 정당화에서 사실에 대한 개인의 내적인 수용, 또는 이성에 대한 선험적인 정신 상태는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암스트롱은 지식에 대한 온도계 모델을 제시하면서 한 믿음이 지식인가 아닌가는 그 믿음을 구성하는 인지 체계가 정상적 상황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한 결과인지 아닌지에 달려있다고 주장하였다.
즉,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온도계가 정상적인 상황에서 일정한 온도를 가리키면 이는 외부 온도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지표이듯이, 우리의 지각 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여 외부 상황에 대한 정보를 신빙성 있게 표상하면 그것이 지식이 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기존의 인식론이 자연과학과 단절되어 지나치게 사변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가치 문제
일반적으로 지식은 단순한 참인 믿음보다 더 가치있다고 여겨진다.
만일 그렇다면 해석은 무엇인가? 인식론의 가치 문제가 처음 다루어 진 것은 플라톤의 《메논》이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메논이 라리사로 가는 길을 아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을 정확히 그곳으로 이끌 수 있다고 하면서, 동시에 한 번도 라리사에 가본 적도 없고 라리사에 대해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어도 그러한 참인 믿음을 지녔다고 지적한다.
소크라테스는 지식과 참된 견해 모두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였다.
이에 대해 메논은 왜 지식이 참인 믿음보다 더 가치가 있는지를 물었고, 소크라테스는 지식이 단순한 참인 믿음보다 가치가 있는 것은 그것이 더 확고하고 정당화된 것, 즉 참인 믿을 위해 이유를 밝히고 확정하였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문제는 어떤 것이라도 지식을 단순한 참인 믿음보다 가치있게 만드는 게 있는 지, 즉 지식이 정당화, 안정성, 감수성, 통계적 가능성, 그리고 게티어 조건에 반하는 가와 같이 그것을 이루는 부분들의 합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지도록 하는 게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특히 지식을 구성하는 부분들로 나누어 분석하는 지식-최초 인식 이론에서 기초로 상정되는 지식에 대한 특기할만한 반례로서 다루어진다.
1980년대 이후 도덕인식론이 부상한 이후, 가치 문제는 21세기에 들어와 윤리학의 가치 개념과 연결되었다.

가치 문제는 린다 재그저브스키, 웨인 리그스, 리처드 스윈번과 같은 철학자들이 신뢰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제기하였다.
재그저브스키는 지식의 가치에 대해 에스프레소 머신의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즉," 신뢰할만한 에스프레소 머신을 썼다는 사실이 컵에 담긴 커피의 질을 향상시키지는 않으며, 만일 에스프레소가 맛있다면 기계가 신뢰할 만한 것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다"는 것이다.
재그저브스키에 따르면 지식의 가치는 단순한 참인 믿음의 가치를 수축시킨다. 그녀는 신빙성 자체는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것이라고 가정하였다.
하지만 골드만과 올슨은 이러한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재그저브스키의 결론이 진리론의 가정에 놓인다고 지적하였다.
모든 문제는 참인 믿음의 획득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재크저브스키에 반대하여 참인 믿음의 획득이 장래에 믿게될 것이 참으로 정당화 됨에 따라 단순한 참인 믿음에 가치를 더한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신뢰성있는 에스프레소 머신은 그렇지 않은 것보다 장래에 더 좋은 에스프레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가치 문제는 지식이 참인 믿음을 비롯한 기타 구성 요소들로 구성된다는 지식 이론의 타당성을 평가하는데 중요하게 작용한다.
조나단 크반비그에 따르면 지식의 타당성 평가는 반례를 극복하여야 하고 단순한 참인 믿음을 넘는 지식 가치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지식이론이 이러한 일에 실패한다면, 그 이론은 적절치 않았다는 것이 증명될 것이다.

문제에 대한 좀 더 영향력 있는 답변 가운데 하나는 지식이 특별히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며 인식론의 주된 분야여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대신에 인식론이 이해와 같은 다른 정신 작용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덕인식론을 옹호하는 학자들은 지식 습득과 신뢰의 정신 상태 사이에서 발생하는 지식의 가치에 대해 논한다

