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UN


청소년을 위한 꿈의 해석
Die Traumdeutung


원저 : 프로이트
박정수 지음



목차

들어가는 글
1부 정신분석의 탄생과 꿈의 해석
2부 꿈을 해석하는 네 가지 원칙
3부 꿈을 만드는 재료와 그 출처
4부 꿈을 만드는 네 가지 작업 방법
5부 꿈 과정의 심리학


들어가는 글

꿈에 대해 고대인들은 그것을 꾼 사람의 정념이나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보여주는 하나의 이야기로 본 반면, 프로이트는 서로 다른 사건과 대상에 대한 생각과 이미지의 복합물로 보았다.
프로이트는 꿈을 통해 표출되는 생각들을 두 편으로 나눈다. 한 편은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자아’에 동조하는 생각들이고, 다른 한 편은 그 자아에 의해 억압된 ‘이드 (뭐라 말할 수 없어서 라틴어로 그것, 즉 ‘id’라 부르게 된 무의식적 욕망의 출처로서 영어의 ‘it’에 해당하며 독일어로 ‘Es’)의 욕망에 관한 생각들이다.
꿈은 장의 ‘검열’ 기능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평소 억압당하던 이드의 욕망이 표현되는 무대이다. 정상인들이 꿈의 무대에서 무의식적 욕망을 다른 형태로 가장하여 표출하는 방식 그대로, 신경증자들은 자신의 억압된 욕망을 강박행위나 신체증상으로, 도착증자들은 병리적인 충동행위로, 정신병자들은 망상이나 환각으로 변형시켜 표출하는 것이다.

프로이트 (1856. 5. 6 – 오스트리아 모라비아 지방(현재 체코)의 프라이베르크에서 태어남. 부모님은 유대인이었음. 김나지움(1865), 빈 대학 의학부(1873)에서 해부학과 생리학 공부. 의학 박사(1881), '꿈의 해석' (1900) 출판. 런던에서 사망 (1939. 9. 23)


1부 정신분석의 탄생과 꿈의 해석

정신분석학은 정신의학과 자주 혼동되는 데, 정신의 질병에 대해 이해하는 방식과 치료 방법에 있어서 이 둘은 완전히 다르다. 정신의학은 신경증이나 정신병, 도착증 같은 이른바 ‘정신의 질병’을 의학의 관점에서 다르지만, 정신분석학은 의학적 관점을 뛰어넘어 정신활동에 대한 일반적 분석을 지향한다.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을 통해 밝히고자 한 것은 꿈에서만 발견되는 특수한 원리가 아니라, 무의식의 다양한 형성물 일반에 전반적으로 작용하는 원리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우주는 완벽한 질서와 규칙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우연과 변이로 가득 차 있다. 플라톤에 따르면, 현실은 이데아를 원본으로 하여 만들어진 복제본이다. 이데아란 세계의 ‘설계도’와 같은 것이다. 철학자는 우리가 보는 세계의 형상(현실) 이면으로 유혹하는 자이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참된 것(본질, 이데아)이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장자의 호접지몽 – 꿈속의 나는 정말 나인가?
胡蝶之夢: 나비에 관한 꿈이라는 의미로, 장자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날아다닌 데서 유래함. 자연과 ‘나’의 구별을 잊고 하나된 만물일체의 경지를 의미한다. 장자는 ‘나’를 구성하고 있는 동일성에 얽매여 차이와 변화를 두려워하고, 한 가지 기준으로 좋은 ‘나’와 나쁜 ‘나’, 진짜 ‘나’와 가짜 ‘나’를 평가하는 것은 아집과 편견의 소치라고 본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른 무수한 ‘나’를 긍정하고, 나비일 때는 나비로서 자신을 즐기고 장자일 때는 장자로서 자신을 즐기는 것. 그것이 ‘호접지몽’에 담겨 있는 거대한 놀이 정신, 즉 소요유(逍遙遊)의 정신이다.
화장실의 낙서: ‘당신이 헛되이 보낸 오늘이 어제 죽은 자가 그토록 꿈꾸던 내일이다’
'오늘'을 기쁘게, 열심히 살라는 의미일 테지만, 이 글귀는 두 가지 점에서 그릇되었다. 먼저 도덕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 글귀는 타인의 불행에서 자신의 행복을 구한다는 점에서 나쁜 생각이다. ‘나의 오늘은 어제 죽은 누군가가 갖지 못한 것이기에 소중하다’라는 것은, 내 것의 소중함을 타인의 결핍에서 찾는 아주 나쁜 생각이다. 타인의 불행에서 자신의 행복을, 타인의 가난에서 자신의 부유함을 느끼는 것은 나약하고도 그릇된 생각이다. 내 것의 가치는 오직 ‘나’로부터 끌어내야 하지 않나? 어째서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 되지 않고 남의 불행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는가? 또한 이 글귀는 시간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틀렸다. 나의 ‘오늘’과 어제 죽은 누군가가 간절히 꿈꾸던 ‘내일’은 같은 게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두 시간이다. 우리는 은연중에 시간을 모든 존재가 함께 타고 있는 기차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어제 죽은 누군가는 이전의 시간에 해당하는 역에서 내렸고, 자신은 여전히 그 기차를 타고 다음 역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자의 가르침에 따르면, 어제 죽은 누군가의 내일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은 전혀 다른 시간이다.