지식 획득에 대한 견해
칸트
임마누엘 칸트는 인식에 대하여 아 프리오리(라틴어: a priori, 선험)과 아 포스테리오리(라틴어: a posteriori, 후험)로 구분하였다.
칸트는 영국의 경험론과 달리 경험을 맨 처음 생길 때 부터 여러가지 일들이 복잡하게 얽혀 놓여 있는 것으로 파악하였고, 따라서 곧바로 정신 속으로 들어와 구성되는 개별 요소가 아니라 복합적인 세계 자체로서 파악하였다.
칸트에 따르면 경험은 소재적 요소와 형식적 요소가 결합할 때에야 비로소 정신속에서 종합된다.
이러한 칸트의 견해에 따르면 지식은 선험적 인 아 프리오리와 후험적인 아 포스테리오리고 나뉘며, 경험에 대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선험적 지식은 개인에게 있어서는 경험에 따라 순차적으로 획득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지식의 존재 자체는 경험과 무관한 것이다.
칸트는 시간과 공간, 범주와 같은 형식적 개념을 선험적 지식의 예로 들었다.
즉, 개인은 시간과 공간을 경험과 함께 인식할 수 밖에 없으나 그 자체는 개인의 경험과 무관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칸트는 후험적 지식, 즉 아 포스테리오리란 선험적으로 놓여 있는 사상(事相) 그 자체를 오성과 감성을 통해 경험함으로서 획득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칸트의 주장은 결국 우리는 사상 그 자체를 그대로 인식할 수는 없다는 의미가 된다.

비트겐슈타인
비트겐슈타인은 기존의 철학 문제들이 언어의 의미를 불명료하게 사용하여 생겨난 오해라고 보았으며, 언어의 명료한 사용을 통하여 이러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초기 사상을 대표하는 《논리 철학 논고》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는 세계를, 명제는 사실을, 이름은 대상을 지칭하는 실제적인 대응관계에 있다고 천명하면서 "객관적 실재"의 견고함을 강조하였다.
말년에 이르러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가 반드시 어떠한 대상에 대응되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을 수정하여, 언어가 사용되는 구체적 삶의 상황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생각의 전환을 바탕으로 《철학적 탐구》를 집필하였으나 출판하지는 않았다. 《철학적 탐구》는 비트겐슈타인의 사후에 남겨진 초고를 합하여 출판되었다.

과학적 방법
자연과학의 지식 획득은 경험론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철학의 입장에서 과학적 방법을 사용한다.
과학적 방법 역시 진리를 발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철학이 추구하는 일반적인 진리와 달리 과학적 방법에 의한 진리는 경험적이며 귀납적인 것으로, 여기에는 반증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한다.
즉, 과학의 발전에 따라 과학 지식은 그 의미와 내용이 변할 수 있다. 따라서 과학적 방법에 의해 인식되는 지식은 자가 수정이 가능한 경험적 지식 체계이다.

회의주의
회의주의는 인류 지식의 모두 또는 일부에 대한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회의주의는 특정한 철학적 학파라기 보다는 인식론에 대한 철학적 논의과정에서 유도된 입장이다.
가장 오래된 회의론자로 소크라테스를 꼽을 수 있다. 소크라데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유일한 사실은 확실히 아는 것이 없다는 것 뿐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방법적 회의론을 거쳐 코기토 에르고 숨 즉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의심할 수 없는 명제로 선언하였다.

기초주의와 여타 학파에서는 회의주의에 대항하여 이른바 "퇴행문제"를 제기한다.
윌리엄 제임스의 실용주의는 정합론으로 회의주의에 대항할 수 있다고 본다.
제임스는 진리에 대한 전통적인 철학의 관점을 옹호하면서 진리란 합리적 준거에 의해 규범화 된 상황에서 잘 구성된 개념이라고 정의하였다.
토머스 쿤이나 칼 포퍼와 같은 논리실증주의 철학자들은 회의주의를 무엇이 진정한 과학적 지식인가를 판단하는 도구로 바라본다. 포퍼는 반증가능성이 있는 지식만이 과학적 지식에 부합한다고 보았다


6. 철학의 분야 - 윤리학과 미학


윤리학
윤리학(倫理學, 영어: Ethics)은 도덕의 원리, 기원, 발달, 본질과 같은 인간의 올바른 행동과 선한 삶을 사회 전반에 걸쳐 근원적이고 총괄적으로 규명하는 철학의 주요 분야이다.
인간의 생활에 있어 바람직한 상태란 무엇이며, 선악의 기준은 무엇이고, 행위의 법칙은 어떻게 정립되는가와, 노력할 만한 것은 무엇이며, 생활의 의미라는 것은 무엇인가 등을 밝히는 동시에, 도덕의 기원, 도덕의 법칙을 세우는 법칙과 그 역사적 성격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윤리학은 도덕철학(道德哲學, moral philosophy)이라고도 불린다. 'ethics'는 'ethos', 'moral'은 'mores'라는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윤리학은 인간의 행위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와 규범을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규정하는 규범·원리·규칙에 대한 학문이다.
원시공동체 사회에도 도덕은 존재하였지만 윤리학은 노예제 사회로 이행하면서 나타났다.

윤리학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반적인 통념과는 다르다.
윤리학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선한 삶'으로, 그것은 일반적으로 가치있게 사는 삶이거나 단순히 만족하는 것이 아닌 삶으로, 많은 철학자들은 일상적인 도덕 행위보다 더 중요한 것을 지향하는 삶을 생각했다.
다른 관점에서 도덕 자체는 학문이 아니지만 그것을 방법론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윤리학이다.
그 연구 영역은 도덕 현상과 도덕 본질로 크게 나뉜다. 물론 이 두 가지는 서로 뒤섞이며, 더구나 윤리학설은 철학이론과 결부되어 있다

미학
미학(美學, Aesthetics)은 철학의 하위 분야로서 '아름다움'을 대상으로 삼는 학문이다.
완성도가 높은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는 일이 주된 관심사가 된다.
예술철학과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느림의 미학'이나 '쇼핑의 미학'이라는 말처럼 일상 생활에서는 '아름다움'이나 '예술론' 등과 혼용되기도 한다.

아름다움의 갈래에는 숭고미, 지성미, 비장미, 골계미, 우아미 등이 있다.
'숭고미'는 신의 경지를 추구하는 미의식이다.
'지성미'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public mind) 속에 합리적 사고를 구현하는 미의식이다.
'비장미'는 삶의 모순에 반기를 들고 그 모순을 타파하는 길을 가는 미의식이다.
'골계미'는 관념의 억압을 거부하고 삶의 발랄함을 추구하는 미의식이다.
'우아미'는 일상성을 긍정하며 조화롭고 균형을 잘 갖춘 대상을 선호하는 미의식이다.

근대 미학을 체계화한 이마누엘 칸트는 '목적 없는 합목적성의 형식(form of finality without an end)'을 '미'라고 규정했다.
튤립 꽃봉오리는 그 형태의 완성도가 인간을 매혹시키는 것이지, 그것에 대한 식물학적 지식이 인간의 미감을 자극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의 형식에 대해서이지 그것의 내용에 대해서가 아니다.

미와 숭고는 인간의 예술적 체험을 구성하는 중요한 두 가지 성질이다.
장미꽃이 미를 발생시키고 인간에게 미적 쾌감을 준다면 지진해일 같은 거대한 파도는 숭고의 대상이 된다.
지진해일은 인간의 구상력을 훌쩍 뛰어넘어 인간을 우선 좌절시키고 불쾌하게 만들지만 이어서 더욱 강하게 인간을 끌어당긴다.
구상력이란 무언가를 표현하는 표상의 능력이므로, 결국 숭고란 인간이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대상에 대한 감정이다

- 감각적 인식: 인간의 감각이나 지각으로 이루어지는 인식을 말한다.
- 객관적 미학: 미적 대상 그 자체에 대하여 객관적인 입장으로 연구를 하는 학문이다.
- 주관적 미학: 미적 대상을 파악하는 주체의 미적 체험의 측면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 자연미: 자연이나 현실 속의 비의도적이고 우발적이며 부정적인 대상으로부터 체험되는 인간의 미적 감동에 근원을 둔 미이다.
- 예술미: 인간의 창조적 활동에 의해 의도적으로 실현하려는 미로서 인간이 예술 의욕에 의해 미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을 창조하려고 의도적으로 자연에서 주어진 재료를 가공 형성함으로써 성립되는 미이다.
- 미메시스: 비생산적인 모방이 아니라 대상을 전유하고 극복하는 창조적 활동과 경험의 의미를 띤다

디자인의 조건
- 합목적성
- 독창성
- 심미성 (미의식: 시대성, 국제성, 민족성, 사회성, 개성 등이 좌우한다.)
- 경제성
- 질서성


7. 결정론과 운명론


결정론
결정론(決定論, 영어: Determinism)은 과거의 원인이 미래의 결과가 되며, 이 세상의 모든 사건은 이미 정해진 곳에서 정해진 때에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다는 이론이다.
결정론에 따르면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운동은 이미 그 전부터 결정되어 있으며, 어떤 법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움직인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과 라플라스 등은 결정론을 지지했다.
특히, 라플라스는 "우주의 모든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안다면 우주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초기 결정론의 모태를 만들었다. 흔히 결정론은 라플라스 주의라고도 한다.
숙명론과 자주 혼동하지만, 결정론은 인과관계로 인하여 필연으로 사건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숙명론과는 다르다.