17, 18세기는 정신(관념, 의식)이 물질(신체)을 지배하던 시대였다. 물질 세계는 정신의 질서에 따라 분류되고 통제되었다. 19세기로 넘어오면서 물질은 정신으로부터 독립되었다. 물질은 정신에 의해 온전히 파악되지 않는 독자적인 운동성을 가지며, 오히려 정신이 물질의 운동에 의해 생성되고 변화한다는 생각이 지배하게 된다. 관념론의 시대가 지나가고 유물론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 관념론: 정신, 이성, 이념 등의 관념적인 것을 참다운 실재이자 본질적인 것으로 보고, 이를 통해 물질적 현상을 밝히려는 이론을 말한다. ‘관념학’이라고도 한다.
- 유물론: 물질을 만물의 근원이자 근본적인 실재로 생각하고, 모든 정신 현상은 물질의 작용이거나 물질에 따른 부차적이고 파생적인 산물로 본다.

유물론의 첫 번째 형태가 바로 생물학과 그에 기대 심리학이었다. 꿈은 인간의 신체가 수면 상태에 있을 때 안팎의 자극에 반응하여 생기는 혼미한 표상작용으로 파악된다. ‘표상’이라는 말은 18세기 중후반부터 ‘정신’이나 ‘관념’ 대신 사용되기 시작한 학술 용어로서, 인간의 신체가 외부 세계에 반응하여 발생시킨 이미지나 생각 혹은 정서를 가리킨다.
18세기에 처음 등장하여 인간의 표상작용에 대해 과학적으로 연구해 오던 관념학은, 19세기에 들어 오면서 심리학으로 진화했다. 심리학은 생물학적으로 파악되는 인간 유기체의 기능적 활동일 정신에 표상되는 방식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꿈을 잠자고 있는 인간 유기체가 외부의 물리적 자극이나 내부의 생리적 자극에 반응하는 심리현상이라고 파악했다.
- 리비도: 사람에게 내재된 성욕이나 성적 충동을 의미하는 정신분석학 용어로, 무의식에서 나오는 정신적 에너지 또는 성적 에너지를 가리킨다.