결정론에서 자주 거론되는 것으로 자유 의지가 있는데, 자유 의지란 어떤 이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있을 때, 신이나 자연 따위에서 벗어나 행동할 수 있는 의지를 뜻하는 낱말로, 결정론은 참이라는 입장에서도 자유의지가 있다는 의견과 없다는 의견으로 나뉜다.
자유 의지는 없다는 의견은 심지어 인간의 의지마저 결정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자유의지는 있다는 의견은 인간의 의지가 존재함을 주장한다.
이 문제에 대해 대부분 실존주의 철학자는 모든 상황이 결정되어 있더라도 인간은 영속하고도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9세기 물리학은 결정론에 들어 맞았기 때문에 크게 유행했다.
그러나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양자역학이 생겨나게 되자, 모든 것이 미리 정해져 있었다는 결정론이 그 타당성을 잃어갔다.
따라서, 모든 일은 그 사건이 일어날 확률만이 정해졌다는 확률론적 결정론(確率論的 決定論)이 유행했다.
20세기에 프랙털과 나비 효과, 혼돈 이론의 등장과 단순하고 예외적인 선형 운동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었으나, 복잡하고 예측하기 힘든 비선형 운동은 과학적으로 알아내는 데 실패한 것이 알려져 결정론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결정론적 개념 규정은 미완이며, 자유 의지의 존재도 분명하지 않다.

확정성 (確定性) 또는 확실성 (確實性)은
오류로부터 완전한 보증을 가지고 있거나, 의심의 여지 없이 존재하는 정신 상태를 가진 완전한 지식이다.

실제 세계에 대한 확정성을 구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실패한 활동이라고 널리 평가된다.
이는 대부분 데이비드 흄의 귀납의 문제가 가진 힘에서 기인한다.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실세계에서 확정성은 불필요하거나 때로는 해롭기까지 하다고 덧붙인다.
(모든 결함으로부터의 완전한 보증이라는 개념은 불가능하며, 완전한 의심의 결여는 부당하다.)

불확정성
“ 의심이 유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확정은 어리석은 일이다. ” — 볼테르
“ 이 세상에서 죽음과 세금을 제외하고 확실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 — 벤저민 프랭클린
“ 절대적인 확정 같은 건 없지만 인간의 삶의 목적에 대한 충분한 보증이 있다. ” — 존 스튜어트 밀
“ 당신이 지금까지 아무 의심도 하지 않았던 모든 것을 의심하려 할 때. 그것을 의심하는 것은 확정을 전제로 한다. ” — 《확정에 관하여》에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운명론
운명론(運命論, 영어:fatalism)또는 숙명론은 세상의 사건은 모두 미리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고, 인간의 노력으로 그것을 바꿀 수 없다고 하는 이론이다.
즉 이 세상의 모든 일에 논리적인 인과관계 같은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과 행동들 모두 이미 정해져 있는다는 내용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운명론자들은 자신의 삶을 노력보단 수동적이고 반능력주의적이다.
개인은 공동적 개인조차도 어떤 종류의 사회적 사상(事象)의 흐름에 대해 아무런 영향력도 미칠 수 없다. 이걸 사회적 운명론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사회적 사상의 영향력에 대해서만 말한 것으로 넓은 의미를 가진 운명론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운명론은 과학적 근거보단 가설에 가까운 형이상학적이지만 그와 반대인 결정론은 과학적인 근거로 이론을 제기하는 과학적 이론이다.
그러나 양자역학으로 인해 결정론중에 일부 내용이 수정되었지만 여전히 과학적으로 풀리지 않는 가설들이 많아 많은 비판을 받았다.
반대로 두 이론의 공통점은 우리의 자유의지는 분명하지 않고 세상이 정해진 운동에 예속 되있을 뿐이다 라는 점이다.

이론의 한계점
대부분 사람들이 운명론을 거론할 때 운명의 존재를 신으로 말하거나 자연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그 예시로는 밑에 글이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나온 일화를 들어보겠다.

"일찍이 그리스의 호메로스는 모든 인간사(人間事)를 신의(神意)에 종속시키는 비인격적 힘의 존재를 믿고 그것을 모이라라고 불렀으며 또 헤시오도스는 운명을 주관하는 3명의 여신에 관해서 말하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모이라라고 불리는 이 여신들 가운데 인간의 탄생을 주관하는 클로토는 생명의 실을 뽑아내고, 라케시스는 모든 인간들의 생애를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며, 가장 연장(年長)인 아트로포스는 생명의 실을 끊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윗글에서 볼 수 있듯이 초월적 존재 즉 신들에 의해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들며 운명의 존재여부를 설명한다.
그러나 초자연적 현상과 초월적인 존재를 많이 혼동하며 써왔지만 한가지 차이점이라 하면 초월적존재는 신이란 존재를 말하고 초자연적 현상은 이곳에 존재하는 자연적인 것을 초월한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운명의 존재여부의 문제는 이것들만으로는 분류해서 나누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운명론의 정의에서 보다시피 운명의 존재를 정확히 어떤점에서 논리적 인과관계가 없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으므로 운명의 존재를 신적인 것이나 초월적인 존재로 부여하거나 그 이외에 논리적 인과관계에서 벗어나는 존재와 비슷한 것을 이유로 들 수 있어서 그런지 운명론자들은 그것들을 굳이 나누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초월적 존재를 회의적으로 볼때 문제는 운명의 존재는 초자연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과 같다는 설명만으로 말하고 그것들의 존재여부에 관한 설명이 없다.
그리스 신화를 예를 든 것 처럼 신의 존재가 참인 조건일 때 운명의 존재도 참이지만 신의 존재여부가 없는 논쟁를 들기 때문에 유신론자또는 초월주의 관념을 가진 이가 아닌이상 신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또한 신에 존재에 회의를 가지는 불가지론자들은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이론이다.