프로이트의 ‘과학적 심리학’, 즉 정신분석학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그 둘이 만나는 접점에서 무의식이라는 독자적인 학문 영역을 발견한다. 꿈은 뇌의 작용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만도 아니고 사회적 관계에 대한 기억 현상만도 아닌 것으로서 무의식이라는 제3의 영역에서 발생한다.
프로이트는 '과학적 심리학 초고'에서 뉴런이란 해부학적 물질이 아니라 잠재적 물질이라고 한다. 뉴런은 인체를 해부해서 보거나 만질 수 있는 ‘경험적’ 물질이 아니라, 표상의 물질적 힘이 형성되고 이동하는 작동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상정한 ‘가상적-잠재적’ 물질이다.
- 칸트(1724-1804): 독일의 철학자. 경험주의와 합리주의를 통합하는 입장에서 서유럽 근세 철학의 전통을 집대성하였으며, 전통적 형이상학에 반하여 그것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한 비판철학을 탄생시켰다. 저서로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 등이 있다.
- 쇼펜하우어(1788-1860): 독일의 철학자로 세계를 비관적으로 인식하고 진보를 회의적으로 보는 염세사상을 주장했으며, 대표작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다. 근대의 실존주의와 생의 철학 등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 빌헬름 분트(1832-1920): 독일의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이다. 실험 심리학의 기초를 마련했으며, 민족 심리학을 연구하여 문화 인류학이 발전하는 데 기여했다. 신경증이란 병리해부학적으로는 이상이 없는데도 기능의 장애를 호소하는 정실질환으로, 뉴런망의 이상 작용이 원인이라고 하여 뉴로시스(노이로제)라고 부른다.
심리적인 이유로 팔다리가 마비되는 현상, 천식이나 구토, 발작 등을 일으키는 히스테리, 어떤 강박적인 생각 때문에 사회생활을 하는 데 불편을 겪는 강박신경증, 어떤 장소나 동물에 대한 알 수 없는 공포 때문에 일상생활이 곤란한 공포증, 극심한 슬픔과 정서적 침체에 시달리는 우울증 같은 것이 신경증의 범주에 속한다. 정신분석이 내세우고 있는 반갑잖은 주장들 중에서 가장 첫 번째로 제기되는 문제는, 정신적 과정들은 그 자체로 무의식적이며 의식적인 것은 정신활동 전체 중에서 단지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신분석은 의식과 정신의 동일성을 인정할 수 없다. 정신분석은 정신을 감정, 사고, 의지와 같은 과정으로 정의하며, 거기에는 무의식적인 사고나 무의식적인 의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 '정신분석강의, 25쪽' 무의식이란 의식의 주체인 ‘나ego’가 알지 못하지만, ‘나’의 사유와 욕망과 정서를 지배하고 있는 의식 바깥의 정신세계이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불가지성에 대해 인간들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르면서도 실제로는 알고 있는 정신적인 부분이 있다라고 말한다. 알고 있는 ‘나’와 그것을 모르는 ‘나’의 분열이 발생하는 바로 그 순간에 무의식이 출현한다는 것이다. 의식의 주체ego인 ‘나’가 무의식을 모르는 것은, 자신의 바깥에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자아가 무의식적 주체subject의 앎을 억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억압된 사고(지식)’로 정의하기도 한다.
- 타자: 사전적으로는 ‘다른 사람’을 가리키며, 현대 철학에서는 ‘주체’의 상대적 개념으로 ‘나’의 인식 범위를 넘어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칭하는 단어이며, 정신분석에서는 ‘자아’가 인식하지도 못하고 통제하지도 못하는 ‘무의식’의 세계를 지칭한다.
- 불가지성(不可知性): 초자연적인 존재나 본질이 가진, 인식하거나 알 수 없는 특성을 말한다.
- 소포클래서의 희곡 '오이디푸스 왕' 무의식의 과학이란, 자전거타기, 수영하기와 같이 몸에 새겨진 표상작용의 규칙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 베델의 집: 일본 홋카이도의 우리카와에 있는 정신장애인들의 공동체.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장자의 ‘의심’이야말로 장자의 ‘정상성’을 증명해 준다고 보았다. 라캉이 주장하는 광기(정신병)의 특징은 자신의 정체성identity에 대해 자기 확신을 보이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나’ 사이의 간극을 느끼지 않고 일말의 의심도 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나’에 대해 확신하는 것, 그것이 정신병의 폐쇄성을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장자가 미치지 않았음은, 그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심을 품었다는 것, 즉 타자의 영역에서는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과 다른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증명해 준다.
정상적인 개인이라 할 수 있는 주체는 그런 분열과 간극을 인정하는 반면, 정신병적 주체는 그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생각(확각과 망상)에 대해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는다. 자크 라캉이 말한 것은, 장자의 의심이 그가 자신의 실존에 대해 가지는 확신을 뒷받침해 준다는 것이다. ‘의심이 자신의 실존에 대한 확신을 낳는다’라는 명제는 철학적으로 정립한 사람은 데카르트(1596-1650)이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카르트는 자신의 감각을 의심하는 것이야말로 ‘나’의 존재를 증명해 준다고 말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Ego cogito, ergo ego sum.’라는 코기토 명제이다. 근대 이전에는 ‘나’의 존재 근거를 자신의 바깥에 있는 신(자연)에게서 찾았다. 이에 반해 자신의 존재 근거를 다름 아닌 자신의 의심행위, 즉 자신의 사유행위에서 찾는 것, 다시 말해 자신의 ‘사유’가 인간 주체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 유일한 근거이고 세계는 사유의 주체인 인간과 사유의 대상인 자연으로 나눠진다는 인식은 근대 철학과 근대 과학과 근대 사회를 연 출발점이다. 따라서 데카르트의 코기토 명제는 ‘나(자아)는 의심한다. 고로 나(무의식의 주체)는 존재한다’로 바꿔 쓸 수 있다.