8. 합리론과 경험론, 관념론


합리론
인식론에서 합리론(合理論, 영어: rationalism), 합리주의(合理主義) 또는 이성주의(理性主義)는 이성을 지식의 제일의 근원으로 보는 견해를 말한다.
합리론에서의 진리의 기준은 감각적인 것이 아니라 이성적이고 연역적인 방법론이나 이론으로 정의된다.
합리론자는 우리의 개념과 지식이 감각적 경험에서 독립하여 얻어지는 방법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경험론자는 감각적 경험이야 말로 우리의 개념과 지식의 궁극적인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오랜 논쟁에서 합리론은 경험론의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며, 합리론자는 실제는 본질적으로 논리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합리론자들은 어떤 진리는 존재하며, 지성은 이러한 진리를 직접적으로 포착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즉, 합리론자들은 근본적으로 참인 어떤 이성적인 원칙이 논리, 수학, 윤리학, 형이상학에 존재하며, 이를 부정하는 자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합리론자들은 이성에 매우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서 경험적인 증거나 물리적인 증거는 진리를 획득하는 데에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다시 말해, 우리의 개념과 지식이 감각적 경험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얻어지는 두드러진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이나 이론을 강조하는 정도의 차이는 "지식을 획득하는 다른 방법에 비해 우월함을 가지고 있다"는 온건한 입장부터 이성은 "지식을 향한 유일한 길"이라는 극단적 입장까지 다양한 합리주의적 관점을 낳았다.
전근대의 이성에 대한 이해를 고려할 때, 합리론은 소크라테스의 질문하는 생애나 권위에 대한 회의주의자의 명쾌한 해설로서의 철학 그 자체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정치에서 계몽주의 이래로 합리론은 합리적 선택 이론(rational choice theory), 공리주의, 세속주의, 무종교 (종교적 또는 무종교적 이념에 관계 없이 실현 가능한 다원론적 합리주의 방법론의 공리주의를 적용하여 수정된 후기 양상의 반신론)에 집중된 "이성의 정치"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철학자 존 커팅햄(John Cottingham)은 방법론으로서의 합리주의가 세계관으로서의 무신론과 어떻게 융합되었는지를 강조하였다.

과거에 특히 17세기와 18세기에 합리론자라는 용어는 종종 반성직자적인, 반종교적인 관점을 가진 자유로운 사상가를 말하기 위해 사용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 단어는 뚜렷하게 경멸적인 의미를 얻었다.
(그래서 1960년에 샌더슨(Sanderson)은 '순전한 합리론자, 즉 보통의 영어에서 후기 판형의 무신론자'라고 얕잡아 말했다.)
초자연적인 것을 위한 공간이 없는 세계관을 특징짓기 위하여 합리주의자라는 딱지를 사용하는 것은 오늘날 더욱 흔하지 않게 되었고, 인본주의자나 유물론자같은 용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오래된 용법은 아직 살아 있다.

- 데카르트 : 데카르트는 최초의 근대적 합리론자이자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 칸트 :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을 종합하려 함

경험론
경험론(經驗論, 영어: empiricism)이란 철학에서 감각의 경험을 통해 얻은 증거들로부터 비롯된 지식을 강조하는 이론이다.
합리론(합리주의)이 인식 원천을 오직 이성에서만 추구하는 것과 대립한다.
경험론은 인식론으로 알려진 인간의 지식에 관한 학문 중 가장 널리 퍼진 관점이기도 하다.
경험론에서는 관념의 형성 과정에서 생득관념이나 관습보다는 경험과 증거, 특히 감각에 의한 지각을 강조한다.
같은 맥락에서, 과학철학에서의 경험론은 증거와 밀접하게 관련된 과학적인 지식, 특히 실험에 그 토대를 두고 있는 관점들을 강조한다.
이는 모든 가설과 이론들은 오로지 연역적인 추론이나 직관, 또는 계시가 아니라 자연계에서의 기존의 관찰에 반(反)하여 검증되어야 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과학적 방법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과학은 완전히 방법론적으로 실증적인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경험론이라는 단어는 독단적인(dogmatic) 원칙(Dogmatic school)을 고수하는 것을 거부함과 동시에 경험으로 얻어진 현상(phenomena)에 대한 관찰에 의존하였던 몇몇 고대 그리스의 의료직 종사자들(Empiric school)을 가리키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다.
개개인은 어떠한 정신적인 내용 없이 태어나며 이들의 지식은 경험과 지각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타불라 라사의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 정립되었으며 이븐 시나에 의해 그 의미가 개량되었다.
이븐 투파일은 이 단어의 뜻을 사고 실험으로 표현하였다.
경험론이 담는 원칙은 후일 17세기 존 로크에 의해 명쾌하게 표현되었다.
존 로크에 따르면 마음은 타불라 라사(그는 '백지'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와 같아서 경험이 이 위에 흔적을 남기고 간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의 경험론은 인간의 생득관념이라든지 경험을 참조하지 않고 알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부정한다.
경험론자의 관점에 의하면 그 어떤 지식도 적절히 추론되거나 유추되려면, 궁극적으로 누군가의 감각에 기초한 경험으로부터 얻어져야 한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철학적인 경험론은 일반적으로 많은 지식들이 감각과는 독립적으로 이성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고 강조하는 합리주의와 배치되는 개념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대조는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와 같은 많은 합리주의자들이 동시에 경험에 기초한 "과학적인 방법"의 옹호자이기도 하였기 때문에 이들 이론이 포함하는 개념들을 과도하게 단순화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더 나아가, 로크는 신의 존재에 관한 증명같은 몇몇 지식은 직관과 추론만으로 얻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프래그머티즘에서 특히 존 듀이는 경험(실험)으로서의 행동을 지·정·의(知情意)의 통일체, 과거·현재·미래의 접합점으로 보아 거기에서 인식의 원천을 추구한다.

영국 경험론 :
영국 경험론은 비록 그 당시에 사용된 용어는 아니지만 17세기 초기 근대 철학과 근대 과학에서 파생되었다.
이 용어는 경험론의 창시자인 프랜시스 베이컨과 합리론의 창시자인 르네 데카르트 사이의 차이를 묘사하기 위하여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다음 세대인 토머스 홉스와 바뤼흐 스피노자는 각각 경험론자와 합리론자로 묘사된다.
존 로크, 조지 버클리, 데이비드 흄은 주로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경험론의 주요 주창자이며, 존 로크가 일반적으로 경험론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관념론
관념론(觀念論, 영어: idealism, 독일어: Idealismus, 프랑스어: Idéalisme)은 실체 또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실체는 근본적으로 정신적이거나 정신적으로 구성되었거나 또는 비물질적이라고 주장하는 철학적 입장이다.
인식론에서 관념론은 정신으로부터 독립된 것을 인식할 가능성에 대한 회의로 나타난다.
사회학적 측면에서 관념론은 인간의 생각, 특히 믿음과 가치가 사회를 어떻게 형성하는 지에 주안점을 둔다.
존재론적 교의로서 관념론은 더 나아가, 모든 것은 마음이나 정신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관념론은 "모든 것은 물질적으로 실제한다"고 보는 물리주의나 물리적 실체와 정신적 실체를 분리하여 파악하는 이원론의 주장은 모두 배척한다.

관념론은 마음 · 정신 · 의식이 물질 세계를 형성하는 기초 또는 근원이라고 주장은 유심론(唯心論)과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유심론이 유물론에 반하여 물질적 실재를 부정하는 것과 달리, 관념론은 실재론에 반하여 정신에 기반하지 않는 객관적 실재의 인식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이에서 더 나아가 물질 세계가 마음, 정신 또는 의식이 현재 가지고 있는 생각 또는 상념의 현현 또는 표상이라는 입장과 물질 세계가 원인의 세계가 아닌 결과의 세계라는 입장으로 사물의 세계가 "본질적인" 실체(實體) 또는 실재성(實在性)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다만 "임시적인" 실제성(實際性)만을 가진다고 보는 환영설(幻影說)도 관념론의 일부를 이룬다.

경험의 세계가 정신에 기초한다는 현존하는 가장 이른 논의는 인도와 그리스에서 발생하였다.
인도의 힌두 관념론자와 그리스의 신플라톤주의자는 실체의 토대 또는 진정한 성질로서의 만연한 의식을 옹호하는 내재신론적 논증을 펼쳤다.
반면에 기원후 4세기에 인도에서 발생한 대승불교 교파인 유가행파는 정신만을 인정하는 관념론의 근거를 대부분 인간의 경험에 대한 현상학적 분석에 기반을 두었다.
이러한 주관적 관념론으로의 전환은 18세기 유럽에서 유물론에 대한 회의적 논증을 채용하여 관념론을 되살린 조지 버클리와 같은 경험론자의 등장을 예견하였다.