2부 꿈을 해석하는 네 가지 원칙

프로이트에게 꿈은 ‘보는’ 게 아니라 ‘듣는’ 것이다. 본다는 것은 대상을 객체로 만드는 행위이다. 프로이트는 꿈꾼 사람을 ‘말하는 주체’로 인정하고 그의 말을 들었다.
① 꿈은 파편들의 복합물
히스테리: ‘자궁’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hystera’에서 유래한 말로, 광범위하고 다양한 감각장애나 운동 장애를 일으키는 심리현상을 가리킨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히스테리는 억압된 관념이 마비나 발작, 구토 등 신체적 증상으로 전환되어 나타나는 정신신경증의 하나이다
② 꿈의 내용과 꿈의 사고는 다르다.
③ 꿈은 소원 성취이다.
프로이트는 인간관계에 대한 욕망은 근본적으로 성적인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욕망을 생물학적인 성욕이나 종족보존에 대한 본능으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욕망으로 귀결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니체(1844-1900): 독일의 철학자이자 시인.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꼽히며,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계승한 ‘생의 철학’의 기수로 평가된다. 기독교로 대표되는 근대 유럽문명을 비판하였으며, '반시대적 고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비극의 탄생' 등의 작품을 남겼다. “진리는 있는 게 아니라 진리에 대한 의지만이 있는 것이며, 권력의 실체가 있는 게 아니라 권력에 대한 의지만 있다”
④ 꿈의 사고는 검열에 의해 왜곡된다.


3부 꿈을 만드는 재료와 그 출처

하찮고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이는 낮의 잔재도,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던 강력한 표상과 결합되면 꿈을 이루는 재료가 될 수 있다.
사소한 표상은 강력한 표현 욕구를 가진 생각과 결합될 때만 꿈의 재료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꿈은 저절로 꿔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억눌린 충동을 표현하려는 의지가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4부 꿈을 만드는 네 가지 작업 방법

– 전치, 응축, 감각적 형상화, 2차 가공과 플롯 짜기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 우리는 흔히 이러한 사건의 시간적 인접관계를 원인과 결과에 따른 관계로 혼동한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이어서 다른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는 첫 번째 사건이 두 번째 사건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걸 ‘우연’으로 돌려 버리면 견딜 수 없기에 혹은 사고를 일으킨 책임을 묻기 위해 우리는 그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우리가 원인으로 지목한 것들은 사실 사건의 시간적 연쇄에 지나지 않는다. 그와 같은 사건의 연쇄를 일으킨 힘(원인)은 분명 존재하지만, 드러난 현실과 다른 잠재적 차원에 있다. 그 잠재적 차원은 무수히 많은 변수와 가능성으로 채워져 있어서 인간이 미처 다 헤아릴 수 없다. 그 잠재적 원인을 신학자들은 ‘신의 섭리’라고 부르고, 자연과학자들은 ‘자연법칙’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사건의 원인이 현실의 차원이 아니라 잠재성의 차원에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아쉬운 데로 사건이 연쇄되는 과정에서 하나의 고리를 원인으로 지목해야 마음의 안정과 경제적, 법적 보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잠재적 원인의 무한성 – 의학도 마찬가지다. 의사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이 병의 원인이 뭡니까?’라는 질문이다. 유전적 요인, 식습관, 생활방식, 정신건강, 면역체계,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활동, 세포활동 등 질병의 원인을 꼽자면 끝이 없다. 의사들이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질병의 원인이 아니라 진행 상태와 치료 효과에 대한 확률적 계산이다. 사회학이나 경제학, 정치학 등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학문은 더 심하다. 문제의 원인이 무수히 많고 서로 연관되어 있다. 최종 원인, 근본 원인이라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저 밝힐 수 있는 원인들 사이의 상호관계와 해법에 따른 효과를 짐작할 뿐이다.
‘사고’와 ‘그림’은 같을까? 다를까? 지금까지 그 모두를 ‘표상representative’라고 불렀는데, 사고나 관념 혹은 개념도 표상이라고 하고, 시각적 이미지나 사물의 형상 혹인 청각적 영상도 표상이라고 했다. 표상이란 즉각적으로 현존하는 사물이나 사태 또는 사건을 우리의 정신 속에 다시 존재하게 만드는 활동과 그 결과를 가리키는 말로, 18세기 이래로 서구에서 관념, 정신, 영혼 등을 포괄적으로 지칭해 온 단어이다. 사고는 추상적이지만, 그림은 감각적이다. 사고는 개념을 내포한 언어로 표현되는 데 반해 그림은 시각적 감각을 자극하는 물질적 형상으로 표현된다. 다시 말해 사고는 개념의 형식을 갖는 반면, 그림은 감각의 형식을 가진다. 잠재된 사고를 감각적 형상으로 전환하는 꿈의 작업은 이처럼 서로 다른 표상 형식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번역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부정’은 인간의 사고 가운데 가장 추상적인 표현이다. ‘부정’은 사고될 수는 있지만, 결코 표상(형상화)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말했듯이 표상이란 현존하는 사물의 반영을 의미하는데, ‘부정’이란 현존하는 것의 없어짐, 즉 사물(사태)의 부재를 표현하는 사고이기 때문이다. ‘A가 아니다’에서 ‘A’는 표상될 수 있지만, ‘아니다’는 형상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꿈속에서는 부정을 표현할 수 없다는 말을 좀 더 확장하면, 무의식은 부정을 모른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무의식은 오직 현존의 세계로, 여기에는 부재나 부정의 사고가 없다. 부재나 부정은 이차적인 사고인 의식 세계에서 비로소 나타난다. 우리는 ‘존재와 부재’, ‘있음과 없음’에 굉장히 얽매여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생각에 따르면 그러한 존재와 부재의 구별은 인간 정신이 이차적으로 구성되는 (의식) 과정에서 생기는 것으로, 인간 정신이 일차적으로 구성된 무의식에서는 그렇게 구별되지 않는다. 무의식에서는 ‘부재’와 ‘부정’의 표현이 없고, 오직 다양한 ‘정도’나 ‘강도’로 현존하는 사물들의 표상만 있을 뿐이다. 자의적인 기준을 정해 놓고 명확히 ‘있는 것’과 아예 ‘없는 것’으로 나누는 것은 이차적인 사고 작용일 뿐이다.
이미 가공된 상태로 세계에 대한 총체적 이미지를 제공하면서 현실을 인식하는 데 관여하는 것을 ‘이데올로기’라고 부른다. 이데올로기는 일종의 집단적 환상이다.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통해 우리는 세계에 대한 총체적 이미지를 가지고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게 된다. 프로이트가 신경증자의 환상에 대해 말한 것과 같이, 이데올로기적 환상 역시 그것이 사실인지 허구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대중들에게 심리적 현실로서 특정한 신념과 행동을 이끌어 내는 실제적인 작용이 중요하다. 이데올로기가 집단적 환상이라는 말은, 그 환상을 공유함으로써 동일한 정체성을 지닌 집단이 형성된다는 의미이다. 그 예로 민족주의를 공유하면 ‘민족’이라는 집단이, 국가주의를 공유하면 ‘국민’이라는 집단이, 인종주의를 공유하면 ‘백인’이라는 집단이, 자본주의를 공유하면 ‘부르주아’라는 집단이 형성된다. 이렇게 이데올로기를 통해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함으로써 우리는 세계를 이해하는 편리한 수단을 갖게 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나 현상이 자기가 속한 집단의 형성과 발전과 위기라는 서사 속에 통합되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는 이미 가공된 세계상이기 때문에, 그 속에 있으면 세계가 단순하고 분명한 모습으로 보인다.
프로이트는 '집단심리학과 자아분석'(1921)에서, 집단은 거의 전적으로 무의식의 지배를 받으면서 하나의 유기적 신체를 구성한다고 말한다. 즉 종교 단체나 군대, 정치결사체 같은 집단은 무의식적 욕망, 즉 리비도로 결합된 유기적 신체이다. 이러한 유기적 집단들은 신이나 사령과, 영도자 같은 초월적인 ‘한 사람’을 매개로 하여, 다양한 사고의 흐름을 억압하고 개별적인 다양성을 동일화한다.