이마누엘 칸트로 시작하여, G. W. F. 헤겔,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와 같은 독일 관념론자들은 19세기 철학을 지배하였다.
모든 현상의 정신적 또는 "관념적" 특성을 강조하는 전통은 영국 관념론부터 현상론, 실존주의를 아우르는 관념론적, 주관주의적 학파를 탄생시켰다.
이러한 관념론 학파의 역사적 영향은 심지어 마르크스주의나 실용주의, 실증주의와 같은 관념론의 형이상학적 가정을 거부하는 학파에게까지도 강하게 남아 있다.

대표적인 관념론으로는,
- 힌두교의 우파니샤드 철학과 베단타 학파,
- 불교의 유식설과 화엄종,
- 유대교의 카발라,
- 피타고라스 학파의 영혼 불멸설, 플라톤주의의 이데아론, 신피타고라스주의, 기독교 신학, 영지주의, 헤르메스주의, 신플라톤주의,
- 원효의 일심 사상, 유교의 성리학,
- 라이프니츠의 모나드설, 버클리의 유심론, 칸트의 비판철학, 헤겔의 절대정신 및 시대정신론 등이 있다.

- 일원론적 관념론
- 주관적 관념론
- 초월적 관념론
- 객관적 관념론


9. 유물론과 불가지론


유물론
유물론(唯物論)은 만물의 근원을 물질로 보고, 모든 정신 현상도 물질의 작용이나 그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즉, 세계의 근본이 되는 실재는 정신이나 관념이 아니라 의식이 외부에 그것과는 독립하여 존재하는 물질이나 자연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이 학설은 고대 그리스의 원자론에서 비롯하였다.
유물론은 관념론에 대립하고 여기에도 몇 가지 종류가 있다.
가장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하거나 특징이 있는 유물론으로서 기계적유물론과 역사적유물론이 있다.
두 가지의 가장 큰 차이는 기계적유물론은 모든 현상을 자연 인과관계와 역학에 토대한 법칙으로 해석하려는 방식으로서 일명 “관념론적 유물론”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역사적 유물론은 다른 내용으로서 일명 “변증법적 유물론”이라고 한다.

유물론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물리적이라는 견해인 물리주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철학적인 물리주의는 그저 평범한 물질보다는 우주 시간, 물리적 에너지, 힘, 암흑 물질 등과 같이 물리에 대한 더 세련된 용어를 가진 물리학이 발견되면서 유물론에서 발전하였다.
일부의 사람들은 유물론보다는 물리주의를 선호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이 두 용어를 동의어처럼 사용한다.
유물론과 관념론의 공통점은 세상을 한가지로 보는 보편적 이론에 해당하지만 독단적인 믿음보단 과학적 근거를 통해 이론을 제시한다. 그렇지만 보편적인 이론으로 볼 때 독단적인 이론이기도 하다.

자연과학에 기초한 유물론
1848년 혁명 이후 도이칠란트의 대공업과 자연과학이 더욱 발전하면서 자연과학에 기초한 유물론이 바야흐로 대두하던 신흥 국민의 계몽철학으로 등장하였다.
헤겔과 셸링의 독일 관념론에 염증을 느껴 왔던 자유 지식인들 사이에 이 유물론이 크게 유행하였다.
자연과학에 토대한 유물론의 본질은 의식과 사고 등 심적현상[2]을 에너지 불멸의 법칙이라는 자연법칙으로 환원하려는 기계론적 유물론이라는 점에 있다.
그것은 본래의 유물론을 비속화(卑俗化)하고 속류화(俗流化)했다고 해서 ‘속류유물론’이라고도 한다.
자연과학에 토대한,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하거나 특징이 있는 유물론자로서는 포크트, 몰레스코트, 뷔히너 등이 있다.

역사적유물론
역사적 유물론(歷史的唯物論)은 마르크스·엥겔스가 주장한 유물론에 기초해 역사를 해석하는 체계로서 '사적 유물론(史的唯物論)'이라고 하거나 '유물사관(唯物史觀)'이라고도 한다.
역사 해석에서 물질에 기초한 생산력을 그 인과 요인 중 가장 중시하는 역사관이고 세계 정신의 자기 전개 과정이 역사라고 주장한 헤겔류의 관념 사관과 반대된다.
즉 마르크스·엥겔스는, 역사를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은 인간의 의식이나 관념이 아니라 물질에 토대한 생산양식이라고 설명한다.
생산력이 발전하는 단계는 그 시대마다 노동 도구가 발달하는 단계로 표현되므로 유물사관에서는 생산기술 발달에 중점을 둔다.