5부 꿈 과정의 심리학

망각은 우리를 과거로부터 해방시켜 줌으로써 미래의 창조를 이루게 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기억과 망각은 단지 사물을 인지하는 능력에만 영향을 받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기억과 망각은 어떤 의지나 욕망에 의해 지배 받는다. 어떤 표상을 기억하거나 망각한다는 것은, 단지 주의력이나 시간의 힘에만 영향을 받는 게 아니라 기억하고자 하는 의지나 망각하고자 하는 의지에 의해서도 지배 받는다. 기억하고자 하는 의지 속에는 지배와 도덕의 의지가 있고 망각하고자 하는 의지 속에는 창조와 변화의 의지가 숨어 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기억하려는 의지는 주로 무의식에 속하고 망각하려는 의지는 주로 의식에 속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무한히 지속되는 기억은 무의식의 영역에 속하고 그것을 억압하고 모른 체하여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는 망각은 의식의 작용에 속한다고 보았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무의식 속에) 기억하고 있으며, 우리가 믿는 것 이상으로 많은 망각의 동기와 목적을 갖고 있다. 망각은 그냥 일어나는 게 아니라 어떤 동기에 의해, 어떤 의지 아래에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어난다. 망각하고자 하는 의지는, 무의식 속에서 기억되고 있는 것을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지 않게 하려는 저항의 의지이다.
정신분석이 하는 일은, 이처럼 과거의 정신적 외상(트라우마 trauma)에 대한 기억을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게 하는 것이다. 인정하기 싫은 불쾌한 기억이라도, 그것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자기 자신의 욕망에 의해 지속된 것임을 받아들이게 한다. 궁극적으로 기대하는 것은, 그 외상적 기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기억을 망각하는 것이다. 그럴 수 있을 때 우리는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힌 삶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새로운 미래를 창조할 수 있다. 외상적 익을 떠받치는 것은, 원한과 미련을 동반한 억압된 욕망이다. 따라서 외상적 기억을 진정으로 망각하는 것은 그러한 미련과 원한으로부터, 그것을 떠받치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비록 그럼으로써 욕망이 상실되는 데서 오는 공허함을 느끼겠지만, 그 공허는 새로운 욕망을 채워 넣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 헤켈(1834-1919): 독일의 생물학자이자 진화론자로서, '일반형태학', '인류의 발생', '종교와 과학의 매체로서의 일원론' 등의 저서를 남겼다. 카나리아제도, 홍해, 세일론, 자바 등지를 여행하면서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인류의 진화와 생명의 기원에 대해 논하였으며, 환경과의 관계에 따라 생명학과 구별되는 생태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개념을 정리했다.
개체 발생은계통 발생을 반복한다. – 헤켈이 1866년에 주장한 학설로, 생물이 발생하면서 그 선조가 진화적으로 발달해 온 단계를 그대로 거친다는 내용으로, 정설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불안은 다른 감정에 비해 훨씬 정직한 감정이다. 불안은 원래 감정에 대한 방어가 실패할 때 터져 나오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불안한 정서가 담긴 꿈을 꾼다는 것은, 꿈을 왜곡(변형)하려는 작업이 실패했음을 드러내는 증거이다.
‘자유’란 ‘권리’이기 전에 자유로운 사고 내지 욕망(리비도), 혹은 힘과 에너지의 ‘흐름’이다. 그리고 ‘구속’이란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기 전에 욕망하는 힘과 에너지의 자유로운 흐름을 제한하고 표상들을 서로 ‘묶어’ 안정적인 질서를 세우려는 경향이다. 즉, 억압과 구속은 단지 어떤 것을 못하게 하거나 부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유로운 사고와 욕망의 흐름을 특정한 방향으로,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권장되는 방향으로 적극적으로 ‘묶는’ 작업이다.
쾌감이 불쾌감으로 또 소망이 두려움으로 변형되는 것은, 억압의 목적을 달성케 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억압에 의한 결과이다.
어떤 존재의 본래 속성이 그 존재로부터 분리되어 낯선 외부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소외’라고 한다. 그래서 억압은 ‘표상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표상의 원래 속성(지각 에너지, 정서)이 분리되어, 다른 낯선 표상 속으로 떠돌아다는 것이다. 쾌락의 정서로 지각되던 대상을 불쾌하게 느껴서 밀쳐내게 되고, 희망의 정서를 품고 있던 대상을 두려운 것으로 느껴서 거부하게 되는 것이 억압이고 소외이다.

스피노자(1632-1677): 네덜란드의 철학자로 계몽주의의 토대를 마련했다. 헤겔, 데카르트와 더불어 17세기 합리주의 철학의 거성으로 꼽히며 대표작으로 '에티카'가 있다. “인간에게는 인간보다 더 유익한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간의 본질이 소외된 현실에서는, 인간보다 더 불쾌하고 두려운 것도 없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 원래 이기적이거나 사악해서가 아니라, 본질적 욕망이 억압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억압에 관한 프로이트의 이론에게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심리현상들이 어떤 고정된 본질을 갖는다고 보지 않는다. 본질주의적 관점은 현실의 심리현상 이면에 있는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정신적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관념론은 심리현상의 원형(이데아나 신, 선과 악의 신화적 기원 등)을 가정하고, 그것을 규범으로 삼아 현실을 재단하고 통제하려는 지배 이념이 되기 때문이다.
관념론은 항상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고정되고 불변하는 본질을 찾는다. 이에 반해 유물론은 고정된 것처럼 보이는 현상 이면에 작용하는 운동과 변화, 즉 ‘흐름’을 탐색한다. 프로이트는 유물론적 의지로 쓰인 '과학적 심리학 초고'에서, 심리현상들 이면에 작동하는 물질적 흐름을 밝히려 한다. 그에게 ‘물질적’이란, ‘만지고 볼 수 있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흐른다’라는 뜻이다. 물질을 견고한 원자나 입자가 아니라 에너지나 힘의 ‘흐름’으로 보는 것이 프로이트의 유물론적 감각이다.
뉴런들은 서로 연결망을 이루면서 심리-생리학적 에너지(힘, 양)를 흐르게 한다. 그 힘의 흐름이 지닌 빠름과 느림의 속도, 양적인 축적과 질적인 변화, 막힘과 뚫림, 억압과 분출에 따라 기억과 망각, 괘락과 불쾌, 욕망과 억압과 같은 심리적 현상이 일어난다. 이런 ‘흐름의 작용 원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소통’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한 뉴런과 다른 뉴런이 연결될 때마다 ‘흐름의 길’이 생긴다. 프로이트에게 ‘소통’이란 장벽이 낮아지거나 트여서 힘과 욕망의 길이 열리는 현상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을 넘어서'에서 데카르트의 ‘코기토’ 명제를 문법적 환영이라고 비판함 – 생각은 ‘내가’ 원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이 원해서 나온다. 따라서 ‘나’라는 주어가 ‘생각한다’라는 서술어의 조건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 된다. 그 무엇이 생각한다.