마르크스·엥겔스는 생산관계[5]의 변화에 따라 원시 공동체적 생산 방식(原始共同體的生産方式)ㆍ노예 소유자적 생산 방식(奴隸所有者的生産方式)ㆍ봉건적 생산 양식(封建的生産樣式)ㆍ자본제 생산 양식(資本制生産樣式)ㆍ사회주의적 생산 관계(社會主義的生産關係)ㆍ공산주의 경제(共産主義經濟)순으로 발전한다고 설명하면서 노예 소유자적 생산 방식(奴隸所有者的生産方式)에서 자본제 생산 양식(資本制生産樣式)까지는 생산수단의 사유가 인정되므로 계급 대립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인류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규정한다.
유물사관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을 비롯해 계급으로 말미암은 모순을 역사가 발전하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하는 변증법에 기초해 역사를 해석하려고 시도해 왔으나 1958년 이후 공산권의 모순 논쟁에서는 모순이 역사가 발전하는 원동력이 아니요, 모순의 지양이나 통일 단결이 그 원동력이라고 주장하여 중·소 분쟁이나 체제 내의 반목·비판의 여지를 주지 않으려는 방향으로 유물사관을 크게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가지론
불가지론(不可知論, agnosticism)은 몇몇 명제(대부분 신의 존재에 대한 신학적 명제)의 진위 여부를 알 수 없다고 보는 철학적 관점, 또는 사물의 본질은 인간에게 있어서 인식 불가능하다는 철학적 관점이다.
이 관점은 철학적 의심이 바탕이 되어 성립되었다. 절대적 진실은 부정확하다는 관점을 취한다.
불가지론의 원래의 의미는 절대적이며 완벽한 진실이 존재한다는 관점을 갖고 있는 교조주의(敎條主義)의 반대 개념이다.

불가지론자들 중 사물의 본질은 인간에게 있어서 인식 불가능하다는 철학적 입장에 있는 이들은 인간이 감각을 통해서 인식하는 것은 사물의 본질이 아니라 본질의 거짓 모습인 현상에 불과하다고 본다.
이 경우 본질적 실재는 완전히 불가지(不可知)라는 데이비드 흄의 설과, 그것은 신앙의 영역에 관한 문제라 하여 남겨 놓는 칸트의 설도 있다.
감각이나 표상은 본질적 실재가 자기를 인간에게 제시하기 위한 상형문자(象形文字), 혹은 기호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프레하노프 등의 상형문자설도 불가지론의 일종이다.


10. 구조주의와 실존주의


구조주의
구조주의(構造主義, 영어: structuralism)는 인문학과 사회 과학 등 다양한 학문에 영향을 미친 철학의 사상 흐름의 하나로, 근본 요소들 사이의 상호 관계 위에 정신적, 언어적, 사회적, 문화적 '구조'가 성립하며, 그 구조에서 특정 개인이나 문화의 의미가 생산된다는 관점이다.

본디 언어학에서 출발하였지만 점차 그 적용 범위를 넓혀가면서 언어, 문화, 정치, 사회를 분석하는 가장 유명한 접근방법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구조주의의 출발은 보통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언어학 연구라고 보며, 프랑스 학자들이 소쉬르의 구조적 접근법을 다른 학문에 적용시키면서 유행하게 되었다.

실존주의
실존주의(實存主義, 프랑스어: Existentialisme)는 개인의 자유, 책임, 주관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적, 문학적 흐름이다.
실존주의에 따르면 인간 개인은 단순히 생각하는 주체가 아니라(not merely the thinking subject), 행동하고, 느끼며, 살아가는 주체자(master)이다.

19세기 중엽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에 의하여 주창된 이 사상은 후에는 야스퍼스, 가브리엘 마르셀 등으로 대표되는 유신론적 실존주의와 하이데거,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보부아르 등의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실존’이란 말은 이들의 사고양태(思考樣態)나 표현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표현되고 있으나, 공통된 사상은 인간에 있어서 ‘실존은 본질에 선행(先行)한다’는 것, 다시 말해서 인간은 주체성으로부터 출발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실존은 ‘인간’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정의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존주의는 니힐리즘이 ‘자아’를 강조한 나머지 세계를 부정하기에 이르는데 반하여, 같은 ‘자아’의 실존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어떤 형태로든지간에 ‘자아’와 세계를 연결지으려고 노력한다.
즉, ‘내가 있다’고 하는 전제로부터 출발하여 그 ‘나’를 세계와 연결지음으로써 그 전제를 확인하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하는 논리가 역전되고, 어떻게 하면 ‘내가 존재’한다고 하는 사실을 먼저 파악할 수 있는가가 추구된다.
실존주의 철학은 카를 바르트, 에밀 브루너, 루돌프 불트만, 그리고 폴 틸리히와 같은 많은 신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